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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진량(淨土津梁)의 발문(跋文: 後記)

철오선사어록. 철오선사어록 하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3. 1. 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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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진량(淨土津梁)의 발문(跋文: 後記)

 

 

을사년(乙巳年: 乾隆 50, 1785) 중추(仲秋)에 연법(衍法) 지공화상(志公和尙)이 정토경론문집(淨土經論文集)을 편집하여, 판각(版刻)을 완성한 뒤 발문(跋文) 몇 마디를 부탁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죽 펼쳐 보았는데, 정토삼부경은 원인과 결과를 뚜렷이 밝혀 정토 왕생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고, 정토 삼론(三論: 天親 보살의 淨土往生論, 天台智者 대사의 淨土十疑論, 나라 傳燈 화상의 淨土生無生論)은 명쾌한 리치로 미혹을 쳐부수고 유심정토(唯心淨土)의 요지를 정확히 제시하며, 용서문(龍舒文)은 초발심자들을 정토로 인도하며 정밀하고 상세하게 간곡히 안내하고, 지귀집(指歸集)은 많은 훌륭한 글을 발췌 편집하면서도 사리에 원만히 회통하였습니다.  정토혹문(淨土或問) 몇 쪽은 참선자들의 고루한 의심을 모아 시원히 풀어 주고, 정토법어 한 편은 수행인들이 저지르기 쉬운 인습과 고식적 폐단을 떨쳐 버리도록 역설하였으며, 운서 대사의 발원문 계살문(戒殺文)·방생문(放生文) 등 몇 편은 극락 왕생의 급선무이자 념불 수행의 긴요한 보문조법문이 아닌 게 없습니다.

그리고 련화세계시(蓮華世界詩)는 비록 글이 문학의 유희 색채가 있지만 리치가 진실하고 원만하며, 더구나 련화세계 경지를 생생히 묘사하여 신묘함을 전함으로써 보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여 몰입케 하니, 중생을 포섭하여 교화하는 법문으로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착하고 훌륭하도다! 념불 법문이 이러한 여러 경론과 논설을 갖추었으니, 어느 근기의 중생도 혜택을 입지 않음이 없고, 어느 길인들 통하지 않음이 없으며, 온갖 법문의 물길을 하나로 통합하여 정토로 귀결케 하는지라, 진실로 정토 왕생의 요긴한 나루터[]이자 큰 다리[]입니다. 그래서 책 제목을 정토진량(淨土津梁)’이라 붙였습니다.

그런데 나루터와 다리는 비록 마련되었지만, 밟고 건너가는 것은 사람한테 달려 있습니다. 벌떡 일어나 곧장 간다면, 누구인들 정토 왕생의 몫이 없겠습니까? 귀중한 것은, 용기를 내어 먼저 정토에 올라 보배련화의 상품을 차지하고, 정토 왕생의 그윽한 관문을 곧장 통과하여 무생법인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수기를 일찌감치 받들어 법륜을 재빨리 굴리기를 발원하고, 제석천의 인드라망 같은 시방찰해(十方刹海)를 종횡무진 다니면서 중생을 교화하되, 미래겁이 다하도록 정토 왕생의 나루터와 다리를 전하고 또 전한다면, 고해에서 수고하는 중생들이 이로 말미암아 이익을 얻고 제도되는 자는 어찌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만약 세파에 휩쓸려 되돌이킬 줄 모르고, 험난한 길에 들어서 구차한 안일을 누리면서, 더러는 정토의 나루터와 다리를 쳐다보기만 하고 나아가지 않거나, 나루터와 다리를 지키는 걸로 스스로 만족하거나, 륜회의 고해에 빠져 혼자 허우적거리는 고통을 깜짝 놀라지도 않고, 끝내는 크고 안전한 다리를 묻기[]만 하고 여전히 위험하고 불안한 뗏목을 연연해하는 비웃음거리나 산다면, 이 책을 편집한 분의 고심(苦心)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자들은 또 이 책의 이름으로 붙여진 정토진량이라는 제목의 큰 뜻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화상께서는 (경론의 문구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의 도장만 오로지 전하는[單傳心印] 선종을 이어 받아 조사의 도를 스스로 떠맡았으면, 마땅히 본분에 충실하게 사람들한테 곧장 뭔가를 보여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무릇 유심정토(唯心淨土: 오직 마음이 정토)는 그 자리에서 현재 이루어지며[當處現成], 자성미타(自性彌陀: 자기 본래 성품이 아미타불)는 자기 몸과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데, 어찌하여 이 같이 나루터와 다리라는 설을 내세워서, 사람들한테 마음 밖에 법이 있고[心外有法] 오고 가며 취하고 버림이 있는[去來取捨] 잘못된 견해를 일으키십니까?”

오호라! “그윽함으로 통하는 산봉우리, 인간 세상이 아니네[通玄峯頂, 不是人間].”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눈에 온통 푸른 산뿐이네[心外無法, 滿目靑山].” 이러한 선사의 게송은 그렇다면 선종 본분에 맞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이란 말이요, 아니면 오고가며 취하고 버리는 것이란 말이요? 이 선시(禪詩)에서 흑백을 분명히 가린다면, 그대가 진정 유심정토와 자성미타를 안다고 인정하겠지만, 혹시 그렇지 못하다면 잠꼬대 같은 소리는 지껄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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