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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록(不可錄) 음욕 참음은 만고 제일에 등룡문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1. 1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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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때 문정공(文正公) 사천(謝遷)은, 젊었을 때 비릉(毘陵)에 아무개 집에서 학관을 연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처녀가 부모 모두 외출한 틈을 타서, 집을 뛰쳐나와 사천에게 찾아 들었다. 이에 사천은 부드러운 말로 그녀를 타일렀다.
“녀자가 시집가기 전에 남에게 몸(정조)을 잃으면, 평생에 오점이 되오. 부모와 친족들은 물론, 남편 집안까지 장차 체면이 없도록 만든다오.”
그리고는 단호한 낯빛으로 거절하자, 그 처녀는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사천은 이튿날 곧바로 학관을 사양하고 귀가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헌종(憲宗: 1464~87 재위) 성화(成化) 11년 을미(乙未: 1475)년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마침내 재상까지 올랐다. 그 아들 비(丕)도 궁시랑(宮侍郞)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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