명나라 때 태창주(太倉州: 지금 강소성江蘇省 동남부, 上海 부근 지역)에 륙용(陸容)이 있었는데, 용모가 준수하고 풍만하였다. 영종(英宗) 천순(天順) 3년(1459) 과거에 응시하려고 남경(南京)에 머물렀는데, 묵던 주인집 딸이 어느 날 밤 륙용에 침실로 찾아 들었다. 륙용은 거짓으로 몸이 아프다고 핑계 대면서, 다음날 저녁에 만나자고 기약하였다. 이에 녀자가 물러가자, 혼자 이렇게 시를 지어 읊조렸다.
“바람 맑고 달 밝은 밤 문간 인적 없는데, 風淸月白夜牕虛
한 녀인 찾아와 책 읽는 선비에게 웃음 짓네. 有女來窺笑讀書
거문고에 마음 실어 하나 되자 말 걸지만, 欲把琴心通一語
십 년 전에 이미 녀색 모습에 담담해졌는걸.” 十年前已薄相如
그리고는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급한 일을 핑계 대고 그 집을 떠나 왔는데, 그 해 가을 과거에 합격하였다.
그 전에 륙용 아버지가 꿈을 꾸었는데, 군수(郡守)가 북 치고 피리 부는 행렬과 함께 깃발과 액자를 자기 집으로 보내오는 모습을 보았다. 꿈속에 액자에는 “달은 밝고 바람은 맑다.(月白風淸)”는 네 글자가 뚜렷이 쓰여 있었다. 그래서 그 아버지는 이를 월궁(月宮: 달 속에 있다는 전설상에 궁전으로, 녀신(女神) 상아(嫦娥)가 산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女色 또는 婚嫁를 상징하는 비유로 풀이됨)에 조짐으로 여기고, 글로 써서 아들에게 남겨 두었다. 륙용이 이 글을 보고 더욱 움찔 놀랐는데, 나중에 진사가 되어 벼슬이 참정(參政)에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