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음 갈라지면 도(진리)와 이웃하지 못하리
석상(石霜) 경제(慶諸) 선사(禪師)께서 입적하신 뒤, 대중들이 남악(南嶽) 현태(玄泰) 수좌한테 그 뒤를 이어 주지를 맡으라고 추천하였습니다. 당시에 구봉(九峯) 도건(道虔) 스님이 시자였는데,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스승님의 뒤를 이어 주지를 맡으려면, 모름지기 스승님[先師]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자 현태 수좌가 반문했습니다.
“스승님한테 무슨 뜻이 계셨소? 나는 뭔지 잘 모르겠소.”
이에 도건 스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평소에 사람들한테 늘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쉬는 듯 가라. 그친 듯 가라[休去歇去]. 싸늘하게 식은 듯 고요히 가라[冷湫湫地去]. 옛 절의 향로처럼 가라[古廟香捏去]. 한 올의 흰 비단실처럼 가라[一條白練去]. 한 생각에 만 년이 스쳐지나듯 가라[一念萬年去]. 불 꺼진 싸늘한 재와 말라 죽은 나무처럼 가라[寒灰枯木去]. 그 밖에는 별 볼일 없느니라.’
그러자 현태 수좌가 말했습니다.
“이는 단지 하내 빛깔[물질] 세계의 일[현상]로 비유하신 것이오.”
이에 도건 스님이 대꾸했습니다.
“원래 스승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정말로 모르셨군요.”
그러자 현태 수좌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나를 우습게 보는데, 향로에 향을 담아 오시오. 향 연기가 다할 때까지 내가 만약 가지(입적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스승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리다.”
좌우에 있던 스님들이 곧바로 향로에 향을 담아 불을 붙였는데, 향 연기가 다 사라지기 전에, 현태 수좌는 앉은 채로 곧장 입적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도건 스님이 현태 수좌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앉은 채로 해탈하거나 선 채로 입적[坐脫立亡]하는 것이야, 물론 스승님의 뜻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아직 꿈속에서도 보지 못했구려[未夢見在]!”18)
[이 단락은 송나라 때 보제(普濟) 스님이 지으신 『오등회원(五燈會元)』 권제6 「구봉도건선사(九峯道虔禪師)」조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하신 것임.]
또 한 번은 조산(曹山) 본적(本寂) 선사께서 앉아 계신데, 지의(紙衣) 도자(道者)가 뜨락 아래를 지나갔습니다. 그 때 이를 보신 조산 선사께서 이렇게 말문을 여셨습니다.
“아니, 지의 도자가 아니시오?”
그러자 지의 도자는 “아이구, 황송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조산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대체 무엇이 종이옷[紙衣] 아래의 일이오?”
지의 도자가 답변했습니다.
“한 겹 가죽 옷[살갗]을 겨우 몸에 걸치고 있을 뿐이며, 모든 법[萬法]이 죄다 그러합니다.”
다시 조산 선사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대체 무엇을 종이옷[紙衣] 아래서 쓰고 있소?”
그러자 지의 도자는 “좋습니다”고 말을 받더니만, 그 자리에 선 채로 곧장 입적해 버렸습니다. 이에 조산 선사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그렇게 갈 줄만 알았지, 이렇게 올 줄은 모르는구먼!”
그러자 지의 도자는 다시 눈을 뜨더니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내 신령스런 진실한 성품이 아기보(자궁)를 빌리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一靈眞性, 不假胞胎時, 如何]?”
그 말을 들은 조산 선사는 실망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아직 미묘하진 못하오[未是妙].”19)
[이 단락은 『오등회원』 권제13 「조산본적선사(曹山本寂禪師)」조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하신 것임.]
무릇 앉은 채로 해탈하거나 선 채로 입적하는 것[坐脫立亡]은, 아직 진짜 큰 법[大法: 위대한 진리]을 훤히 알지 못한지라, 진실로 큰 일[大事: 생사륜회]을 끝마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지에 나아간 수행 공부라면, 물론 그리 간단하고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로 앞에 인용한 두 일화에서 나오는 그런 정신을 가지고 념불 수행에 전심(專心) 진력(盡力)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발원한다면, 틀림없이 안전하게 상품상생(上品上生)에 오를 것입니다. 그러면 더이상 다른 사람을 만나 굳이 자신의 공부를 점검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예컨대, 지의 도자가 바로 이어 “그러면 어떤 것이 진짜 미묘한 것입니까?”라고 묻자, 조산 선사께서 “빌리지 않으면서(빌린다는 생각조차 없이) 빌리는 것이오[不借借].”라고 대답하셨고, 그제서야 지의 도자는 진기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입적했습니다.
오호라! 여기서 빌린다는 생각 없이 사바세계의 피비린내 나고 불결한 아기보(자궁)를 빌릴 바에야, 차라리 똑같이 빌린다는 생각 없이 극락정토의 향기롭고 정결한 련꽃을 빌리는 게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아기보가 피비린내 나고 불결하기 짝이 없는 것과, 극락정토의 련꽃이 향기롭고 정결한 것만 비교해서 논한다고 해도, 그 우열의 차이는 너무도 현격하여 더이상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한번 중음(저승)을 거쳐 아기보를 들어갔다 나오게 되면, 자기 스스로 주인 노릇하기가 몹시도 어렵거늘, 무얼 망설입니까? 반면 극락세계의 련꽃이 한번 피어나면, 저절로 모든 수승한 인연이 두루 갖추어집니다. 시간으로 비유하자면, 하루와 1겁(劫)처럼 동떨어져 있고, 공간으로 대비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로도 사바(아기보)의 고통과 극락(련꽃)의 즐거움을 이루 다 비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영명(永明) 대사께서 사료간(四料簡)을 읊어 일깨우신 가르침도 전혀 이상하거나 지나치지 않습니다.
有禪無淨土 참선 수행만 있고 념불 공덕이 없으면,
十人九蹉路 열 사람 중 아홉은 길에서 자빠지지만
無禪有淨土 참선 수행은 없더라도 념불 공덕만 있으면
萬修萬人去 만 사람 닦아 만 사람 모두 가도다!
이 법문은 진리의 말씀[眞語]이고 진실한 말씀[實語]이며, 대자대비심에서 창자가 끊어지듯 비통하게 눈물을 흘리시며 토하신 말씀입니다. 공부하는 수행인이라면, 이 말씀을 소홀히 보아 넘기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옮긴이: 앞에서 지의 도자가 입적한 뒤 조산 선사께서 읊은 게송을 참고로 보충 소개합니다.】
覺性圓明無相身 본래 성품 원만하고 밝아 모습이나 몸 없음을 깨닫고
莫將知見妄疏親 지식이나 견해로 망령되이 멀고 친함을 따지지 말라.
念異便於玄體昧 한 생각 달라지면 금세 그윽한 본체에 어두워지고
心差不與道爲隣 한 마음 갈라지면 도(진리)와 이웃하지 못하리.
情分萬法沈前境 감정이 온갖 법을 분별하면 눈앞 경계에 빠져들고
識鑒多端喪本眞 의식이 여러 갈래로 궁리하면 진리의 본체 잃으리.
如是句中全曉會 이 같은 시구의 뜻 온전히 알아차린다면,
了然無事昔時人 훤히 통달하여 번뇌 없던 바로 그 옛 도인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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