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 중생도 극락 왕생하여 불퇴전에 이르는 까닭
다섯 번째 의문
번뇌망상에 얽매인 범부 중생들은 죄악의 업장이 몹시 두텁고 무거워, 한없는 번뇌망상을 터럭 끝만큼도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방 정토는 시방 삼계를 벗어나 있다고 하던데, 번뇌망상에 얽매인 범부 중생들이 어떻게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답변
두 가지 연분[緣]이 있으니, 첫째는 자력(自力: 자기 힘)이고, 둘째는 타력(他力: 남의 힘)이오. 자력이라 함은, 자기 이 (사바) 세계에서 도업을 닦는 것이니, 진실로 서방 정토에 왕생할 수 없소. 그런 까닭에 『영락경(瓔珞經)』에 이렇게 말씀하셨소.
“번뇌망상에 얽매인 범부 중생이 불·법·승 삼보도 모르고 선악의 인과응보도 알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보리심(菩提心)을 낸 때부터 믿음을 바탕으로 부처님 가르침 안에 머물면서, 계률을 근본으로 삼고 보살계를 받아 지닌 다음, 한 생 한 생 계속 이어가며 계률을 지킴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수행해 나간다. 그렇게 하기를 1겁(劫), 2겁, 3겁 계속해 나가야 비로소 초발심주(初發心住)에 이른다.
이와 같이 수행하여 10신(信) 10바라밀(波羅蜜) 등을 꾸준히 닦아 가면서, 한량없는 발원 수행[行願]을 잠시도 끊임없이 계속하여 1만 겁(劫)이 꽉 차야, 바야흐로 제6 정심주(正心住)에 이르게 된다. 만약 여기서 더 한층 정진하여 제7 불퇴주(不退住)에 이를 것 같으면, 여기가 곧 종성위(種性位)이다.”
이상은 자력 수행의 대강을 말씀하신 것인데, 끝내 서방 정토에는 왕생하지 못하는 것이오.
반면 타력(수행)이라 함은, 아미타부처님께서 념불(念佛)하는 중생들을 모두 대자대비의 원력으로 거두어(받아) 주심을 굳게 믿고서, 곧장 보리심을 내어 념불삼매(念佛三昧)의 수행을 하는 것이오.
시방 삼계에 중생의 몸 다시 받는 걸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며, 신심을 내어 보시와 지계로 복덕을 닦아 가되, 하나하나 수행마다 한결같이 아미타부처님의 서방 정토에 왕생하길 회향 발원하는 것이오. 그러면 아미타부처님의 원력 가피에 편승하여, 중생 자신의 근기와 정성이 (부처님의 원력과) 서로 감응함으로써, 곧장 서방 정토에 왕생할 수 있소. 그래서 『십주비바사론』에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 (사바) 세계에서 도업을 닦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닦기 어려운 길[難行道]이고, 다른 하나는 닦기 쉬운 길[易行道]이다. 닦기 어려운 길이라 함은, 이 오탁악세에서는 한량 없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어 중생을 제도하시어도 중생이 아비발치(阿萊跋致: 不退轉)를 닦아 얻기가 몹시도 어려움을 말한다. 그 어려움은 티끌처럼 많아 말로 다할 수 없지만, 아주 중요한 것만 말하자면 대략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외도(外道)가 착한 모습으로 다가와 보살도[正法]를 어지럽힌다.
둘째, 사악한 무뢰한들이 남의 훌륭한 덕을 깨뜨린다.
셋째, 좋은 결과[善果]에 걸려 넘어져 청정한 수행[梵行]이 무너지기 쉽다.
넷째, 자신만 이롭기 바라는 성문(聲聞)에 머물러 대자비의 보살행에 장애가 된다.
다섯째, 오직 자력 수행만 있고, 타력의 가피가 없다.
비유하자면, 절름발이가 도보로 길을 걷자면 하루에 고작 몇 십 리도 못 가면서 지극히 힘들고 고생만 하는데, 이것이 자력 수행에 해당한다.
반면 닦기 쉬운 길이라 함은, 부처님 말씀을 믿고 념불삼매의 가르침에 따라 정토 왕생을 발원하는 것이니, 아미타부처님께서 념불 중생을 거두어들이시겠다는 원력의 가피를 받아 의심할 나위 없이 결정코 극락 왕생함을 뜻한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순풍에 돛 단 듯이 나아감에 잠깐 사이에 천리에 이르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타력 수행에 해당한다.
달리 비유하자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시중들게 되면, 하루 밤낮 사이에 네 천하(四天下)를 두루 돌게 되는데, 이는 그 사람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전륜성왕의 위력 덕택이다.”
만약 번뇌망상에 찌든[有漏] 범부 중생들은 서방 정토에 왕생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런 번뇌망상에 찌든 범부 중생들은 부처님 몸[佛身]도 또한 뵈올[親見할] 수 없다는 말이 되오.
그런데 념불삼매는 물론 번뇌망상을 여읜[無漏] 선근(善根)들이 들어갈 수 있지만, 번뇌망상에 찌든 범부 중생들도 각자 수행의 정도에 따라 부처님 몸을 거친 모습으로나마 어렴풋이 뵈올 수 있다오. 보살 경지에 이른 분들은 미세한 모습까지 뚜렷이 친견하는 것일 따름이오.
극락정토 또한 마찬가지라오. 비록 번뇌망상을 여읜[無漏] 선근(善根)들이 왕생하지만, 번뇌망상에 찌든 범부 중생들도 위없는 보리심을 내어 정토 왕생을 발원하면서 늘상 념불하게 되면, 그 힘으로 번뇌를 다스려 소멸시키고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오. 다만 각자 념불 수행[번뇌 소멸]의 정도에 따라 거친 모습을 어렴풋이 친견하되, 번뇌가 스러진 보살은 미세한 모습까지 뚜렷이 친견하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니, 이러한 리치를 어찌 의심한단 말이오?
그래서 『화엄경』에서 이르시기를, “일체의 모든 부처님 국토는 한결같이 두루 장엄하고 청정하거늘, 중생의 업장과 수행이 달라 각자 보는 게 같지 않을 뿐일세[一切諸佛刹 平等普嚴淨, 衆生業行異 所見各不同].”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러한 뜻이라오.
여섯 번째 의문
번뇌망상에 얽매인 범부 중생들이 설령 아미타부처님의 원력 가피로 서방 정토에 왕생한다고 하더라도, 사견(邪見)과 탐·진·치 삼독(三毒) 등이 늘상 일어날 텐데, 어떻게 서방 정토에 왕생한 다음 곧장 불퇴전(不退轉)의 경지를 얻어 삼계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답변
서방 정토에 왕생하게 되면, 다섯 가지 인연으로 불퇴전의 경지에 들 수 있다오.
첫째, 아미타부처님께서 대자대비 원력으로 거두어 지켜 주시기 때문에 불퇴전을 얻을 수 있소.
둘째, 부처님 광명이 늘상 비추기[佛光常照] 때문에, 보리심이 계속 증진하기만 하고 줄어들거나 물러남이 없소.
셋째, 물 소리·새 소리·나무 소리·바람 소리 등의 교향 음악이 모두, 륙도 륜회 중생계의 과보가 본디 괴롭고[苦] 텅 비었으며[空], 덧없고[無常] 나라고 할 게 없다[無我]는 진리를 설하기 때문에, 이를 듣는 사람들이 늘상 부처님을 생각하고[念佛] 부처님 가르침을 생각하며[念法] 그 가르침을 수행하는 분들을 생각하는[念僧] 마음을 내게 되어 불퇴전에 머문다오.
넷째, 그 서방 정토에서는 순전히 보살님들만 있어 훌륭한 벗[良友: 道伴]이 되기 때문에, 사악한 연분이나 경계가 전혀 없소. 밖으로는 사악한 귀신이나 마장(魔障)이 없고, 안으로는 탐·진·치 삼독 등의 번뇌가 언제까지라도 일어나지 않기에, 불퇴전이 된다오.
다섯째, 그 서방 정토에 왕생하면, 수명이 보살이나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영겁(永劫)토록 계속되기 때문에, 수행이 후퇴하거나 정체할 염려가 없소.
여기의 사바고해 오탁악세는 목숨도 아주 짧고 덧없지만, 그 곳은 아승기겁을 지나도록 다시는 번뇌망상이 일어남이 없이 오래도록 도업을 계속 닦아나갈 수 있소.
그런데 어떻게 무생법인을 얻지 못하겠소? 이러한 리치가 아주 분명하거늘, 더 이상 무엇을 의심한단 말이오?
【옮긴이 보충 해설: 『화엄경』 「십주품(十住品)」에 보면, 법혜(法慧) 보살님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자와 보살무량방편삼매에 들어 무애지(無巫智) 등 열 가지 지혜를 얻고, 보살이 삼세 모든 부처님 집안에 머물며 수행해 나아가는 열 가지 단계를 설한 내용이 나옵니다.
첫째가 초발심주(初發心住), 둘째가 (그 마음 자리를 정돈하는) 치지주(治地住), 셋째가 수행주(修行住), 넷째가 (존귀한 법이 생겨나는) 생귀주(生貴住), 다섯째가 보살구족방편주(菩薩具足方便住), 여섯째가 정심주(正心住), 일곱째가 불퇴주(不退住), 여덟째가 (청정 수행으로 어린애같이 천진해지는) 동진주(童眞住), 아홉째가 보살법왕자주(菩薩法王子住), 열째가 보살관정주(菩薩灌頂住)라고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정심주(正心住)란, 보살이 다음의 열 가지 법을 듣고도 마음이 흔들림 없이 안정된 경지를 뜻합니다.
① 부처님, ② 부처님의 가르침[法], ③ 보살님, ④ 보살님이 수행하는 법을 각각 누군가 찬탄 또는 비방·훼손하거나, ⑤ 중생이 유한하다거나 무한하다거나, ⑥ 중생이 혼탁[有垢]하다거나 청정[無垢]하다거나, ⑦ 중생을 제도하기 쉽다거나 어렵다거나, ⑧ 법계가 유한하다거나 무한하다거나, ⑨ 법계가 생성된다거나 파괴된다거나, ⑩ 법계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등을 각각 누군가 말하는 걸 듣고도, 부처님 가르침[佛法] 가운데 마음이 조금도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안정되는 경지라고 합니다.
이처럼 열 가지 말을 듣고도 마음이 놀라거나 흔들리지 않는 정심주(正心住)는, 유교의 세간적 인격 수양에 대비하자면, 공자가 마흔에 미혹되지 않았다는 불혹(不惑), 또는 맹자나 고자(告子)가 역시 마흔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부동심(不動心)의 단계에 상응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정심주의 보살은, 일체 모든 법이 모습[相]도 없고, 본체[體]도 없으며, 닦을[修]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所有] 않으며, 진실하지도 않고, 텅 비었으며, 본디 성품도 없고, 허깨비 같고, 꿈 같으며, 어떠한 분별도 없다는 열 가지 가르침을 배우고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한 단계 높이 뛰어올라야, 비로소 일곱 번째 불퇴전의 경지에 올라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되는데, 이 때는 어떠한 법을 듣든지 남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훤히 알게 된다고 합니다.
불퇴주에 오르면, ① 부처님이 계신다든지 안 계신다든지, ② 부처님 가르침이 있다든지 없다든지, ③ 보살님이 계신다든지 안 계신다든지, ④ 보살님 수행이 있다든지 없다든지, ⑤ 보살님 수행이 세속을 떠났다든지 못 떠났다든지, ⑥ 과거에 부처님이 계셨다든지 안 계셨다든지, ⑦ 미래에 부처님이 계실 거라든지 안 계실 거라든지, ⑧ 현재 부처님이 계신다든지 안 계신다든지, ⑨ 부처님 지혜가 끝 있다든지 끝 없다든지, ⑩ 삼세(三世)가 한 모습[一相]이라든지 아니라든지 따위를 말하는 걸 듣고도,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마음이 조금도 후퇴하지 않는다[不退轉]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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