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전(德全) 선인(禪人)의
혈서 련화경(血書蓮華經)에 대한 발문
‘나’가 없어[無我] 신령스러운 것이 부처님의 지견[佛知見]이요, ‘나’가 있어 몽매한 것이 중생의 지견입니다. 중생과 부처님의 지견은 다를 게 없지만, 단지 허망한 나 하나가 끼어든 차이뿐입니다. 무릇 큰 미혹의 근본은 나[我]에 있으며, 나 가운데 가장 애착하는 대상은 몸보다 더한 게 없습니다. 진실로 중생의 몸에 대한 식견[身見]이 사라지지 않고 나에 대한 집착[我執]이 깨뜨려지지 않는다면, 생사 륜회가 어찌 저절로 멈출 수 있겠습니까?
덕전 선인(德全禪人)이 구품정토 왕생을 은밀히 발원하여, 일곱 축(軸: 두루마리)의 련화경을 필사(筆寫)하였는데, 무정(無情)의 서릿발 같은 칼날로 흘리기 어려운 몸의 피를 찔러 내어, 열 손가락에 핏방울이 다 마르도록 한 마음 움직이지 않았으니,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참으로 끝없는 고해 가운데서 나라는 생각[我見]을 단박에 텅 비워 생사 륜회를 곧장 벗어난 용맹스런 장부입니다. 오호라, 덕전 선인이 이 생각을 처음 냈을 때는 바로 정토에 련화 씨를 심은 때요, 날마다 칼로 찔러 꾸준히 사경할 때는 련화가 자라는 때요, 일곱 권(卷)의 공덕이 원만해진 때는 련화에 빛과 향기가 함께 가득 찬 때입니다. 이러할진대 선인의 정토 왕생의 원인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앞으로 마땅히 본래 발원을 잊지 말고 마음을 모아 꾸준히 념불하여, 마침내 이 세간의 업보가 다하고 저 정토의 련화가 피어나면서 곧바로 부처님을 뵙고 설법을 들을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원인과 결과가 다 함께 원만히 성취되는 때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그러하지만, 이제 선인한테 한 가지 질문해 보겠습니다. 막 쇠칼로 살을 찔러 나온 피로 사경할 때, 그 고통을 알아차리면서 점과 획을 그은 자는 과연 신령스럽습니까, 몽매합니까? 나입니까, 나가 아닙니까? 부처님 지견입니까, 중생 지견입니까? 여기에 명료하면 불국토가 멀지 않고 보배 련화가 바로 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그렇지 못하다면, 분명히 기억하고 새겼다가 여러 훌륭한 아미타불 제자들한테 여쭤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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