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揚州)에 사는 고상서(高尙書) 아버지는 일찍이 젊었을 때, 서울 입구에서 장사를 하였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묵던 객주 집에 때때로 코를 찌를 정도로 진하게 퍼지는 안식향(安息香) 내음을 맡곤 하였다. 하루는 홀연히 벽 틈새에 한 가지(一枝)가 불쑥 뻗어 나온 것을 발견하고, 그 벽 틈새를 구다(들여다) 보았더니, 건너편 방안에 젊은 아가씨가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튿날 주인집을 방문하여 물어보니, 그 아가씨는 주인집 딸이었다.
그래서 왜 아직도 시집을 보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주인은 사윗감 고르기가 어렵다고 답하였다. 이에 고씨는 며칠을 물색한 끝에, 한 사윗감을 찾아 주인에게 권하였다.
“내가 당신 댁 이웃에 사는 아무개 청년을 보니 매우 훌륭하여, 중매를 설까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주인은 자기 마음도 또한 그러한데, 다만 청년 집안이 너무 가난하다고 몹시 망설였다. 이에 고씨는 다시 주인에게 권하였다.
“그건 상관없습니다. 제가 혼수비용을 모두 대겠습니다.”
그래서 서로 좋다고 승낙한 뒤, 고씨는 황금 수십 량을 선뜻 증여하여, 두 사람에 혼인을 원만히 성사시켜 주었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는데, 꿈에 신이 나타나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본디 자식이 없을 팔자인데, 착한 일로 음덕을 쌓아, 이제 그대에게 한 아들을 특별히 하사하오. 이름은 전(銓)이라고 짓는 게 좋겠소.”
일 년쯤 지나 과연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나중에 자라서 진사(進士)가 되고, 벼슬이 상서(尙書)에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