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포(琳圃) 거사에 대한 답신
림포(琳圃) 거사 보시오.
유전병(遺傳病)도 또한 숙세의 업장(宿業)으로 말미암는 질병이오. 지성으로 간절하게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의 성호(聖號)를 염송하면 당연히 곧 낫게 되며, 더 이상 유전되지 않을 수 있소.
그대가 물어온 해탈의 법문이란, 오직 믿음과 발원으로 간절히 념불하여 극락 왕생을 바라는 방법 하나뿐이라오. 이는 부처님의 자비력에 기대어 생사 륜회를 벗어나는 법문으로, 바로 금생에 누구나 해낼 수 있는 일이오. 만약 이 정토 법문에 전념하지 않고 다른 갖가지 법문을 닦으려 한다면, 우리 같이 평범한 중생이 한두 생(生)에 이룰 수 있는 방법이 결코 아니라오. 우리가 시작도 없는 태고적부터 지금까지 끝도 없이 생사 륜회의 고해를 헤매는 것은, 모두 그 동안 정토 법문을 만나지 못했거나, 더러 만났더라도 열심히 닦지 않았기 때문일 게요. 지금 다행히 이 정토 법문을 알게 되었으니, 절대로 그냥 놓쳐서는 안 되오.
이번에 그대의 법명을 종신(宗信)이라고 지어 보내오. 믿음[信] 발원[願] 수행[行]의 세 가지 법은 정토 법문의 정종(正宗: 올바른 宗旨)인데, 그 중 첫번째 요소가 바로 진실한 믿음[眞信]이오. 진실한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진실한 발원과 진실한 수행이 있기 때문이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진실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게지요.
념불 법문 하나만으로 평범함을 뛰어넘어 성현의 경지에 들어갈[超凡入聖] 수 있는데, 하물며 유전병 정도를 금방 낫게 하지 못할 리치가 있겠소? 일단 불법에 귀의한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효도·공경·충실·믿음·예절·의리·청렴·수치의 여덟 덕성과 유가의 대학(大學)에 나오는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의 여섯 덕목을 힘써 실행하여,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하기를 기원하여야 하오.
옛말에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는 데에는 개개인 모두의 책임이 있다[天下不治, 匹夫有責].”는 속담이 있소.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바로 물건[物]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은 데 있단 말이외다. 만약 물건만 제대로 다스린다면, 지혜가 밝아오고 뜻이 정성스러워지며, 마음이 바로잡히고 몸이 제대로 잘 닦이게 될 것이오. 한 사람만 이렇게 수양해도 정말 큰 이익이 있거늘, 하물며 개개인 모두가 이와 같이 수양한다면, 천하가 저절로 태평스러워지지 않겠소?
여기서 ‘물건[物]’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우리 마음속의 사리사욕이오. ‘다스린다[格]’는 것은 몽둥이로 쳐서 깨끗이 몰아낸다는 뜻이오. 사람 마음 속에 사리사욕만 없다면, 본래 청정한 지혜와 식견이 저절로 올바르게 드러날 것이오. 비유하건대, 처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마음속이 애정에 온통 뒤덮여, 처자식의 나쁜 점은 끝내 보지 못하고 마는 것과 같소. 만약 애정이 없다면, 처자식의 옳고 그름이 마치 거울에 물건의 그림자가 비춰지듯이 곧장 훤하게 드러나 조금도 헝클어지지 않을 것이오.
행여라도 주자주(朱子註)의 해석처럼, 내 지식을 끝까지 미루어 넓히는 것을 치지(致知)라 하고, 또 천하 사물의 리치를 모두 궁리하는 것을 격물(格物)이라 받아들여서는 절대로 안 되오. 만약 그렇게 주자처럼 해석한다면, 비록 성인이라도 격물과 치지를 할 수 없을 게요. 마음 바르게 하는 정심(正心)과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성의(誠意)는, 설령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어리석은 지아비나 아낙네라 할지라도, 단지 사사로운 이기적 욕심만 없으면 누구나 해낼 수 있는 수양 아니겠소?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8덕목은 근본상으로 말하면, 결국 격물 한 가지일 뿐이지요. 물건만 제대로 쳐서 다스린다면, 지혜가 밝아지고 뜻이 정성스러워지며, 마음이 바로잡히고 몸이 잘 닦이기 때문이오. 그런데 이렇게 몹시 절친하고 매우 간단한 근본 도리를, 주자는 지극히 멀고 거창하여 다 마치기 어려운 말단지엽으로 해석하였소. 그리하여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도(道)의 근본을 파묻어 버리고, 후학들로 하여금 성인의 도를 배우는 데 가장 절친하고 쉬운 법칙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막은 셈이 됐지요. 그 결과 모두가 완전히 밖으로만 치닫고, 안으로 자신을 살필 줄은 모르게 되었소.
게다가 주자는 생사 륜회의 원리와 인과응보의 법칙을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쳐부수고 배척하였소. 그 결과 오륜(五倫)과 여덟 덕성이 무너지고 도덕의 울타리가 부서지게 되었소. 모든 중생이 죄악의 도탄에 빠져 삼악도의 고통을 피하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소? 이러한 (도덕 철학상의) 유전병은 몹시 크고 몹시 독하여, 크게 깨달으신 세존(世尊)과 같은 위대한 의왕(醫王)이 아니시면 고칠 수가 없소.
이 말은 내가 오직 그대에게만 하는 말이니, 그대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해서는 절대 안 되오. 무심코 지껼였다가는 모두들 칼을 빼들고 덤벼들어 구제할 방법조차 없을까 두렵기 때문이오.
여하튼 일단 부처님께 귀의했으면, 반드시 분수를 알고 인륜을 돈독히 지키며, 정성을 간직하여 삿된 생각을 막으며, 어떠한 악도 짓지 않고 뭇 선은 받들어 행하며, 산 목숨을 보호하여 죽이지 아니하며, 채식하고 념불하면서, 깊은 믿음과 간절한 발원으로 극락 왕생을 위해 전념하여야 할 것이오. 이렇게 스스로 수행하면서 남도 교화해 나간다면, 금생의 이 인연을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을 수 있으리이다.
개생·녕생 형제 보시오 2 (0) | 2023.01.05 |
---|---|
손경택 거사에 대한 답신 (0) | 2023.01.05 |
화범 거사에 대한 답신 (0) | 2023.01.05 |
화손 거사에 대한 답신 (0) | 2023.01.05 |
장도생 거사에 대한 편지 설법 (0) | 2023.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