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택(孫慶澤) 거사에 대한 답신
-상례(喪禮)에 술과 고기를 써서는 안 됨
경택(慶澤) 거사 보시오.
요즘 세상은 도덕이 타락하고 예법이 문란해져서, 사람들이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에 모두 허세나 부리고 체면이나 차리려고 꾸밀 뿐, 정말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안 해야 하는 줄 모르고 있소. 그대 어머님이 생전에 채식을 하면서 념불 수행을 하여 림종에 상서로운 감응까지 있었으니, 설령 육식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어머님 뜻을 좇으려고 마음먹고 모두 채식을 써야 할 줄 아오.
고대에는 상례에 절대로 고기나 술을 쓰지 않았소. 수양제(隋煬帝)는 태자 때 자기 어머님이 별세하자 감히 고기를 먹을 수가 없어서 몰래 대통 안에 고기를 넣어 밀랍(초)으로 입구를 틀어막은 다음 보자기에 싸서 들여오도록 했다고 전하오. 상중에 고기 먹는 것에 대해서 옛 선비들은 이처럼 엄격했기 때문에, 그토록 고귀한 태자의 신분으로도 행여 사람들이 알까 봐 이런 변칙적인 방법을 썼던 것이라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상주(喪主) 자신도 고기를 먹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술과 고기로 손님들에게 잔치를 베푸는구려. 주인과 손님 모두 상례가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어처구니없게도 태연히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며 한바탕 시끌벅적하고 기분 좋은 잔치 삼아 치른단 말이외다. 선왕(先王)의 예법에 완전히 어긋나는 줄은 모르고, 단지 남들이 상례 잘 치렀다고 추어 주기만 바라는 듯하오.
만일 모두 채식으로 치르는 것이 돈을 아끼려고 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저어한다면, 대의명분을 뚜렷이 내세워 공익자선사업에 얼마간의 돈을 특별히 보시하면 될 것이오. 그러면 누구도 인색하게 돈 아낀다고 쑥덕거리지는 못하리다.
자식은 부모님께 마땅히 그 정신의식[神識: 사후 영혼]이 적당한 장소를 얻으시도록 배려해 드려야 하오. 그런데 요즘 자식들은 거의 대부분이 부모님을 우물 속에 밀쳐 넣고 돌까지 떨어뜨리는 것을 효도로 오해하고 있소. 만약 돌덩이를 떨어뜨리려고 하지 않으면, 마치 몹시 부끄러워 남들 쳐다볼 낯도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게요. 그래서 떨어뜨린 돌이 많을수록 더욱 득의양양하게 행세한단 말이오.
가련하게도 부모는 한평생을 자식 위해 헌신하다가 죽음에 이르렀는데, 자식들은 그 상례를 빌미로 뭇 짐승을 잡아 그 영혼에 제사 드리고, 손님들에게 잔치를 베풀며 자신도 그 고기를 즐겨 먹는구려. 그리고는 매우 득의양양하게 자랑하기를, “나는 우리 부모상에 돼지 몇 마리를 잡고 닭과 오리·물고기·새우 들을 얼만큼 사서 손님들을 대접했다. 우리 부모가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고생하셨으니, 나도 상례를 후하게 치러 한 번 효심을 다했을 따름이다.”고들 말하는 게요.
부모상으로 말미암아 살생을 하면, 그 부모가 살생의 업보를 뒤집어 쓰게 된다는 인과응보의 원리를, 범부의 속안(俗眼)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이를 효도라고 착각들 해요. 하늘의 눈[天眼]으로 보면, 이것이 어버이를 직접 살해한 죄 못지 않게 가련하고 불쌍하기 짝이 없는데 말이오.
왜냐하면, 살생을 많이 할수록 부모와 자기는 물론 손님들까지 내생에 대대로 서로 돌아가며 그 원한의 빚을 갚아야 하니, 어찌 슬프지 않겠소? 결혼하여 집안을 꾸려가는 자식은 무거운 빚을 내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효도를 한답시며 산 목숨의 빚을 낸단 말이오?
그대가 비록 불법에 귀의하긴 했지만, 아마도 이러한 리치에 대해서는 훤히 알지 못할 것 같아, 그대에게 특별히 말해 주는 것이오. 집안 형제자매들도 이러한 도리를 잘 알지 못하는 이가 있거든, 내 편지를 그들에게 보여 주고 그 까닭을 상세히 설명해 주어야 할 것이오. 만약 그들도 이러한 리치를 안다면, 누가 감히 부모를 우물에 밀쳐 넣고 돌을 떨어뜨리는 눈먼 효도를 하려고 하겠소?
우물에 밀쳐 넣고 돌을 떨어뜨리는 눈먼 효도는, 비록 호랑이나 이리 같은 짐승이라도 차마 하지 않을 텐데, 하물며 사람이 그런 짓을 해야 되겠소? 다만 사람들이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인과(三世因果)를 모르고 세속의 습관에 꽉 얽매여 상례를 행하기 때문인데, 그게 선왕의 본래 상례에도 크게 어긋나는 것이오.
그대는 나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대 어머님 또한 나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닌데, 내가 왜 굳이 주섬주섬 남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여야 하며, 또 헛소리는 해서 무엇 하겠소? 그러나 그대가 아직은 나를 믿고, 그대 어머님 또한 한평생 자애롭고 근검절약하며 념불 수행을 꾸준히 하셨기 때문에, 내가 오직 그대 어머님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게 하려고 말하는 것뿐이오. 그대들이 큰 리치를 잘 몰라서 그대 어머님에게 커다란 손해가 생기기를 바라지 않는단 말이오.
만약 그대들이 어머님에게 손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탬이 되게 하고 싶지도 않다면, 나 또한 그대들의 생각에 맡길 뿐, 어찌 강요할 수 있겠소? 그러나 나는 이미 이 말을 하였으니 마음에 부끄러움은 없소. 만약 내가 이 말을 하지 않는다면, 곧 나 자신의 신분을 저버리는 게 되오. 왜냐하면 그대들이 곧 나를 선지식(善知識)으로 여기기 때문이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집에 돌아가려고 길을 물어오는 경우, 반드시 그가 마땅히 가야 할 길과 가서는 안 될 갈림길을 분명히 가리켜 주어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그대가 여전히 자신의 잘못된 지레짐작에 따라, 마땅히 가서는 안 될 갈림길로 기어이 가고야 말겠다면, 이는 곧 그대의 잘못이지, 길을 가리켜 준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될 것이오.
내가 하는 말이 정말로 그대를 속이는 거짓말인지, 아니면 그대에게 효도를 다하도록 이끌어 주는 참말인지, 현명하게 곰곰히 살펴보길 바라오. 좋고 나쁨과 잘잘못을 아는 사람은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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