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 대사(明性大師) 보시오.
보내 주신 서신은 잘 받았소. 나를 지나치게 칭찬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소. 나는 타고난 성격이 마음은 곧바르고 입은 명쾌하여, 남을 지나치게 칭찬할 줄도 모르고, 남의 칭찬도 받기를 꺼리는 사람이오. 나이는 비록 여든이나 되었지만, 하나도 아는 것 없이 그저 념불(念佛)로써 내 자신이나 잘 끝마치고 싶은 바람뿐이오.
비록 업장이 무거워 얻은 것은 전혀 없지만, 그러나 60여 년 동안 보고 겪은 것들이 있어, 내가 말하는 것이 사람들을 잘못 이끌거나 크게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오. 귀하가 내 『문초』를 쓸데없는 헛소리로 내팽개쳐 버리지 않았다면, 거기서 말한 내용에 따라 수행해도 결코 그대의 큰일[大事]을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오.
내가 있는 산중에까지 찾아오겠다는 생각은 정말로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오. 정토 법문(淨土法門)은 입으로 직접 말하거나 마음으로 전해주는 일이 절대로 아니오. 사람들이 각자 경전의 가르침이나 조사들의 저술을 보고 스스로 이해하고 깨달으면 얻지 못할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오. 련종(蓮宗: 정토종)의 아홉 조사는 모두 각각 일일이 친히 전해 주고 전해 받은 것이 아니오. 다만 후세 사람들이 정토 법문을 깊이 닦아 널리 펼친 고승대덕들을 시대순으로 뽑아 대를 이은 조사로 일컫는 것뿐이오. 사실 련종(정토종)의 조사가 아홉 분에 그치는 것은 아니오.
나는 출가한 이래, 제자나 대중을 받지 않고, 사원의 주지(住持)를 맡지 않으며, 설법하는 강사(講師)가 되지 않고, 또한 사람들을 접촉하지 않겠다고 발원하였소. 당(唐)이나 송(宋)나라 때에는 아직 그래도 부처님의 마음 도장[佛心印]을 직접 찍어 전해 주는 법문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단지 역대 조사들의 근원과 계보만이 전해 올 따름이오. 말이 법문이지 사실은 너무 초라하여 가련할 뿐이오.
련종은 절대 이런 일이 없소. 산중에 찾아오는 것이 혼자 책 보고 깨닫는 것보다 결코 더 낫지 않소. 옛 사람들도 “얼굴 보는 것이 이름 듣는 것만 못하다[見面不如聞名].”고 말하지 않았소? 설사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귀하에게 말해 줄 것은 결국 『문초』 안에 있는 내용일 뿐이오. 어찌 특별히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법문이 별도로 있겠소?
10여 년 전에 오벽화(吳璧華) 거사에게 편지 쓰면서, 맨 끝에 “유일한 비결이 있으니,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알려 주시오. 정성을 다하고 공경을 다하는 것이 묘하고 묘하며 묘하고 또 묘하도다[竭誠盡敬, 妙妙妙妙].”라고 말한 적이 있소. 또 『릉엄경(楞嚴經)』을 보면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의 원통(圓通) 문단의 맨 끝에, “부처님께서 원통(圓通)을 물으셨는데, 저는 별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육근(六根: 눈·귀·코·혀·몸·뜻)을 모두 추스려 깨끗한 생각이 서로 이어지면 곧 삼매(三昧)를 얻게 되니, 이것이 바로 제일입니다[都攝六根, 淨念相繼, 得三摩地, 斯爲第一].’”라는 구절이 나오지요.
별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은 모든 감각기관[六根]과 감각대상[六塵, 六境: 빛·소리·냄새·맛·감촉·생각]과 감각[六識]을 총동원하여 념불에 전념한다는 뜻이오. 념불은 부처님의 힘[佛力]에 의지하여 생사를 해탈하는 법문이고, 참선은 자신의 힘[自力]에 의지하여 생사를 초월하는 법문이오. 지금 수행자들은 깨달은[悟] 자도 오히려 그리 많지 않은데, 하물며 4과(四果: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나 7신(七信)의 경지를 증득(證得)한 뒤 스스로 생사 륜회를 벗어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소?
육근을 모두 추스리는 방법의 핵심 관건은 바로 듣는 데에 있소. 큰 소리로 념불하든 작은 소리로 념불하든, 아니면 입을 열지 않고 마음속으로 묵송하든 간에, 모두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렷이 들어야 하오. 이것이 바로 념불의 비결이오. 믿음[信]과 발원[願]과 념불 수행[行], 이 세 가지가 정토 법문의 3대 요강이고, 육근을 모두 추스리는 것이 념불의 비결이라오. 이 두 가지만 알면 다시 더 물을 것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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