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주(溫州)에 주선(周旋) 아버지는 본디 자식은 많은데 집안이 매우 가난했다. 그런데 바로 이웃집 사람은 거꾸로 집안은 부유한데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자기 첩을 시켜, 주선 아버지로부터 자식을 하나 얻고 (씨를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저녁 주(周)씨를 집으로 초대하여 술을 함께 마신 뒤, 자기는 짐짓 취한 척하며 밖으로 나오고, 자기 첩한테 주씨를 모시도록 분부하였다. 이에 첩이 사실대로 고하자, 주선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려 하였다. 그러나 방문은 이미 밖에서 잠긴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방안에 앉아, 손가락으로 허공에 이렇게 썼다.
“씨앗(자식)을 받아 전하려고 하는 술책이, 하늘 위에 신명을 놀라게 할까 두렵다.(欲傳種子術, 恐驚天上神.)”
그리고 저녁내 벽을 향해 앉아, 옆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뒤 명(明)나라 영종(英宗)이 즉위하던 해(乙卯: 1435)에, 주선은 향시(鄕試: 지방 과거시험)에 급제하였다. 그런데 그때 그 지방에 태수(太守)가 기이한 꿈을 꾸었다. 태수가 새로운 장원 급제자를 영접하는데, 알고 보니 바로 자기 고을에 주선이었다. 그런데 그를 수행하여 함께 오는 오색 깃발 위에, “씨앗(자식)을 받아 전하려는 술책이, 하늘 위에 신명을 놀라게 할까 두렵다.(欲傳種子術, 恐驚天上神.)”라는 문구가 크게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태수가 사연을 몰라 꿈을 해석하지 못하였는데, 이듬해(丙辰, 1436) 주선이 정말 중앙에 과거에서 장원 급제하는 것이 아닌가? 태수가 그를 축하하고 칭찬하면서, 마침내 지난해 향시를 치를 때 꿈에서 본 광경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주선 아버지는 깜짝 놀라면서, “그것은 이 늙은이가 20년 전에 허공에다 쓴 문구이올시다.”라고만 말할 뿐, 끝내 그 사연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