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혜정(周陳慧淨)70) 여사에 대한 답신
[앞의 주(周)는 남편의 성이고 진(陳)이 본성(本姓)인데, 혜정(慧淨)은 법명(法名)인 듯함.]
친서를 받고, 수행에 정진하며 서원이 광대한 줄을 알게 되니, 몹시 기쁘고 안심되는 구료. 이른바 남을 교화하는 일은, 모름지기 자신이 불법(佛法) 대로 힘써 수행하는 데에 그 중점을 두어야 하지, 오로지 입으로 말하는 데에 의지해서는 안 될 줄 아오. 일체의 법은 모두 자신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오.
예컨대, 자기의 친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을 섬김에 효성을 다하고, 형제자매나 시누이·올케들을 대함에는 모두 부드럽고 온화하게 우애를 다하며, 착한 일은 서로 권장하고 잘못은 서로 바로잡아 주는 것이오. 자기 남편과 더불음에는 반드시 서로 공경하며 좋은 점은 권하고 나쁜 점은 지적하되, 예절이나 법도를 조심스럽게 지켜야 할 것이오. 부부 사이가 아주 친밀하다고 해서 허물없이 예절과 법도를 지키지 않아, 자녀들이 본받을 것이 없도록 집안 규율이 해이해져서는 결코 안 되오.
또 자녀나 손자들은 절대로 제멋대로 내맡겨서는 안 되오.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들에게 효도·우애·충실·신의·예의·염치 같은 사람된 도리와 인과응보의 법칙들을 말해 주어야 하오. 어려서부터 이러한 도리를 알게 된다면, 커서 무례하고 분수에 넘치게 나쁜 짓은 하지 않겠지요.
지금 세상의 도덕이 이처럼 타락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결국 세상의 어머니들이 단지 아들딸을 귀여워할 줄만 알았지, 그들에게 어질고 착하도록 가르칠 줄은 몰랐기 때문이 아니겠소? 그래서 아들딸을 잘 가르치는 공덕은 지극히 크고, 반대로 아들딸을 가르치지 않는 죄악도 그만큼 지극히 큰 것이오. 여인들이 집안에서 남편에게 내조를 잘하고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면, 천하가 태평스러워지고 온 백성이 안락할 수 있소. 그렇기 때문에, 여인들의 책임이 매우 무겁다오.
그대가 정말로 이와 같이 진실하게 행해 나간다면, 그대를 아는 모든 부녀자들이 자연히 보고 듣고 훌륭하게 여길 것이오. 그때 그들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간편하고 효험 빠른 정토 법문에 따라 서로 권장하면, 그들이 저절로 마음에서 감동하여 그대의 말을 들으리라. 물론 그들에게 불법을 믿도록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들에게 인간의 윤리와 도리를 다하자고 권장해야 할 것이오.
여인에게는 일생에 중대한 고통이 있으니, 바로 출산이지요. 모름지기 그들에게 살생을 금하고 채식을 하도록 권장할 일이오. 만약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되도록 고기를 적게 먹되, 행여라도 어차피 채식을 할 수 없다는 구실로 실컷 먹어서는 안 되오.
매일 아침저녁으로 자기 처지에 따라 부처님 앞에 예배를 올리고 부처님 성호(聖號)를 얼마간 염송하되, 만약 불당(佛堂)이 없으면 그냥 서쪽을 향해 예배드려도 괜찮겠지요. 젊은 여인들은 집안에서 자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한 대로 잘 념불하고, 매일 관세음보살 성호도 다소간 염송하면 좋겠소. 다만 지성으로 염송하면 되고, 외모나 형식에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소이다.
정말 이와 같이 실행한다면. 숙세(宿世)의 업장이나 금생의 업장이 모두 소멸될 수 있으며, 아이를 낳을 때 결코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오. 만약 임신할 때부터 항상 착한 마음을 품고 부처님 성호를 염송하며 고기나 비린 것들을 먹지 않으면, 자연히 어질고 착한 아이를 낳게 된다오.
그리고 출산에 임박해서는 더욱이 지성으로 관세음보살 성호를 염송해야 하오. 무릇 방 안에서 산모를 보살피거나 돕는 사람들도 모두 그를 위해 염송하면, 출산이 결코 고통스럽지 않으며, 자기들이나 태어난 아이 모두 커다란 착한 뿌리[大善根]를 심는 결과가 되오.
더러 리치를 잘 모르는 자들은, 출산 시 벌거벗고 정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염송하면 도리어 보살께 죄를 얻지나 않을까 두렵다고 말하는데, 이는 판에 박힌 리치(원칙)에만 집착하여, 특수한 상황에 따른 임시변통의 도리를 모르는 편견일 따름이외다.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중생을 보는 것은, 부모가 자녀들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절친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예컨대, 자녀가 물이나 불속에 휩싸여 구원을 요청하면, 부모는 곧장 뛰어들어가 구해 낼 것이오. 그런데 이때 어느 부모가 자식의 옷차림이 단정하지 못하고 몸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구제하지 않고 내버려 두겠소?
나는 이미 폐관(閉關: 結制) 수행에 들어가서 외부의 편지에 대해 일절 답장하지 않고 있소. 그러나 그대가 사람들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이 가상하기도 하고, 또 혹시라도 그 핵심 요체를 잘 알지 못해서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게 될까 걱정스러워, 특별히 가장 중요하고 여인들의 신심을 가장 잘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항 몇 가지를 그대에게 말해 주니, 사람들에게 채식과 념불을 권장하는 데에 참고하기 바라오.
그리고 지금은 세상이 환난(患難)의 시대요. 그렇지만 평소에 지성으로 념불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반드시 부처님의 그윽한 가피를 받아 위험을 당하지 않으리다. 무릇 질병에 걸리거나 흉악한 재앙을 만나거나 또는 자식을 얻기 바라는 경우에는, 모두 지성으로 념불하면 틀림없이 소원대로 이룰 것이외다.
그대의 수행 공부는 그대의 형편에 따라 스스로 정하면 되고, 나도 어떻게 지시해 줄 수 없는 법이오. 다만 지성과 공경을 근본으로 삼되, 모름지기 진실한 신심을 내고 간절한 서원을 세워 념불을 실행함으로써, 서방 극락 왕생을 추구하는 것일 따름이오. ‘나무 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이 여섯 글자를 염송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마음속에 두지 마시오. 념불은 모름지기 한 글자 한 글자 또렷이 염송하면서 귀로 또렷이 듣는 것이 중요한데, 오랫동안 계속하면 마음과 부처님이 서로 감응할 수 있지요.
그대가 말하는 ‘자심작불(自心作佛)’이란 부처님 마음[佛心]으로 자기 마음[自心]을 제도하여, 자기가 곧 부처이고 부처가 마음이며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는 지혜로운 상근기(上根器)의 사람들이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뿐, 평범하고 어리석은 중·하근기의 사람들은 도리어 병폐만 입기 쉬우니, 이러한 데에 치중해서는 안 될 줄 아오. 만약 이러한 데에 치중하면,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내가 곧 부처인데 무슨 념불할 필요가 있느냐?’하는 대아만심(大我慢心)을 불러 일으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외다.
물론 우리 마음이 곧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부처를 염송[念佛]하도록 가르쳤지요. 만약 우리 마음이 전혀 부처와 들어맞지 않는다면, 이는 얼음을 화로에 넣어 끓이거나 담금질할 수 없는 리치와 같을 것이오. 오직 우리 마음의 본체가 부처와 둘이 아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념불을 시키신 것이리다.
부처님의 위신 공덕과 신통력의 지혜로운 불길[火]을 가지고, 번뇌망상과 미혹 업장에 가리고 뒤섞인 중생의 불심(佛心)을 끓이고 담금질하여, 그 번뇌망상과 미혹 업장은 모두 사방으로 녹아 흘러내리고, 오직 청정하고 순진한 마음만 남아 있도록 수련했을 때에, 바야흐로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마음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오. 이러한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경우의 말은, 단지 그 본체의 속성을 가리킬 따름이오. 만약 구체적인 형상[相]과 작용[用]으로 말한다면, 전혀 그렇지 못함을 알아야 되오.
비유하자면, 부처의 마음은 금광에서 캐어내 제련한 순금과 같고, 우리 중생의 마음은 아직 금광 속에 파묻혀 있는 금 조각과 다름 없소. 비록 금의 본질적인 속성[本性]은 갖추고 있지만, 아직 금의 공덕과 기능은 발휘할 수 없는 것이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자기 마음이 곧 부처인 줄 알고 더욱 진지하게 념불하여 극락 왕생을 기원해야 되는 것이지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러한 리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부처는 쳐다볼 수도 없는 성인의 경지로 밀쳐 놓고 자신은 우매한 범부로 자처하거나, 아니면 관념상의 리치에만 집착하고 실제상의 수행은 하지 않으면서, 이미 불도를 증득했다고 망언하기 일쑤라오. 그대의 학문 수행도 아직은 아주 통달한 것 같지 않으니, 『가언록(嘉言錄)』72)에 따라 수행하면, 마장(魔障)이나 외도(外道)에 떨어지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오.
[『가언록(嘉言錄)』: 인광 대사(印光大師) 서신과 설법 중 중요한 내용만 간추려 놓은 책으로, 불광출판부에서 『화두 놓고 념불하세』로 번역 출판하였음.]
나는 이미 일흔이 넘어 앞날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지금 외부와 일체 인연을 물리치고 특별히 폐관 수행을 하고 있소. 이번에 그대 편지에 답장하는 것은 특별한 예외에 속하는 방편 법문이오. 앞으로는 단지 『가언록』과 『문초(文崇: 인광 대사 문집)』 및 지금 말한 내용에 따라 진실하게 수행해 나가면 그만이고, 다시 편지 보낼 필요는 없겠소. 『가언록』 안의 수행 법칙 가운데 이미 정토 법문의 전문 수행 방법을 모두 설명하였는데, 하필 또 다시 말해 달라고 거듭 청할 필요가 있겠소이까? 설령 청하여 답한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은 이 책에서 말한 것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니, 지혜롭게 살펴 주길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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