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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엄경의 두 가지 결정적 핵심 의의

철오선사어록. 철오선사어록 하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3. 1. 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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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엄경의 두 가지 결정적 핵심 의의

 

 

첫 번째 의의는, 무릇 육근(六根: 감각기관) 가운데 맑은 성품[湛性]이 진여의 원인[眞因]이니, 진여(眞如: 진리)의 원인을 얻은 다음에야 진여의 과위(果位)도 증득하길 기약할 수 있음을 보여 줌이요; 두 번째 의의는, 무릇 육근 가운데 맺힌 모습[結相]이 미혹의 근본[惑本]이니, 미혹의 근본을 밝힌 다음에야 미혹을 끊고 닦는 길에 요령을 얻을 수 있음을 일러 줍니다. 맑은 성품은 육근의 성품이요 변하지 않는 진여이며, 맺힌 모습은 육근의 모습이요 바깥 연분에 따르는 허망함입니다. 이러한즉, 오직 하내 똑같은 육근이면서, 단지 모습은 허망하고 성품은 진여인 구별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오직 허망하기 때문에 모름지기 이를 다 풀어 없애야 하는 것이며, 그 성품이 오직 진여이기 때문에 이에 의지해 원인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할진대, 진여가 본디 변하지 않는다면 허망함도 바로 본디 텅 비었음이요, 허망함이 바깥 연분 따라 일어나면 진여도 반드시 모조리 숨어 버립니다. 허망함이 바깥 연분 따라 일어나 진여가 모조리 숨어 버린다는 관점에서 보면, 수행의 덕[修德: 인간의 후천 도덕 수양)은 진실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공부이고; 거꾸로 진여가 변함이 없으니 허망함이 본디 텅 비었다는 시각에서 보면, 성품의 덕[性德; 자연의 선천 도덕성]은 더욱이 마땅히 밝아야 할 것입니다. 성품의 덕은 진실로 수행의 덕을 밑천 삼아 밝게 드러나며, 수행의 덕은 성품의 덕에 의지하여 이루어집니다. 이 두 법문의 의미를 합쳐서 관찰한다면, 진여와 허망함이 서로 하나로 어우러지고, 성품과 수행이 나란히 신묘해지는 리치가 남김없이 망라됩니다.

그러할진대, 이러한 리치를 추론해 확대해 나간다면, 육근과 육신과 이 세계가 물건물건마다 중생중생마다 진여면서 허망함이며, 원만미려하고 활기발랄하니 혼연일체로 일정한 모습이 없음이요; 말하고 행하고 움직이는 것 모두가 마음마음마다 생각생각마다 성품이면서 수행이며, 청정쇄락하고 적나라하니 명료하여 일정한 집착이 없습니다. 이와 같을진대, 어떤 미혹인들 끊지 못하며, 어떠한 과위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끊음도 없고 끊지 않음도 없으며, 이룸도 없고 이루지 않음도 없습니다. 다만 미혹된 마음과 전도된 견해를 지닌 중생들한테 대해서 특별히 억지로 분별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옮긴이 보충 해설: 유교의 사서 중 대학(大學)의 첫 구절이 대학지도(大學之道), 재명명덕(在明明德), 재친민(在親民),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인데, 이는 진실로 큰 배움(공부)의 길은 본디 밝은 성품의 덕을 수행의 덕으로 밝혀, 백성들한테 친근히 가르쳐 제도하고, 다 함께 지극한 선(진리·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는 데 있다는 뜻으로 이해되며, ‘명덕(明德)’은 바로 불성(佛性)’ ‘성덕(性德)’에 상응합니다. 또 이 법문 마지막 부분의 무단무부단(無斷無不斷), 무성무불성(無成無不成)’ 구절은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의 핵심 명제의 하나인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와 문장 구성상으로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상으로도 상통하는 것으로, 불교의 반야공(般若空)과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상통하는 도()임을 느끼게 해줍니다. 유불선(儒佛仙)의 삼위일체, 이른바 대도무문(大道無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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