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때 운간(雲間: 강소성江蘇省 송강부松江府 별칭)에 사는 막문통(莫文通)은 본디 선행을 즐겨하였다. 성(城)에서 2리(里)쯤 떨어진 물가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하루는 금 20량을 가지고 성안으로 볍씨를 사러 가다가, 황포(黃浦)에 잠시 정박하였다. 그런데 순간 두 사람이 한 처녀를 결박한 채 물 속에 집에 넣으려고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막문통이 급히 다가가 사연을 물었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녀자는 우리 주인집 딸입니다. 자기 딸이 다른 남자와 사통(私通)한 걸 알아차린 주인이, 우리에게 이렇게 묶어 급류 속에 던져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막문통이 말문을 열었다.
“어린 녀자가 무얼 알겠소? 또 사통한 걸 직접 목격한 것도 아닌 듯한데,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또 어찌하겠소? 천만다행으로 그대들이 이 소녀를 풀어준다면, 내가 금 20량을 사례로 드리겠소.”
그래서 녀자는 풀려났다. 그 녀자는 너무도 감사한 나머지, 막문통 앞에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그를 위해 키질하며 청소나 하겠다고 자청하였다. 그러나 막문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어찌 그대에 자태나 용모를 탐내겠소? 단지 그대가 꽃다운 젊은 나이에 애매한 누명을 쓰고 죽는 것이 몹시 안쓰러워 구해주었을 뿐이오. 지금 날이 이미 어두워졌는데, 내 배는 작아 그대가 함께 타고서 묵기가 어렵구려. 그러니 그대는 얼른 강둑 위로 올라가, 등불이 켜진 인가를 찾아 투숙하는 게 좋겠소.”
이날 밤 꿈에 한 신선이 나타나 그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그대가 사람 목숨을 구해준 음덕이 매우 커서, 하늘이 현명한 자손을 보답으로 내려줄 것이다.”
그 뒤 아들 승(勝)이 명경과(明經科)로 처음 벼슬길을 열고 나가더니, 손자 호(昊)는 향시에서 제2등으로 합격했고, 또 호(昊)에 아들 우(愚)도 향시에 합격했다. 우(愚)에 아들 여충(如忠)도 향시에서 제2등을 한 뒤, 가정(嘉靖) 무술년(戊戌年: 1538) 과거에서 진사가 되고, 벼슬이 방백(方伯)까지 이르렀다. 한편 목숨을 건진 녀자는 멀리 도망갔는데, 한 문인이 그를 맞이해 여섯 아들을 낳았다.
하삼외(何三畏)라는 사람이 일찍이 [선인전(善人傳)]을 지었는데, 거기에 이 일을 상세히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