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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엄경 ‘지견무견(知見無見)’ 설

철오선사어록. 철오선사어록 하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3. 1. 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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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엄경 지견무견(知見無見)’ 

 

 

수릉엄경(5) 지견무견(知見無見)’ 한 구절은 지극히 중요하고 오묘하여, 일체의 중요하고 미묘한 구절들을 모두 포섭합니다. 여기서 봄[]이란 바로 봄을 떠나는[離見]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려한 집의 문[華屋之門]이고, 미친 마음이 단박에 그침[狂心頓歇]이며, 허깨비 아닌 게 없음을 취하지 않음[不取無不幻]이고, 눈엣가시를 통째로 뽑아냄이며, 더 이상 얻을 게 없는 곳에 되돌아감이고, 허망함이 사라진 걸 진여라 부름[滅妄名眞]이며, 수행 전체가 통째로 성품에 있음[全修在性]이고,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결코 얻을 수 없음[覓心了不可得]이며, 마음이 텅 비어 (본디 자리에) 되돌아감에 이름[心空及第歸]이고, 아들이 몸을 돌려 아버지한테 다가감이며, 신하가 자리에서 물러나 임금을 알현함이고, 아버지와 아들이 의기투합함이며, 임금과 신하의 도가 합쳐짐이고, 조그만 방편으로 곧장 재빨리 성불에 이름이며, 인연 따라 일어남이 생기지 않음[緣起無生]입니다.

또한 안다[]’는 글자 하나가 모든 미묘한 진리의 문임이며, 찰나간에 정각에 오름이고, 무심의 도를 체득함이며, []이고, 뭇 성인께서 아신 바를 서로 대를 이어 전수하신 뜻은 번뇌망상에 본디 성품이 없다[諸聖所知, 轉相傳授, 妄想無性]는 것이고, “한 번 초월해 곧장 여래의 땅에 들어가서, 고개 돌려보니 예쁜 자손들이 부끄럽다[一超直入如來地, 回頭續愧好兒孫].”는 것이며, “이때부터는 돌아가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감이 얻어지니, 고향의 바람과 달을 누가 감히 다툴까[由是不歸歸便得, 故鄕風月有誰爭]?”이고, “손을 뿌리치며 집에 당도하니 무엇과 비슷한가? 더 이상 존당께 바칠 물건이 하나도 없네[撒手到家何所似, 更無一物獻尊堂].”이며, “알면서도 앎이 없음이지, 정말 알지 못해 알지 못함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知而無知, 不是無知而說無知].”이고, “바로 이 보고 들음은 실로 보고 들음이 아닌지라, 그대한테 보여줄 다른 빛깔과 소리가 없네[卽此見聞非見聞, 無餘聲色可呈君].”이며, “육근(주관, 감각기관)이 서지 않고, 육진(객관, 사물 대상)이 연분 닿지 아니하여, 육근과 육진이 모두 사라지니, 신령스런 빛이 홀로 비추이네[根旣不立, 塵無所緣, 根塵兩亡, 靈光獨耀].”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갖는 구절들은 이루 다 거론할 수 없는데, 오직 이 네 구절이면 남김없이 망라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긴요한 곳에서 부처님 법은 자식이 많지 않다[緊要處佛法無多子]55)”는 격입니다.

[원문에 쓰여진 자식이 많지 않다[無多子]’는 혹시 글자가 많지 않다[無多字]’의 오자(誤字)가 아닐까 생각도 드니, 참고하세요.]

과연 일념만 상응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진여가 경전 전체로 바뀌는[眞轉全經]’ 것입니다. 자원명(慈圓明권대도(權大道서현순(棲賢舜광도자(廣道者) 등과 같은 여러 고승대덕들은 모두 도(진리)를 크게 본(깨달은) 뒤 이 공부를 한 분들입니다. 그것을 일컬어 무심히 도를 체득한다[無心體道].”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요긴한 길[還鄕要路]이자, 진여로 돌아가는 비결[歸眞秘訣]이기 때문입니다.

옮긴이 보충 해설: 수릉엄경 5에 부처님께서 아난한테 말씀하신 구절로, 한문 번역본 원문은 汝今知見立知, 卽無明本; 知見無見, 斯卽涅槃無漏眞淨; 云何是中, 更容他物?”인데, 통상 해석은 네가 지금 알아차림을 맡은 안의 의근[意根()]과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는 바깥의 오근(五根, 으로 대표)으로 알음알이를 세우는 것은 바로 무명의 근본이며, 의근과 오근에 알음알이가 없어야 이것이 바로 녈반이며 번뇌 없는 진정한 청정이니라. 어떻게 이 가운데 또 다시 다른 물건을 용납한단 말이냐?”입니다.

그런데 천태 덕소(德韶) 국사한테 법을 이어받은 서록사(瑞鹿寺) 우안(遇安) 선사는 구두법(句讀法)을 바꿔 읽어, “(주관적) 알음알이와 식견이 서면 그 알음알이는 바로 무명의 근본이고, 알음알이와 식견이 없으면 보는 것마다 곧바로 녈반이다. [汝今知見立, 知卽無明本; 知見無, 見斯卽涅槃無漏眞淨; 云何是中, 更容他物].”로 해석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두법이 바뀌었다고 지적하자, 선사는 이것이 내가 깨달은 곳이기에 평생 바꾸지 않겠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56)

[오등회원(五燈會元) 권제10, 릉엄관섭(楞嚴貫攝) 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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