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행(淫行: 음욕 행위)을 끊고자 하면, 반드시 음심(淫心: 음욕 마음. 淫念)을 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음욕에 마음이 일면, 음욕에 행위가 뒤따라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음욕에 마음을 절제할 것인가?
사악한 친구는 가까이하지도 말고, 사악한 장소는 들어가지 말며, 사악한 책은 보지도 말고, 사악한 말은 듣지도 말라. (이는 공자가 仁을 실행하는 구체 조목으로 든 네 가지 금지(四勿)와 비슷하다. 즉, 례가 아니면(非禮: 례에 어긋나는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라!) 무릇 사악한 친구를 한번 가까이 하면, 유익한 좋은 친구는 날로 멀어지고, 자연히 그에 점점 감염되고 유혹되어 나쁜 길로 빠져든다. 그래서 방탕하고 사치하며 사악한 짓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된다.
또 사악한 장소를 한번 들락거리기 시작하면, 올바른 생각을 지탱하기가 어렵고, 자연히 마음이 들썽거리며 열이 나게 된다. 그러니 차분히 안정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리며 쏘다니다가, 결국 종신토록 후회하고 한탄하게 된다. 사악한 마음(생각)을 여기까지만 말해도, 끊어야 하겠다고 다짐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리고 사악한 책(음란 서적)과 사악한 말(음담패설)은, 문인(文人)들에 글장난이나 한량들에 말장난(농담)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이야기를 꾸며 한 사건(줄거리)을 만들려다 보니, 자연히 남녀간을 모두 아름답고 좋게 말하게 된다. 이들은 전부 허위로 날조하고 거짓으로 꾸민 것이다. 믿을 만한 진실은 하나도 없다.
더러는 이런 것을 어쩌다 우연히 한두 번 접촉해 봤자,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로 큰 오산이다. 은연중에 스며들어 점차 올바른 생각을 잠식하는 해악은, 몰라서 그렇지, 정말로 막대하고 오래 간다. (속담에 ‘가랑비에 속 옷 젖는 줄 모른다.’ 옮긴이)
요컨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차라리 사악을 지나치게 예방할지언정, 자신을 조금이라도 너그러이 방종하지 말라. 또 차라리 남들에게 고지식하다고 비웃음을 살지언정, 조금이라도 스스로 원만히 통달하여 걸릴 게 없다고 자부하지 말라. 진실로 평소에 자신을 엄격히 지키지 않으면, 위기일발에 유혹과 충동에 부닥쳐, 누가 실수하지 않는다고 보장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