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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초(明初) 선인(禪人)의 혈서 련화경에 대한 발문

철오선사어록. 철오선사어록 하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3. 1. 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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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초(明初) 선인(禪人)의 혈서 련화경에 대한 발문

 

 

쇠칼을 들지 않고 붓 대롱을 잡지 않고도, 시방세계 전체가 핏방울 흥건한 한 부의 묘법련화경입니다. 이 말을 철저히 알아본다면, 영산(靈山)법회가 아직 해산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좋고, 영산법회가 본디 일찍이 회합한 적이 없었다고 말해도 괜찮으며, 당시 법회를 향해 해산하라고 소리쳐도 무방하고, 오늘 다시 회합하여도 또한 좋습니다. 큰 쓰임(작용)이 눈앞에 닥치면, 사소한 규칙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마치 임금의 보배로운 칼은 생살(生殺)의 권한이 임기응변에 맡겨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피를 찔러 내고 이와 같이 사경을 한다면, 이것이 진짜 정진[眞精進]이고, 이것을 진짜 여래께 대한 법공양[眞法供養如來]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우리의 본래 스승[本師]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오신 회포를 활짝 펼칠 수도 있고, 옛 부처님[古佛]께서 녈반하신 뒤 사리를 모신 다보불탑도 모시도록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곧장 열두 종류 중생들한테 칼날을 맞이하여 목숨의 뿌리가 단박에 끊어지도록 할 수도 있고, 끝없는 진리의 창고[法藏]로 하여금 붓끝에 점 찍혀 찬란한 무늬[文彩]가 오롯이 드러나도록 할 수도 있으니, 피 한 방울 한 방울마다 모두 근원으로 돌아가고,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죄다 골수를 얻지 않음이 없습니다. 어찌 찔러도 찌르는 자(주체)가 없고 글 써도 쓰는 바(객체·대상)가 없이, 비단 위에 아름다운 꽃을 펼치고 하늘 가의 밝은 달을 가리키는 경지에 그치겠습니까? 명초 선인은 나이가 아직 젊은데도 불도를 향한 정성이 오롯하여, 피를 찔러 내어 사경을 하면서 마음을 극락정토에 귀의하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말을 듣고서 놀라움이나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궁극의 제일의(第一義)를 이해하여 상품 왕생의 원인이라 하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름지기 곧바로 하루 12(: 부터 까지를 가리킴. 요즘의 24시에 해당.) 동안 걷고 머무르고 앉고 눕는 행동거지[威儀] 모두에 걸쳐, 사경하는 생각으로 생각생각마다 바깥 연분을 잊고[念念忘緣], 피를 찔러 내는 마음으로 마음마음마다 부처님을 그리워하여야[心心憶佛]할 것입니다. 그러면 황금 련화대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 있고, 미묘한 진리[妙諦]도 머지않아 친히 들을 수 있음을 보증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내가 쓰는 주체이고 경전이 쓰는 대상이며, 언제가 피를 찔러 낸 때이고 어디가 피로 사경을 한 곳이라 지견을 가질 터인데, 이는 나고 죽는 마음[生滅心]으로 항상 불변의 실상법(實相法)을 취하는 것이며, 항상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 수행[不輕行]을 도리어 제 잘난 아만의 깃발[我慢幢]로 타락시키는 꼴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단지 미묘한 법을 고스란히 잃고 헤매면서 부처님 마음을 멀리 저버리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또한 백 겁이나 천 번 생애에 걸쳐서도 쉽게 낼 수 없는 용맹스런 한 점의 청정 신앙심과 정토 왕생 발원을 크게 저버리게 될 것이니, 몹시도 애석할 것입니다. 선인(禪人)은 이 점을 명심하고 힘써 분발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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