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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엄경의 돈헐점수(頓歇漸修: 단박에 그치고 점차 닦음) 설

철오선사어록. 철오선사어록 하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3. 1. 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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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엄경의 돈헐점수(頓歇漸修: 단박에 그치고 점차 닦음) 

 

 

수릉엄경(4)에 보면, 앞에서 (부처님께서 부루나한테) “너는 단지 (세간·業果·중생의) 세 가지가 서로 계속 이어짐에 따라 분별망상하는 짓만 안 하면 된다. 그러면 미쳐 날뛰는 성품이 저절로 그치며, 그치면 바로 곧 보리이다[狂性自歇, 歇卽菩提]. 어찌 구구하게 힘들이고 애써 수행하여 증득하려 든단 말이냐?”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한 순간 생각을 단박에 그치도록[令一念頓歇] 일깨우심인 듯합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여기서는 (아난한테) “보리와 녈반은 아직도 까마득히 멀리 있으니, 네가 오랜 겁을 거치면서 괴롭게 부지런히 닦아 증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菩提涅槃, 尙在遙遠, 非汝歷劫, 辛勤修證]. 네가 비록 (시방 여래의 12부 경전의 청정하고 미묘한 진리를) 죄다 들어 기억한다 하더라도, 단지 희론(戱論: 말장난)만 덧보탤 뿐이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오랜 겁을 거쳐 점차 닦도록[歷劫漸修] 타이르신 듯합니다.

아난(阿難)의 근기가 만자(滿慈; 富樓那彌多羅尼子 漢文意譯 이름)보다 못하지 않고, 만자의 수행 과위(果位)가 아난보다 조금 나을 뿐인데, 어찌 두 분의 수행 증득의 난이도가 이처럼 서로 현격히 차이 난단 말입니까? 이는 아마도 세존께서 일념과 영겁이 둥글게 하나되는 리치[念劫圓融之理]와 단박과 점차가 둘이 아닌 종지[頓漸不二之宗]에 근거하여, 허망함이 본디 텅 비었음을 드러내어 (만자의) 법집(法執: 법문에 대한 집착)을 쳐부수고, 단지 법문 듣기만 좋아하는 걸 꾸짖어 (아난한테) 진실한 수행을 채찍질하시는 (待機說法) 가르침일 것입니다.

바로 이른바 구멍 보아 막대기 꽂고, 질병 따라 약 처방하심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일념에 미친 기를 그침은 단박인데, 그렇게 끝마치지 못하면 오랜 겁 동안 륜회로 이어집니다. 오랜 겁을 부지런히 닦음은 점차인데, 구경(究竟)에는 이 또한 일념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 일념과 영겁, 단박과 점차는 비록 서로 현격히 차이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조금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물며 일념의 성품[念性]이 본디 텅 비었고 시절(時節: 세월)이 본체가 없는데 오죽하겠습니까? 미혹되어 있을 때는 현격히 차이 나는 것 같지만, 깨달은 뒤에는 본디 스스로 원만하게 하나로 합쳐지는 것입니다. 일념이 본디 영겁과 다르지 아니하고, 영겁이 원래 일념일 따름입니다.

그러할진대, 일념과 영겁, 단박과 점차에 대해 더 이상 무얼 의심할 게 있겠습니까? 가령 만자가 허망한 원인을 찾아 실제 있다고 집착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아난이 많이 주워들음에 빠져 진실한 수행정진을 내팽개치지 않았다면, 그러면 세존의 단박에 그치고 점차 닦는다[頓歇漸修]’는 가르침 또한 드러내 일깨울 여지도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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