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때 태창주(太倉州)에 아전이던 고좌(顧佐)는, 떡 파는 강씨(江氏)가 억울한 루명(陋名)으로 죄수가 된 사실을 알고, 그를 위해 대신 소청(訴請)을 올려, 마침내 풀려나도록 도와주었다. 강씨는 풀려난 뒤, 자기 딸을 데리고 고좌 집에 찾아가 이렇게 청했다.
“은혜에 달리 보답할 길이 없으니, 제 딸을 첩으로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
고좌는 한사코 그 청을 물리쳤다. 그는 아전 임기가 다한 뒤, 시랑아문(侍郞衙門)으로 전근가게 되었다. 하루는 한 상관 사택에 가서 대기하고 있는데, 그 집 부인이 그를 알아보고는 깜짝 반색하며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태창주에서 아전을 하시던 고 선생님이 아니십니까?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고좌가 깜짝 놀라자, 부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떡 팔던 강씨네 딸입니다. 나중에 한 상인에게 팔린 몸이 되었는데, 그 상인이 딸처럼 키우다가, 충상공(充相公)한테 후실로 시집보내 주었답니다. 그 뒤 얼마 안 되어 정실(正室) 자리를 뒤이었는데, 항상 고 선생님 은덕에 보답할 길이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상공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시랑(侍郞)이 그 일을 상세히 적어 상소 올리자, 효종(孝宗: 1487~1505 재위. 년호는 홍치弘治)이 그를 가상히 여겨, 특별히 발탁하여 리부주사(吏部主事)에 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