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三. 8. 필경공덕 畢竟功德

새 책 소개. 부처님 마지막 가르침 유교경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3. 1. 14. 23:36

본문

다음으로 대인이 성취하는 필경공덕(大人成就畢竟功德)을 설합니다.

 

經曰:

汝等比丘! 若種種戲論, 其心則亂, 雖復出家, 猶未得脫. 是故, 比丘當急捨離亂心戲論. 若汝欲得寂滅樂者, 唯當速滅戲論之患. 是名不戲論.

?비구 여러분! 갖가지 희론(유희와 말장난)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비록 다시 거듭 출가할지라도 오히려 해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마음 어지럽히는 갖가지 희론을 얼른 놓아버리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적멸의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희론의 근심을 말끔히 없애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희론하지 않음입니다.?

 

論曰:

8. 대인이 성취하는 필경공덕(大人成就畢竟功德)은, 이상 7가지 장양방편공덕長養方便功德과 달리, 대치법對治法이 아니라 자성에서 멀리함(自性遠離)을 나타냅니다.

(1) 먼저?汝等比丘, 若種種戲論, 其心則亂?은, 네 가지 차별지 장애법이 발동하여, 분별할 수 있는 것은 다 분별해(四種差別智障法分別可分別) 어지러워짐을 경계합니다.?雖復出家, 猶未得脫?은 수도지修道智가 결코 자성이 아님을 뜻합니다.

【절요】희론(말장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진실한 이치에서 생기는 희론이고, 둘째는 세간 사물에서 생기는 희론입니다. 진실한 이치에서 사구게에 집착을 일으켜, (자기) 하나만 옳고 나머지 여럿은 모두 그르다고 비난하는 걸 희론이라 부릅니다. 마음 자성은 본디 사구게를 떠나 있으므로, 일정한 (고정관념) 집착을 일으키면 그 성품을 어지럽히게 됨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어지러워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구나발마求那跋摩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諸論各異端 ?온갖 논설은 각각 끝머리가 다르지만,

修行無二理 수행 이치는 둘이 없다네.

執者有是非 치우쳐 붙잡으면 옳고 그름이 있지만,

達者無違諍 통달한 자는 거슬리거나 다툼이 없다네.?

법(진리)에서 희론을 벌임도 오히려 안 되거늘, 하물며 세간 농담과 해학을 지껄여 말장난하겠는가? 비록 출가해 겉모습은 세속을 떠난 듯 보일지라도, 마음에 아직 진리를 증득하지 못하는 까닭은, 두 가지 희론에 마음이 어지럽혀지기 때문입니다.

【보주】《신심명信心銘》에도 이르기를,?옳고 그름이 생기는 순간, 어지러이 마음을 잃는다.(纔有是非, 紛然失心.)?고 합니다. 그래서 희론을 하면 마음이 어지러워집니다.

 

(2) 나머지 두 구절은, 부지런히 멀리 벗어나도록 닦아(勤修遠離) 희론 없는 경지(無戲論)를 성취하라고 경책합니다.

1)?是故, 比丘當急捨離亂心戲論?은 대하는 모습이 있는 멀리 벗어남(有對相遠離)으로, 그에 상응하는 공덕의 모습(功德相)도 있다.

2)?若汝欲得寂滅樂者, 唯當速滅戲論之患?은, 대하는 모습이 없는 멀리 벗어남(無對相遠離)으로, 그에 상응하는 공덕의 모습(功德相)도 없습니다.?是名不戲論?은 수행을 성취하는 본체성품(體性)이 다름을 나타냅니다.

【보주】희론을 재빨리 놓아버리고 떠나는 그러저러한 공덕의 모습은 볼 수 있는 반면, 말길이 끊기고(言語道斷) 마음 가는 곳이 사라지면(心行處滅), 재빨리 놓아버리고 떠날 희론도 보이지 않고 그러저러한 공덕의 모습도 없습니다.

【해설】진여眞如 열반涅槃은 본래성품이 청정하여,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고(言語道斷), 마음으로 사유할 곳도 사라진지라(心行處滅), 본디 희론으로 까불 경계가 아닙니다. 희론으로 말미암아 적멸의 즐거움이 어긋납니다. 초과初果에서 진실한 지혜를 얻어 사성제를 보면, 분별하는 번뇌는 이미 영원히 끊어집니다.

하지만 삼계 구지(九地: 부처님 경지를 제외한 아홉 자리)에서 81품의 사유하는 미혹(思惑)은, 모두 무시無始 이래 이름과 말의 희론으로 훈습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마음을 뒤흔들고 어지럽혀 항상 불변의 진리(眞常)에 계합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한시바삐 희론을 멀리 놓아버려야, 비로소 열반적멸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善滅?이라 함은, 곧 얻은바 사성제의 진실한 지혜로 연분의 진상(緣眞)을 거듭 사려思慮하고 누누이 관찰하여, 업식業識 종자가 나타나는 대로 깨끗이 제거해, 궁극에 전혀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삼장三藏 이치로 해설한 것입니다.

만약 뚜렷이 열어젖히자면(開顯), 진리가 사건 밖에 있으면 여전히 희론에 불과하며, 사건에 임할 적마다 늘 진리라야 비로소 희론이 아니게 됩니다. 또, 공空에 즉해 (색을) 갖추지 못한다면 여전히 희론에 불과하며, 중도中道로서 텅 비지 않아야 비로소 희론이 아니게 됩니다. 또 변두리를 떠나 중간에 서면 여전히 희론에 불과하며, 변두리에 임하면서도 중간에 임해야 비로소 희론이 아니게 됩니다.

또한 권변權變에 대립하여 실상을 밝히면 여전히 희론에 불과하며, 임기응변을 보이면서도 실상을 드러내 거칠지도 않고 미묘하지도 않아야 비로소 희론이 아니게 됩니다. 또 권변을 말하고 실상을 말하거나 근본을 말하고 자취를 말하면 모두 희론일 따름이며, 마음이 일어나는 듯이 관찰하되 근본과 자취가 모두 사라져야 비로소 희론이 아니게 됩니다.

또한 오직 침묵만을 귀히 여겨 말을 끊는 견해에 떨어져도 여전히 희론에 속합니다. 네 구절(四句)이 모두 말할 수 없되, 인연이 있으므로 또한 말할 수 있고, 말하고 말하지 않고 간에 본디 성품은 절로 평등합니다. 두 가지 해석도 하지 않고, 한 가지 해석도 하지 않으며, 하나기도 하고 둘이기도 하다는 해석도 하지 않고,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는 해석도 하지 않아야, 비로소 희론이 아니게 됩니다. 여기까지 정종분正宗分이 끝납니다.

 

여기까지 출세간 대인공덕을 성취하는 부분(成就出世閒大人功德分)을 다 설했습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