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의 공덕
정토 법문에서는 발원이 최고 중요합니다. 무릇 소원이 있는 사람은 결국은 틀림없이 그 소원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울두람불(鬱頭藍弗)21)은 강 가 숲 아래서 비상천(非想天)의 선정(禪定)을 닦고 있었는데, 매번 선정에 들려고 할 때마다 곧잘 물고기와 새들의 퍼덕임에 깜짝 놀라 이루지 못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쁜 소원이 떠올랐습니다.
[울두람불(鬱頭藍佛): 석가모니께서 출가하여 첫 번째 아라라여가람(阿羅邏與伽藍)한테 도(道)를 물은 뒤, 두 번째로 도를 물은 선인(仙人)인데, 그는 비상천의 선정[非想定]으로 대답함. 울두람불은 달희자좌(獺戱子坐)라는 뜻으로 번역되는데, 비상천의 선정에 들어 다섯 신통[五神通]을 얻어 왕궁에 날아들어 갔는데, 선정에서 깨어나면서 신통력을 잃고 걸어서 돌아왔다고 함.]
‘내가 나중에 나는 삵[飛狸]이 되어 숲 속에 들어가 새를 잡아먹고 물 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먹어야겠다.’
나중에 비상천의 선정을 이룬 뒤, 마침내 비상천상에 생겨나 팔만 대겁(大劫)의 수명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천상의 과보가 다하자 드디어 타락하여 나는 삵이 되었고, 소원대로 숲과 물 속에 들어가 새와 물고기를 잡아먹었습니다. 이는 나쁜 소원[惡願]으로, 우리의 본성(本性: 佛性)과 서로 크게 어긋나는데도, 오히려 막대한 위력이 작용하여 팔만 대겁 이후에 원만히 이루어졌습니다. 하물며 우리 본성에 딱 들어맞는 착한 소원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신승전(神僧傳)』에 보면, 이런 전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 스님이 돌부처님[石佛] 앞에서 별 생각 없이 농담 삼아 이렇게 발원했습니다.
‘만약 이번 생에 생사 륜회를 끝마치지 못한다면, 원컨대 다음 생에는 위세와 무술이 뛰어난 대신[威武大臣]이 되어지이다.’
과연 나중에 대장군이 되었습니다. 이는 농담 삼아 지껄인 소원인데도 결국에는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물며 지극정성으로 발한 소원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또 이런 전기도 실려 있습니다. 한 스님이 경론(經論)에 박학 통달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인정을 받지 못하자, 몹시 탄식하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마침 옆에 있던 다른 스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부처님 법을 배웠다면서, 어찌하여 유독 부처님 과위[佛果]를 이루기 전에 먼저 사람 인연[人緣]을 맺어야 한다는 가르침만은 듣지를 못했는가? 그대가 비록 제아무리 부처님 법에 훤히 통달했더라도, 인연이 없으면 또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자 그 스님은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바로 여기서 끝난단 말인가?”
이에 옆에 있던 스님이 “내가 그대 대신 해주리라.” 하고, 그 스님이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 스님이 다른 건 없고, 겨우 옷가지 하나 여벌로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하자, 옆에 있던 스님은 ‘그거면 충분하다’고 말한 뒤, 그 옷가지를 팔아 그 돈으로 음식물을 샀습니다. 그리고는 그 스님을 깊은 숲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길짐승과 날짐승과 곤충들이 많은 곳에 이르러 음식을 땅에 놓은 뒤, 이렇게 발원하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가 20년 뒤에 바야흐로 크게 부처님 법을 펼치리라.”
그 스님은 시킨 대로 발원했습니다. 과연 20년 뒤에 비로소 부처님 법을 펼치기 시작하여 몇 년 동안 그 교화를 받은 사람이 무척 많았는데, 모두가 그 음식을 받아먹은 길짐승과 날짐승과 곤충들이었습니다.
이야말로 원력의 불가사의한 위력입니다. 이렇듯이 다른 사람의 발원으로도 짐승과 곤충까지 축생을 벗어나 인간세상[人道]에 들어오도록 포섭할 수 있는데, 어찌 자신의 발원으로 자기 자신을 제도할 수 없겠습니까?
아미타부처님께서는 48원으로 스스로 부처님이 되셨는데, 우리가 (극락정토 왕생하겠다고) 발하는 소원은 바로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받아들이시겠다는 발원에 꼭 들어맞습니다. 이러한즉, 단지 발원만으로도 곧장 왕생할 수 있거늘, 하물며 부처님께서는 불가사의하게 대자대비하시니 오죽하겠습니까?
예컨대, 영가(塋珂)는 술과 고기를 가리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극락왕생전』을 보면서 한 분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한 번씩 고개를 끄덕이더니만, 마침내 단식(斷食)하며 념불하기 시작했습니다. 념불한 지 이레째 되는 날, 마침내 부처님께서 몸소 나토시어 이렇게 위로해 주시는 감응을 얻었습니다.
“그대는 인간 세상의 수명이 아직 10년이나 남았으니, 그 동안 념불을 열심히 잘해야 하느니라. 내가 10년 뒤 다시 와서 그대를 맞이하겠노라.”
이에 영가가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사바세계는 혼탁하고 사악하여 올바른 생각[正念]을 잃기 쉬우니, 원컨대 일찌감치 정토에 왕생하여 뭇 성인들을 받들어 모시고 싶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내가 사흘 뒤에 와서 그대를 맞이해 가겠노라.”
그러더니 과연 사흘 뒤에 왕생하였습니다.
또 회옥 선사(懷玉禪師)는 정토법문 수행에 정진하였는데, 하루는 불보살님들이 허공에 가득한 가운데 한 사람이 은빛 좌대[銀臺]를 가지고 들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회옥 선사가 생각하기를, “내가 한평생 정진하면서 뜻을 황금 좌대[金臺]에 두어 왔는데, 어찌하여 지금 그러하지 않단 말인가? 하고 서운해 하였습니다. 그러자 은빛 좌대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에 회옥 선사가 더욱 용맹정진을 가하였는데, 21일이 지난 뒤 다시 불보살님들이 허공에 꽉 찬 가운데, 지난번에 은빛 좌대를 가지고 온 사람이 이번에는 황금 좌대로 바꿔 가지고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회옥 선사는 마침내 고요하고 담담히 서거하였답니다.
그리고 류유민(劉遺民)은 혜원(慧遠) 대사의 동림사(東林寺) 백련결사(白蓮結社)처럼, 뜻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결사(結社)하여 념불했습니다. 하루는 부처님을 생각하던 차에 부처님께서 몸을 나토시는 걸 친견했습니다. 그러자 류유민은 “어떻게 하면 여래께서 손으로 내 머리를 만져 주실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부처님께서 정말로 곧장 손으로 자기 머리를 만져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어떻게 하면 여래께서 옷으로 내 몸을 감싸 주실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였는데, 이번에도 정말로 부처님께서 옷으로 자기 몸을 감싸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오호라! 부처님께서 중생들한테 해 주시지 않는 게 없으니, 진실로 대자대비하신 부모님이라 하겠습니다. 빨리 왕생하길 원하면 바로 빨리 왕생하도록 받아 주시고, 황금 좌대를 원하면 곧장 황금 좌대로 바꾸어 주시며, 손으로 머리를 만져 주시길 원하면 곧 머리를 만져 주시고, 옷으로 몸을 덮어 감싸 주시길 원하면 곧장 몸을 덮어 감싸 주십니다.
부처님께서 이토록 모든 중생들한테 자비로우신데, 어찌하여 유독 나한테만 자비롭지 않으시겠습니까? 또 부처님께서 이토록 모든 중생의 소원을 다 채워 주시는데, 어찌하여 유독 내 소원만 채워 주시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의 대자대비심은 가리고 고름[揀擇]이 없으시거늘, 어찌하여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진실로 발원할 수 있다면 믿음[信]이 이미 그 안에 있게 되고, 믿음과 발원이 진실하다면 (념불) 수행은 하려고 일부러 마음먹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믿음[信]과 발원[願]과 념불 수행[行]의 세 가지 밑천[資糧]은 오직 발원[願] 한 글자에 죄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진귀하고 소중한 것은 정신(精神) 말고는 없습니다. 또 세상에서 가장 아깝고 애착스러운 것은 시간[光陰] 말고는 없습니다. 한 생각이 청정하면 부처님 법계의 인연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오염되면 아홉 법계(보살 이하 륙도) 중생의 인연이 싹틉니다.
무릇 한 생각 움직임에 따라 열 법계의 종자가 뿌려지니, 정말 진귀하고 소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오늘 하루가 이미 지나가면 우리 생명 또한 따라서 줄어드니, 한 순간의 시간 빛[時光]은 바로 한 순간의 생명 빛[命光]입니다. 그러니 아깝고 애착스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실로 정신이 진귀하고 소중한 줄 안다면,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고 생각생각에 부처님 명호를 붙잡아 지닐 것입니다. 또 시간이 아깝고 애착스러운 줄 안다면, 허송세월하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정토 법문을 갈고 닦아 익힐 것입니다. 가령 부처님 명호를 놓아두고서 따로 삼승성인(三乘聖人: 보살·벽지불·성문)의 수행을 닦는다면, 이 또한 정신의 낭비며, 달리 비유하자면 천만 근이 되는 거대한 활(대포)로 새앙쥐를 잡으려고 화살(포탄)을 발사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륙도 범부 중생의 생사 륜회의 업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또 가령 정토 법문을 놓아두고서 따로 권승(權乘: 임시방편)의 소과(小果)를 취한다면, 이 또한 허송세월이며, 마치 보배로운 여의주(如意珠)를 가지고 옷 한 벌이나 밥 한 끼와 맞바꾸는 격입니다. 하물며 인간이나 천상의 번뇌 많은[有漏] 과위를 택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정신을 진귀하고 소중히 여기며 시간을 아깝게 여겨 애지중지한다면, 마음이 오롯이 집중되어 부처님께서 쉽게 감응하실 것이며, 수행이 부지런히 계속되어 공부가 쉽게 정통(精通)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진실로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 수시로 그 가르침을 받잡으며 눈앞에서 자비로운 음성을 들으리니, 틀림없이 자기 마음을 미묘하게 깨닫고 법계를 깊이 증득할 것입니다. 그러면 한 생각[一念]의 찰나를 영겁(永劫)으로 늘이기도 하고, 거꾸로 영겁을 한 생각의 찰나로 줄이기도 하면서, 한 생각의 찰나와 영겁이 서로 원만히 융합하여 아주 자유자재로운 대신통을 얻을 것입니다.
이야말로 정신을 진귀하고 소중히 여기며 시간을 아깝게 애지중지한 과보를 스스로 받아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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