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정토가 있다는 뜻을 풀이함[西有解]
서유(西有)란 서방 정토가 분명히 있음을 말합니다. 다만 구체적 사실[事]이나 추상적 리치[理]나 텅 빈 본질[空]이나 유형의 현상[有] 등의 관점에 따라 갖가지 의미의 모습을 띨 뿐입니다.
만약 일정한 (서쪽)방향이 실제로 있어 바뀔 수 없다는 뜻으로 말한다면, 이는 범부 중생심이 집착하는 보통의 있음[常有]입니다. 또 만약 일체의 경계는 업(業)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며, 그 나타나는 곳에서 그 자체가 온전히 텅 비었다고 말한다면, 이는 있지 않으면서 있고 있음이 곧 있지 않음을 뜻하니, 진짜 공[眞空]과 미묘하게 있음[妙有]의 두 진리[諦]가 서로 관통하고 있음입니다.
그런데 만약 서로 침탈하여 함께 없어져서 두 진리 모두 사라진다면, 이는 텅 비지도 않고 있지도 않는 있음[非空非有之有]입니다. 만약 서로 보완하여 둘다 성립하고 두 진리 모두 존재한다면, 이는 텅 비었으면서도 있는 있음[卽空卽有之有]입니다.
만약 바로 함께 사라질 때 곧 함께 존재하고, 바로 함께 존재할 때 곧 함께 사라진다면, 함께 사라짐과 함께 존재함이 동시에 성립하며 서로 걸림이 없는 있음[雙泯雙存同時無巫之有]입니다.
또 이 있음이, 인연 따라 일어나되 본디 성품은 텅 비었으나[緣起性空], 있다는 구절(집착)에 떨어지지 않고; 본디 성품은 텅 비었으되 인연 따라 일어나나(性空緣起), 텅 비었다는 구절(집착)에 떨어지지 않으며; 두 의미가 단지 하내 법이 되지만, 있기도 하고 텅 비기도 하다는 구절(집착)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네 구절을 온전히 초월한 있음[四句全超之有]입니다.
그리고 이 있음이, 본디 성품은 텅 비었으되 인연 따라 일어남[性空緣起]이, 있다는 구절을 포괄하고; 인연 따라 일어나되 본디 성품은 텅 비었음[緣起性空]이 텅 비었다는 구절을 포괄하며; 두 진리가 함께 존재함[二諦雙存]은, 있기도 하고 텅 비기도 하다는 구절을 포괄하고, 두 진리가 함께 사라짐[二諦俱泯]은, 있지도 않고 텅 비지도 않다는 구절을 포괄한다면; 이는 네 구절을 온전히 포괄하는 있음[四句全該之有]입니다.
또한 오직 온전히 초월하기 때문에 온전히 포괄하므로, 가령 한 구절이라도 초월하지 못한다면, 또한 네 구절을 온전히 포괄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오직 온전히 포괄하기 때문에 온전히 초월하므로, 가령 한 구절이라도 포괄하지 못한다면, 또한 네 구절을 온전히 초월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곧 원교의 있다는 법문에서 말하는 있음[圓敎有門之有]입니다.
또 서방 정토의 장엄한 정보(正報)와 의보(依報)가 모두 일체 중생의 성품에 본디 갖추어져 있는 바, 특별히 아미타불의 위대한 원력을 빌려 향상 증강의 연분[增上緣]으로 삼아, 자성(自性)이 한바탕 활짝 피어날 따름이지, 일찍이 한 조각 법인들 새로이 얻을 게 어디 있으랴! 이와 같이 말한다면, 서유(西有)란 바로 자기성품이 본디 갖추고 있는 진실하고 선량한 묘유의 있음[自性本具眞善妙有之有]입니다.
그리고 있다는 구절[有句]은 진실로 있다는 구절이지만, 있다는 구절은 또한 텅 비었다는 구절[空句]이기도 하고, 또 있기도 하고 텅 비었기도 하다는 구절[亦有亦空句]이기도 하며, 또한 있지도 않고 텅 비지도 않았다는 구절[非有非空句]이기도 하므로, 한 구절이 곧 네 구절입니다. 한 구절이 곧 네 구절이니, 네 구절도 또한 한 구절입니다.
있다는 구절[有句]은 진실로 있다는 구절이지만, 텅 비었다는 구절[空句]도 또한 있다는 구절이고, 있기도 하고 텅 비었기도 하다는 구절[亦有亦空句]도 또한 있다는 구절이고, 있기도 하고 텅 비지도 않았다는 구절[非有非空句]도 또한 있다는 구절입니다. 하나가 온전히 곧바로 넷이며, 네 개가 온전히 곧바로 하나가 되어, 하나와 넷이 원만히 융통하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리치입니다.
그리고 또 있다거나 텅 비었다거나 따위의 네 구절은, 여기에 집착하면 곧장 네 가지 사견(邪見)이 되지만, 이를 통달하면 바로 네 가지 훌륭한 방편 법문이 됩니다. 집착하면 사견의 그물에 걸려 영원히 외도(外道)의 무리로 타락하지만, 통달하면 훌륭한 방편 법문이 되어 곧바로 성현의 경지에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야는 큰 불기둥과 같아서, 닿는 족족 곧장 태워 버린다[般若如大火聚, 觸著便燒].”고 말하는데, 이는 네 변두리 어느 곳도 집착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 “반야는 맑고 시원한 연못과 같아서, 어느 방향에서나 들어갈 수 있다[般若如淸凉池, 隨方可入].”고도 말하는데, 이는 사방의 문 어디나 모두 진리[道]로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큰 불기둥 전체가 고스란히 맑고 시원한 연못이지, 불기둥을 떠나 따로 시원한 연못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거꾸로 맑고 시원한 연못 전체가 고스란히 큰 불기둥이지, 시원한 연못을 떠나 따로 불기둥이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른바 “터럭 끝만한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처럼 현격히 갈라지지만, 터럭 끝만한 차이가 없어도 하늘과 땅처럼 현격히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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