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의 핵심 요지
『대방광불화엄경』은 바로 비로자나여래께서 보리장(菩提場)51)에서 처음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일곱 곳 아홉 법회[七處九會]에서 한 목소리로 단박에 연설하신, 우리 불성에 딱 들어맞는 법문[稱性法門]입니다. 『
[ 이 보리장(菩提場)이 바로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몽매에도 찾아 헤매던 통일장(統一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이 글의 번역을 시작하기 직전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필자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서역기(西域記)』에 따르면, 이 경전은 세 판본이 있는데, 상과 중의 두 판본은 그 게송 품이 세계의 터럭 티끌 수로 논해져 있으며, 하본(下本)만이 그래도 10만 게송 48품으로 이루어져, 결집한 뒤 용궁에 수장(收藏)했다고 합니다. 상과 중의 두 판본은 우리 염부제 사람들의 심력(心力)으로 지송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까닭에, 룡수(龍樹) 보살(大士)께서 단지 용궁에서 이 판본을 옮겨 적어 온 것입니다.
이 경이 우리 땅에 전래되어 진(晋)과 당(唐)대에 두 번 번역되었는데,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께서 번역하신 것은 60권 34품이고, 당(唐)대 실차난타(實叉難陀)께서 번역하신 것은 80권 39품으로, 바로 지금의 경전입니다. 그런데 이 경이 문장은 비록 (上·中本만큼) 완비되지는 못했지만, 의리(義理)는 이미 두루 원만히 갖추어져 있어, 정신으로 회통하면 그 사람 안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경문은 전후에 걸쳐 모두 일곱 곳에서 아홉 번 법회를 여셨는데, 고승대덕이 오주사분(五周四分)으로 판별하여 정밀하고 상세히 연구하신 해석은, 예나 지금이나 정평 있게 통합니다. 제1법회는 비로자나여래께서 설하신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인과 법문으로, 경문은 모두 11권 6품인데, 4분(分)으로는 과보를 들어 즐거움을 권하여서 믿음을 내는 분[擧果勸樂生信分]이고, 5주(周)로는 소신인과주(所信因果周)입니다.(여기의 인과는 성인의 지위에서 수행으로 증득하는 원만한 원인과 미묘한 과보이지, 결코 일반 선악인과를 일컫는 게 아닙니다. 이하 같습니다.)
그 다음 여섯 법회는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回向)·등묘(等妙)의 이각(二覺) 법문들을 차례로 설하신 41권 31품인데, 4분으로는 원인을 닦아 과보에 계합하여서 해오를 하는 분[修因契果生解分]이고, 5주(周)로는 차별인과(差別因果)와 평등인과(平等因果)의 두 주(周)입니다.
제8법회는 세간을 벗어나는 법문 하나인데, 보혜(普慧)보살께서 이백 가지 질문을 구름 일 듯 던지시니, 보현(普賢)보살께서 이에 화답하여 이천 게송을 감로병 기울이듯 쏟으시어, 인과 수행의 모습을 거듭 밝힌 것입니다. 이는 모두 7권 1품인데, 4분(分)으로는 법문에 의탁하여 수행에 정진하여서 수행을 이루는 분[託法進修成行分]이고, 5주(周)로는 성행인과주(成行因果周)입니다.
제9법회 하나는 기본과 말미로 나누어집니다. 처음에 여래께서 모습을 나토시고 빛을 발하시면서, 뭇 보살들께서 마음 속 생각으로 과보 바다[果海]의 사항에 관해 청한 30가지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증득하도록 하신 부분이 기본 법회[本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문수보살께서 복성(福城)의 동쪽 끝 큰 탑묘(塔廟) 앞에서 6천 비구들을 단박에 십신(十信)이 마음에 충만함을 증득하도록 하시고 나서, 선재동자(善財童子)로 하여금 남쪽으로 뭇 선지식을 참방하러 떠나도록 이끄신 부분이 말미법회[末會]입니다.
이는 모두 21권 1품인데, 4분으로는 (다른) 사람에 의지해 증득해 들어가 덕을 이루는 분[依人證入成德分]이고, 5주로는 증입인과주(證入因果周)입니다. 이전의 38품이 비록 법계의 인과를 널리 담론하였지만, 단지 믿음을 내고 해오를 열어 수행을 시작함으로써 정진하도록 이끈 것일 뿐이며, 여기에 이르러 비로소 증득해 들어간[證入] 것입니다. 정말로 이 증득이 없다면, 앞의 신심과 해오와 수행은 모두 허수아비가 되기 때문에, 증득으로 끝맺은 것입니다.
『화엄경』 전체의 대강 요지를 살피면, 오직 하내 참 법계[唯一眞法界]로 통섭됩니다. 무릇 삼라만상으로 원만히 포괄하는 것은 오직 한 마음[一心]이니, 몸통(본체)을 보면 온전히 참이어서 서로 녹아 통하고 서로가 서로를 포섭합니다. 이것이 바로 뭇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과보의 바다이자, 또한 중생들이 본디 지니고 있는 마음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법계는 형세상 네 겹을 함축하는데(理法界·事法界·理事無巫法界·事事無巫法界) 겹겹이 포개어져 끝이 없으며, 인과는 연분 따라 여섯 지위를 일으키는데(信·住·行·廻向·地·等覺과 妙覺) 지위 지위마다 원만하게 융통합니다. 원융(圓融)은 항포(行布)에 걸림이 없으며, 원융 가운데 항포가 있습니다.52)
[항포(行布)와 원융(圓融): 화엄경에서 보살이 부처 원인 자리를 수행하는 길에서, 십신(十信)·십주[十住(解)]·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십지(十地)를 차례대로 하나하나 성취한 부처가 된다는 견해가 항포이고; 어느 한 위(位)에서도 전후의 모든 위가 함께 포섭되어, 어느 한 위만 원만히 성취하여도 서로 융통하여 바로 부처가 된다는 견해가 원융(圓融)이다.]
차별은 평등을 떠나지 않으며, 평등은 바로 그 차별입니다. 처음에는 법계를 들어 인과를 온전히 이루어서 온갖 덕과 온갖 행이 분명해졌으며, 나중에 비로소 인과를 융합하여 법계와 하나로 뒤섞여서 한 터럭 한 티끌도 확연해졌습니다. 비록 네 겹과 여섯 지위가 서로 달라 열리고 닫힘과 은밀하고 현저함은 일정하지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해야 궁극에는 하내 참 법계[一眞法界]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법계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음이 없고, 이 법계로 되돌아가지 않음이 없다[無不從此法界流, 無不還歸此法界].”고 말합니다.
그래서 한 마음과 모든 법이 자유자재로 펼쳐졌다 모여들며, 시방과 삼세가 가로 세로로 걸림없이 통합니다. 열 세대의 과거 현재가 서로 나타나며[十世古今互現] 끝없는 국토 경계가 교차로 펼쳐짐은, 마치 제석천의 그물 모양[帝網] 구슬들이 서로 다른 구슬들의 빛을 머금는 것과 같고, 또한 바다[天池]의 물 한 방울이 온갖 강물의 맛을 죄다 지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계는 화장(華藏)이라 일컬어 온갖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모두 녹여 합쳤음을 나타내고, 부처님은 비로자나로 불러 참[眞如]의 법신과 중생 인연 따라 나토는 응화신(應化身)이 둘이 아님을 곧장 보여줍니다. 5주(周) 4분(分)에 걸친 황금 같은 경문이 부처님의 설법 바다에서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6상(相)53)과 10현(玄)54) 의 오묘한 뜻이 진리의 하늘에 별처럼 찬란합니다.
[6상(相): 총상(總相)·별상(別相)·동상(同相)·이상(異相)·성상(成相)·괴상(壞相). 범부가 보는 사물의 모습은 서로 막히고 구분되어 각각이나, 성인의 눈으로 보는 법의 본체 성품은 사물 모습 하나하나에 모두 이 여섯 상(相)이 원만히 융합되어 있다고 함. 화엄경 초지(初地)의 십대원(十大願) 중 제4원에 나옴.]
[10현(玄): 십현문(十玄門) 또는 십현연기(十玄緣起)라고 하는데, 화엄종에서 4법계 중 사사무애법계(事事無巫法界)의 모습을 나타내는 법문으로, 이 리치를 터득하면 화엄경의 현묘한 진리 바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에서 붙여짐. 열 가지 법문이 서로 연분이 되어 다른 법문을 생기게 하므로 연기(緣起)라고도 부름.
①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②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 ③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 ④ 미세상용안위문(微細相容安位門). ⑤ 십세격법구법문(十世隔法具法門). ⑥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 ⑦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⑧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 ⑨ 유심회전선성문(唯心回轉善成門). ⑩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
지상(至相)존자 지엄(智儼)이 십현장(十玄章)에서 창설한 것으로, 현수(賢首)의 오교장(五敎章)에서는 차례가 다소 바뀜. ]
정말로 가르침은 더할 나위 없는 원만한 종지를 여셨고, 법문은 지극히 심오한 진리의 글을 파헤치셨다[敎啓無上圓宗, 法窮甚深理窟]고 칭송할 만합니다.
그래서 듣거나 보기만 해도 문수보살의 지혜 거울이 자기 마음에서 원만해지고, 읊거나 지니기만 해도 보현보살의 행원 법문이 주변 법계에 두루 열릴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금강의 곳집에 들어가고, 티끌마다 공덕의 수풀을 세우게 됩니다. 그렇게 한평생 할 일을 다 마치게 되면 내가 바로 선재동자요, 단지 법계의 행원만 두루 갖추어지도록 한다면 누군들 청정 도업이 원만해지지 않겠습니까?
경전에 이르기를, “이 경전은 일체의 다른 중생들 손에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고, 론장에는 이르기를, “오직 최상의 큰 마음 가진 범부[最上大心凡夫]한테만 부촉한다.”고 하셨으니, 이 말씀이 어찌 뜻하는 바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랫동안 닦은 보살[開士]들을 물리치고, 덕 높은 성문 제자들을 눈귀 멀도록 하신 줄 알겠습니다. 이는 모두 권의(權宜; 방편)와 집착을 융합하여 대심범부(大心凡夫)들을 이끌기 위한 깊은 뜻입니다.
그러한즉, 금강을 조금만 먹어도 진실로 이미 성인의 씨를 심는 것이며, 위대한 경전을 터럭 끝만큼만 파헤쳐도 끝내 대지혜인(부처님)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한 글자 법문은 바다 같은 먹물로 써도 다할 수 없으며, 천 층의 누각이 손가락 튀기는 소리에 단박 열리는데,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먹물과 종이로 풀어쓸 수 없는 진리를 어찌 대롱으로 하늘 쳐다보듯, 소라 껍질로 바닷물 헤아리듯 할 수 있으리요? 애써 큰 실마리만 적어 두어, 나중에 찾아 보는 이한테 조그만 참고나 되길 바랄 뿐입니다.
(만약 상세히 알고 싶은 분이 있다면, 『화엄경』에 대한 청량(淸凉) 관 국사(觀國師)의 소초(疏崇)와 조백(棗柏) 리 장자(李長者)의 합론(合論)이 있으니, 참고하십시오. 소초는 정밀하고 심도 깊으면서도 넓게 두루 포괄하셨으며, 합론은 대강의 요체를 얻어 통쾌하면서도 솔직 명료합니다. 두 책을 함께 대조해서 보면, 『화엄경』의 큰 요지는 더이상 빠뜨릴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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