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십의론서(淨土十疑論序):
극락정토 왕생을 아직도 머뭇거리는가?
사랑(애착)이 끈끈하지 않으면 사바고해에 태어나지 않으며, 생각(념불)이 한결같지 않으면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한다[愛不重, 不生娑婆; 念不一, 不生極樂]. 사바세계는 더러운 땅[穢土]이며, 극락세계는 깨끗한 곳[淨土]이다. 사바세계의 수명은 유한하며, 저 곳의 수명은 무한하다.
사바세계에는 모든 고통이 두루 갖춰져 있지만, 저 곳에서는 평안히 수양[安養]하며 어떠한 고통도 없다. 사바세계에서는 업장에 따라 생사고해를 륜회하지만, 저 곳은 한번 왕생하면 영원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며, 만약 중생을 제도하길 원하면 어떠한 업장에도 얽매임 없이 뜻대로 자유자재롭게 할 수 있다.
두 곳의 깨끗함과 더러움, 수명의 장단, 괴로움과 즐거움, 생사 륜회 등이 이처럼 천양지차로 판연히 다르다. 그런데도 중생들이 까마득히 모르고 있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요?
아미타부처님께서는 극락정토에서 중생들을 거두어 받아들이는[攝受] 교주이시고, 석가여래께서는 여기 사바세계에서 극락정토를 가리켜 안내하시는 스승이시며,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께서는 부처님을 도와 중생교화를 널리 펼치시는 분들이시다.
이러한 까닭에 석가여래께서 한평생 가르침을 펴신 경전들은, 도처에서 간곡하고 자상하게[苦口相舊] 극락 왕생을 권유하고 있다.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대세지보살님께서는 커다란 원력의 배[大願船]를 타시고 생사고통의 바다[生死海]에 뜨시어, 이 쪽 언덕[彼岸: 사바세계]에도 집착하시지 않고, 저 쪽 언덕[彼岸: 극락정토]에도 머물지 않으시며, 중간 물살[中流: 천상이나 중음세계?]에도 멈추지 않으신 채로, 오직 중생 제도를 불사(佛事)로 행하신다. 그래서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부처님을 듣고 그 명호를 붙잡아 지니기를 하루 내지 이레 동안 하면서 한 마음 흐트러지지 않으면[一心不亂], 그 사람의 목숨이 다할 때 아미타부처님께서 뭇 성인 대중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타나시리니, 이 사람은 목숨이 끊어질 때 마음이 뒤바뀌지(흔들리지) 아니하면 곧장 극락국토에 왕생하게 된다.”
또 경전[無量壽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내 명호를 듣고 내 국토[극락정토]를 생각하며, 온갖 공덕의 뿌리를 심으면서 내 국토에 생겨나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 기도하여, 정말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할 것 같으면, (나는 결코) 올바른 깨달음[正覺]을 이루지 않겠노라.”
그래서 기환정사(祇桓精舍: 기원정사)의 무상원(無常院)2)에서는, 병든 환자들에게 서쪽을 향해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생각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무상원(無常院): 선가에서는 녈반당 또는 연수당(延壽堂)이라고 하는데, 림종을 맞이하는 환자 스님이나 노스님한테 인생무상을 관조하라고 특별히 배치한 장소. 햇빛이 들지 않는 서북쪽 구석에 두었다고 함.]
무릇 아미타부처님의 광명은 막힘이나 한량이 없어 시방 법계를 두루 비추면서, 념불(부처님을 생각)하는 중생들을 빠뜨림 없이 모두 거두어 받아들이시기[攝受] 때문이다.
성인(부처님)과 범부(중생)는 본디 한 몸[聖凡一體]인지라, 기연(機緣)만 맞으면 서로 감응(感應)하여 통하게 마련이다. 모든 부처님 마음 안의 중생은 티끌티끌마다 극락세계이고, 중생들 마음속 정토는 생각생각마다 아미타부처님이다[諸佛心內衆生, 塵塵極樂; 衆生心中淨土, 念念彌陀].
내가 이러한 리치로 보건대, 누구나 쉽게 극락왕생할 수 있다. 지혜로운 자는 의심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왕생할 수 있고, 선정(禪定)에 드는 이는 마음이 어지럽게 흩어지지 않기 때문에 쉽게 왕생할 수 있다. 또 계률을 잘 지키는 자는 온갖 오염을 멀리하기 때문에 쉽게 왕생할 수 있고, 보시를 즐겨하는 이는 나[我]라는 생각이 없어서 쉽게 왕생할 수 있다. 또 인욕을 잘하는 자는 성내지 않기 때문에 쉽게 왕생할 수 있고,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이는 뒤로 물러나지 않기에 쉽게 왕생할 수 있다. 그리고 선도 행하지 않고 악도 짓지 않는 자는 생각이 오롯이 한결같기 때문에 쉽게 왕생할 수 있고, 온갖 죄악을 지어 업보가 눈앞에 나타나는 이는 정말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기에 쉽게 왕생할 수 있다.
그런데 비록 온갖 선행을 쌓았더라도, 만약 정성과 신심이 없고 깊은 마음[深心]도 없으며 (극락왕생에) 회향 발원하는 마음도 없는 자라면, 상품상생(上品上生)에 왕생할 수 없다.
오호라!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는 지니고 염송하기가 몹시 쉽고, 극락정토는 왕생하기가 매우 쉽다. 그런데도 중생들이 념불할 줄 모르고 왕생할 수 없다면, 부처님인들 그런 중생들을 어찌하랴!
【옮긴이 보충 해설: 일찍이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에서도, “상근기의 선비가 도를 들으면 (믿고) 부지런히 (수)행하는데, 중근기의 선비가 도를 들으면 있는 듯 없는 듯 반신반의하며, 하근기의 선비가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일반 중생들한테) 크게 비웃음을 사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 不足以爲道].”고 말했다.
또 “내 말(도)은 알기도 매우 쉽고 행하기도 매우 쉬운데, 천하 사람들이 알 수도 없고(줄도 모르고) 행할 수도 없다(줄도 모른다.)[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고 탄식했다.
불교의 여러 수행 방법 가운데, 특히 정토 념불 수행법문이 바로 노자가 탄식했던 것처럼, 가장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우면서, 또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고 행할 줄 모르는 대도(大道)이리라.】
무릇 악업(惡業)을 지으면 삼악도에 떨어지고, 아미타불을 사념[念佛]하면 극락정토에 왕생한다. 이 두 가지 법문은 모두 부처님 말씀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질까 근심 걱정하면서도, 극락 왕생을 의심하는 자가 대부분이니, 이 또한 미혹됨이 아니던가?
동진(東晋) 때 혜원(慧遠) 법사께서 당시의 고아한 선비 류유민(劉遺民) 등 123인과 함께 려산(廬山)에서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한 것도 대개 여기(념불로 극락 왕생함)에 정성을 다했을 뿐이다. 그 뒤 7백 년 동안 승속(僧俗)이 다 함께 수행하여, 극락 왕생의 감응을 얻은 분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의 수행 체험이 모두 정토전기(淨土傳記: 특히 『淨土聖賢錄』)에 실려 있으니, 어찌 허풍 떠는 거짓말이겠는가?
그런데 아미타부처님의 가르침을 높이 찬탄하고 널리 펼치는 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오직 천태(天台) 지자(智者) 대사의 『정토십의론(淨土十疑論)』이 최고 으뜸으로 꼽힌다. 대사는 성인의 거룩한 말씀을 인용하여 뭇 의심을 확 풀어 주고 온갖 미혹을 말끔히 씻어 준다. 마치 만 년(萬年) 동안 깜깜했던 암실(暗室)에 햇빛이 비쳐 들면, 단박에 밝은 빛이 가득 차는 것과 같고; 또한 천 리(千里) 먼 물길[水路]에 배를 띄워 순풍에 돛 달면, 자기 힘을 전혀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나아갈 수 있는 것과도 같다.
법장(法藏: 아미타부처님의 전생 원인 수행 당시의 신분) 비구의 후신(後身)이 아니라면, 결코 이러한 경지(정토십의론의 법문)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나 양걸(楊傑)이 얼마 전에 서울에서 이 글을 얻었는데, 설하신 법문을 읽고 나서 믿음이 절로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나 스스로 혹독한 벌을 받았는지라, 느끼고 깨달은 바가 더욱 인상 깊고 크기만 하다. 이에 이 법문을 널리 유포시키고 길이 전하기 위하여, 삼가 몇 자 서문을 덧붙인다.
송(宋)나라 무위자(無爲子) 양걸(楊傑)
[양걸(楊傑): 자(字)는 차공(次公), 자호(自號)는 무위자(無爲子) 또는 무위인(無爲人)이며, 생졸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대략 송나라 신종(神宗) 원풍(元豊: 1078~1085년) 전후에 생존했다. 젊어서부터 명성이 있었으며, 가우(嘉祐) 연간에 진사에 급제하고, 원풍(元豊) 연간(1081년 전후)에 관직이 태상(太常)에 이르러, 그 당시의 예악(禮樂)에 관한 조정의 토론에는 모두 관여했다. 원우(元祐: 哲宗 연호, 1086~1093년) 연간(1090년 전후)에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이 되었고, 윤주(潤州) 지사로 나갔고, 양절제점형옥(兩浙提點刑獄)에 제수되었으며, 70세로 작고했다. 저서로 문집 20여권과 악기(樂記) 5권이 있다. (宋史 권443, 列傳제202, 文苑5 및 권128, 志제81, 樂3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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