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曰:
汝等若於苦等四諦, 有所疑者, 可疾問之, 無得懷疑, 不求決也. 爾時, 世尊如是三唱, 人無問者. 所以者何? 衆無疑故. 時阿㝹樓馱, 觀察衆心, 而白佛言:?世尊! 月可令熱, 日可令冷, 佛說四諦, 不可令異. 佛說苦諦, 實苦不可令樂; 集眞是因, 更無異因; 苦若滅者, 卽是因滅; 因滅故果滅, 滅苦之道, 實是眞道, 更無餘道. 世尊! 是諸比丘, 於四諦中, 決定無疑.
?여러분 가운데 만약 고·집·멸·도 사성제四聖諦에 관하여 의문이 있거든, 재빨리 물어 보십시오. 의심을 품고서도 풀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때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세 번 되풀이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더 이상 의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아노루타가 대중 마음을 관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설령 달을 뜨겁게 달구고 해를 차갑게 식힐 수 있다고 할지라도, 부처님께서 설하신 사성제는 달라질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괴로움 진리(苦諦)는 진실로 괴로우며, 즐겁게 바꿀 수가 없습니다. 괴로운 원인 진리(集諦)는 진실로 괴로운 원인이며, 그밖에 다른 원인이 없습니다. 괴로움이 만약 사라진다면, 곧 바로 그 원인이 사라짐이며, 원인이 사라지기 때문에 결과도 사라집니다. 괴로움을 사그라뜨리는 길은 정말로 진실한 길이며, 그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 모든 비구들은 사성제 가운데 결코 의심이 없습니다.?
論曰:
五. 다음으로 결정코 증명에 듦을 현시하는 부분(顯示入證決定分)을 설합니다. 결정코 증명에 든다(入證決定) 함은, 증명한바 법(所證法)에서 결정코 의심할 바 없음을 성취(成就決定無所疑)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결정코 의심 없음(決定無疑)을 나타내는 이치는 세 법문(三門攝義)으로 포섭됩니다. 첫째는 방편현발문方便顯發門이고, 둘째는 만족성취문滿足成就門이며, 셋째는 분별설(법)문(分別說門)입니다.
1. 우선 방편현발문方便顯發門은, 모든 진실법이 도처에서 뚜렷이 피어남(於諸實法處顯發)을 나타냅니다.
(1)?汝等若於苦等四諦?는, 이 수행자는 마땅히 그 法으로 관찰하고, 그에 의해 수행해나가야 함을 나타냅니다.
(2)?有所疑者, 可疾問之, 無得懷疑, 不求決也?는, 사제四諦 중 유작무작법有作無作法에서, 의심이 있는 경우나 의심이 없는 경우를 나누어 나란히 표시한 것입니다. 여기서?疾問?은 아까 설한 두 가지 필경 문제를 나타냅니다.?無得懷疑?는, 견무작제처(見無作諦處: 무작위 진리를 보는 곳)나 수행유작제처(修行有作諦處: 유작위 진리를 수행하는 곳)나, 이 두 모습과 다 어긋나는 곳(彼二相違處)이나, 모두 의심해서는 안 됨을 뜻합니다.
【절요】사제는 수행자가 늘 관찰하고, 그에 의지해 수행하는 것이므로, 질문하라고 권하십니다. 괴로움(苦)은 여덟 가지 일(八事)이 옮겨가며 압박함이고, 모임(集)은 미혹업장에 이끌리는 과보이며, 사라짐(滅)은 두 해탈로 얽매임을 벗어남이고, 길(道)은 계정혜 삼학에 능통함입니다. 이러한 사제에 의심이 있으면, 어떻게 관찰하고 수행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이 지금 열반에 드시려 하므로, 빨리 물어보라고 재촉하신 것입니다.
【보주】해탈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혜 해탈(慧解脫)이고, 다른 하나는 갖춘 해탈(俱解脫)인데, 또 다르게 보면 번뇌를 해탈함과 장애에서 해탈함입니다. 위는 소승에만 해당하고, 아래는 보살에 통합니다.
【강의】 둔한 근기의 아라한이 오직 번뇌 장애만 벗어나고 멸진정에 들지 못한 것을 지혜해탈이라 부르고, 예리한 근기의 아라한이 모든 선정 장애까지 죄다 벗어나 지극한 경지인 멸진정까지 이른 것을 갖춘 해탈이라고 부릅니다.
이 밖에도 관점에 따라서 여러 론장은 다양한 해탈은로 나눕니다. 아라한의 뛰어난 이해(勝解), 즉 참 무루 지혜(眞智)를 일컫는 유위해탈과, 일체 미혹이 사라진 열반을 가리키는 무위해탈이 있습니다. 또 중생 성품은 본디 청정하여, 얽매이거나 더럽혀진 모습이 없다는 성정해탈과, 중생 본성이 비록 청정하지만, 무시이래로 번뇌미혹에 뒤덮여 본성이 뚜렷이 드러나지 못하다가, 이제 그러한 미혹 장애를 다 끊어버려 자유자재를 얻은 장진障盡해탈이 있습니다.
그리고 둔한 무학이 특별히 좋은 때를 기다려 선정에 들어 번뇌속박을 벗어나는 일시해탈과, 예리한 무학이 아무 때나 수시로 선정에 들어 번뇌속박을 벗어나는 불시不時해탈이 있습니다. 또 마음이 탐욕과 애착에서 벗어난 심해탈과, 지혜가 무명에서 벗어난 혜해탈로도 나눕니다.
해탈은 범어로 목저木底 또는 목차木叉인데,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뜻입니다. 미혹 업장의 얽매임을 풀고(解) 삼계에 괴로운 과보를 벗어난다(脫)는 뜻입니다. 또한 열반이나 선정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열반 본체는 일체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얽매임을 벗어나 자유자재함은 선정의 공덕이기 때문입니다.
2. 이어 만족성취문滿足成就門은 세 가지를 나타냅니다.
(1)?爾時, 世尊如是三唱?은, 세 차례 진실한 법을 굴려(三轉實法), 법륜이 만족스럽게 성취하였음을 나타냅니다.
(2)?人無問者?는 법을 증명함(證法)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짐을 나타냅니다.
(3)?所以者何, 衆無疑?는, 의심 끊는 공덕(斷功德)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짐을 나타냅니다.
【보주】여래께서 중생들이 의심 없음을 알면서도, 오히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큰소리로 외치신 것은, 끊임없이 만물을 어엿비 여기시는 대자대비심입니다.
3. 마지막으로 분별설법문(分別說門)은, 저 대중 가운데 으뜸 제자(彼衆上首)가 대중 마음을 알고, 수행을 확실히 성취하였으며, 또 증득한 진실한 도리(所證實義)를 명료히 안다고 밝힌 것입니다.
(1)?時阿㝹樓馱觀察衆心?이하는, 그러한 일을 나누어 말하여 여래께 답변하는 것입니다.
【절요】?阿㝹樓馱?는 아나율阿那律, 아니루두阿泥樓豆, 아난율타阿難律陀 등으로도 불리는데, 모두 범어의 음역입니다. 의역하면 무빈(無貧: 가난 없음)ㆍ무멸(無滅: 사라짐 없음)ㆍ여의如意 등으로 불립니다. 과거 전생에 기근이 심하게 들었을 때, 벽지불한테 밥 한 끼 보시한 공덕으로, 91겁 동안 인간과 천상을 왕래하며 항상 복락福樂을 누리는데, 그 과보가 지금도 다하지 않아, 구하는 바가 모두 뜻대로 이루어져 이러한 이름을 얻었습니다. 위 세 뜻으로 말미암아 다른 번역들이 나왔습니다. 당시 대중에 우두머리라서 대중 마음을 관찰하여 부처님께 아뢴 것입니다.
(2)?日月冷熱?은, 사제四諦 중에 거스르거나 순응해 관찰해도(違順觀行) 결코 달라질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實苦不可令樂?은, 부처님 설법佛說은 확고부동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이 각각 진실해(苦樂各實) 결코 바뀔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更無異因?은, 괴로움(苦)과 괴로움 소멸(滅)이 각자 원인이 있고, 또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滅道)도 마찬가지로 자성관찰(自性觀)임을 나타냅니다.?決定?은 고락인과(苦樂因果)가 수행에 들어가 확실히 결정됨을 나타내고,?無疑?는 다름도 없고(無異) 그밖에 뜻도 없음(無餘)을 나타냅니다.
여기까지 현시입증결정분顯示入證決定分을 다 설했습니다.
【절요】먼저 비유로써 드러냅니다. 달은 태음太陰의 정수라 차갑고 해는 태양太陽의 정수라 뜨거운데, 그 성품이 바뀌지 않음은 세상에서 모두 입니다.?可熱可冷?이라 함은, 해와 달이 차라리 그 본성을 바뀔지언정, 부처님 말씀은 끝내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不可令樂?이라 함은, 고락의 각자 열매가 달라지지 않음을 뜻합니다.
?更無異因?은, 괴로움이란 결과는 반드시 集의 원인이 초래하지, 결코 道의 원인이 초래하지는 않음을 뜻합니다. 論에서는 괴로움(苦)과 괴로움 소멸(滅)이 각자 원인이 있다고 풀이합니다.?卽是因滅?이란, 集의 원인을 끊음이며, 또 원인이 소멸(因滅)하면 곧 유여열반입니다.?因滅故果滅?이란, 나중에 원인이 더 이상 생기지 않으면, 괴로움 결과도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결과가 사라짐(果滅)은 곧 무여열반입니다.?更無餘道?란, 나머지 길은 모두 참이 아니어서, 괴로움이 소멸하는 길이 아님을 나타냅니다.
【보주】해와 달은 허깨비 같이 허망한 존재(法)라서 굴려 뒤바꿀 수 있지만, 부처님 말씀은 진실한 이치이니, 어찌 달리 바꿀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에 음陰을 뒤집고 양陽을 바꾸는 일이 세간에 더러 있지만, 이치를 거스르고 참을 어지럽히는 일은 끝내 있을 수 없습니다.
론論과 소疏에서,?無疑?는 다름도 없고(無異) 그밖에 뜻도 없다(無餘)고 했습니다. 그런?無異?는 그 이치를 뚜렷이 밝혀 더 이상 차이가 없으므로 의심하지 않으며,?無餘?는 그 뜻을 적확히 다 드러내 더 이상 남김이나 빠뜨림이 없으므로 의심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해설】여래께서 한평생 가르치신 법문(如來一代敎法)은 비록 수많은 의리義理가 있지만, 사제四諦로 모두 포섭할 수 있습니다. 고집苦集 이제二諦는 세간 인과를 모두 포섭하고, 멸도滅道 이제二諦는 출세간 인과를 모두 포섭합니다. 따라서 사제에 의심을 품으면, 일체 법에 모두 의심이 있고; 진실로 사제에 의심이 없으면, 일체 법에 모두 의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열반 직전에 은근히 세 번씩이나 되풀이해 말씀하시니, 사제를 제외하면 그밖에 법이 따로 없음을 몹시 뚜렷이 밝히신 것입니다.……
(중간 내용은 론에서 말한 세 門이므로 생략함: 옮긴이)
?阿㝹樓馱?는 천안 제일인 까닭에, 대중 마음을 관찰하여 결정코 확실히 말씀드린 것입니다.
달은 태음太陰의 정수라 차갑고, 해는 태양太陽의 정수라 뜨겁습니다. 허나 이는 과보에 의한 기세간법器世間法으로, 모두 우리 인간 유식唯識이 나토는 것이니, 곧 식識의 모습부분(相分)일뿐, 본디 진실한 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통을 얻은 자는, 곧 달을 뜨겁게도 하고, 해를 차갑게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설하신 사제란 바로 중생 심성心性의 법다운 도리(法爾道理)라서, 진리는 변하거나 달라질 수 없습니다.
예컨대, 고제苦諦는 삼계三界 25유有가, 아래로 아비지옥부터 위로 비비상천非非想天에 이르기까지, 비록 승천과 침몰의 차이는 현격하지만, 모두 네 모습(四相)으로 변천하며 8고苦에 시달리지 않는 게 없으니, 어떻게 이를 즐겁게 바꿀 수 있겠습니까? 또 집제集諦 같으면, 보고 생각하는 두 미혹(見思二惑)과 선ㆍ악ㆍ부동不動 세 유루업有漏業이 정말 확실히 삼계생사윤회를 견인하는 원인이니, 어찌 그밖에 다른 원인이 있겠습니까?
또 멸제滅諦 같으면, 원인이 소멸하면 고통 과보도 따라서 사라지니, 이 어찌 적멸寂滅무위無爲의 안락이 아니겠습니까가? 그리고 도제道諦 같으면, 계정혜戒定慧 삼학이야말로 괴로움 원인과 괴로움 과보를 끊고 괴로움 없는 곳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 어찌 다른 길이 있겠습니까?
이 네 가지 법은 모두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으니(眞實不虛), 그래서?제諦?라고 부릅니다. 부처님께서 진실하게 말씀하시고 비구들 또한 진실하게 이해하였으니, 그래서 결정코(확실히) 의심이 없는 것입니다.
【강의】아노루타(아나율)가 천안 제일로서 당시 대중에 우두머리라서 대중 마음을 관찰하여 부처님께 확실히 아뢴 사연은 이렇습니다. 주지하듯이, 부처님 양대 제자인 지혜 제일 사리불과 신통 제일 목건련은 부처님보다 앞서 이미 열반에 들었고, 염화미소로 부처님 심법을 전해 받은 두타 제일 가섭존자는 부처님 열반 당시 멀리 나가 있어 임종하지 못했기 때문에, 임종 제자 가운데 천안 제일 아나율이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三. 8. 필경공덕 畢竟功德 (0) | 2023.0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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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몹시 깊은 필경 공덕을 현시함 (顯示畢竟甚深功德分) (0) | 2023.01.14 |
六. 최고최상의 증명에 들지 못한 자들을 셋으로 나누어 의심을 끊어줌 (分別未入上上證爲斷疑分) (0) | 2023.01.13 |
六. 3. 유위공덕의 덧없는 모습 (有爲功德無常相) (0) | 2023.01.13 |
七. 갖가지 자성을 벗어나 내가 없는 청정함(離種種自性淸淨無我分) (0) | 2023.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