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생(章道生) 거사에 대한 편지 설법
도생(道生) 거사 보게나. (1)
친서를 받고, 그대가 용맹심을 일으킨 걸 알게 되어 몹시 기쁘고 안심되네.
다만 그대가 말한 것 중, 종신토록 채식하며 한 마음으로 념불하는 것만 유일무이하고 결코 바꿀 수 없는 수행으로 삼을 일이로되, 기름과 소금까지 전혀 먹지 않겠다는 것은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될 줄 아네. 부처님 법에는 이러한 말씀이 없다네. 더러 다른 수행 집단[外道]에서는 이런 규율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는 단지 인연에 따르면[隨緣] 그만일세.
짜고 싱거운 맛은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네. 싱겁다고 싫어하거나 짜다고 짜증내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해탈법문(解脫法門)이지.
념불할 때는 반드시 지성(志誠)스러운 마음과 깊은 믿음과 회향 기도하는 발원의 마음을 내어야 하네. 특히 자기의 념불 공덕으로 시방법계의 모든 중생이 모두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往生)하도록 회향 기도하는 발원이 중요하지. 이러한 마음으로 념불하면 그 공덕이 무한할 걸세. 그러나 만약 단지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해 념불한다면, 그 마음의 도량(度量)이 협소하고, 따라서 그 공덕도 매우 적게 된다네.
비유하자면, 한 등불이 자기 홀로만 타고 있다면 단지 한 등불의 밝기밖에 못 비추지만, 만약 다른 등잔에로 불꽃을 옮겨 붙여주기만 한다면 백천만억의 무수한 등불을 동시에 밝힐 수 있지. 물론 그 광명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증폭되지만, 본래의 등불에는 조금도 줄어듬이 없지 않은가?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리치를 모르기 때문에, 단지 자기 혼자만 아는 개인주의적 이기심에 갇혀, 다른 사람들도 함께 이익 얻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네,
감옥이란 사람을 고통의 바다로부터 벗어나도록 핍박하는 도량(道場)일세. 그러나 만약 이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아마도 매일같이 주색잡기나 물욕 이익에 골몰하며, 자신이 본디 지니고 있는 청정한 심성(心性)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을 것이니 말이야.
지금 다행히도 14년의 장기 감금 형벌로 말미암아, 집안 일이나 세속 잡사 일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도(道) 닦는 데에 전념할 수 있지 않은가? 만기출옥(滿期出獄)할 때가 되면, 옛 사람 같고 싶어도 전혀 옛 사람이 아닐 걸세. 그 때는 크게 교화를 펼쳐, 자기 가족은 물론 친척이나 벗들까지 모두 불법의 덕택을 가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니, 이보다 더 큰 다행이 어디 있겠는가?
옥중에서는 굳이 책을 많이 보려고 할 필요가 없네. 내가 작년에 두 차례, 그리고 올해 한 차례 보내 준 책들만 꼼꼼히 읽고 그에 따라 실행하면, 수행은 충분하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을 걸세. 만일 잡다하게 보게 되면 마음과 사념이 어지럽게 갈라져 별로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되네. 인과응보의 법칙을 분명히 알아차리고 채식을 하면서 일심으로 념불하는 것만이, 자신도 이롭게 하고 남들도 이롭게 하는[自利利他] 핵심 요체임을 잊지 말게나.
모름지기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 맞게 수행하면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아야, 바야흐로 불법의 진실한 이익을 정말로 얻을 수 있다네. 항상 스스로 격려하고 분발하길 바라네.
도생 거사 보게나 (2)
세상 사람들의 질병 고통은 대부분 숙세(宿世)에 살생한 죄업으로 말미암은 보복이라네. 어떠한 질병을 막론하고, 만약 지성스런 마음으로 ‘나무 아미타불’과 ‘나무 관세음보살’의 성호(聖號)를 간절히 염송하면, 반드시 숙세의 업장을 해소하고 선근(善根)이 자라나서 질병이 저절로 나을 수 있다네. 설령 수명이 다한다고 할지라도, 사후 천상이나 인간 같은 선도(善道)에 태어나고, 삼악도에 떨어지는 일은 없지.
더구나 정토 법문(淨土法門)을 알아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으로 념불하면, 서방 극락에도 왕생하여 생사 륜회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심오한 리치를 잘 모르니, 먼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일러 주어야 할 걸세.
절강성(浙江省) 진해현(鎭海縣)에 방문년(方文年)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 아들 자중(子重)이 3년 전 19살 때에 창자에 종양이 생겼다네. 한의사는 치료할 방법조차 없고, 양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다고 했으나, 그 부모가 수술은 하고 싶지 않아 그만 치료를 하지 못했지. 그런데 그 어머니가 문리(文理)가 트인 사람이라, 내 글[印光文崇]을 보고 스스로 채식하며 념불하면서, 집안의 어른과 아이는 물론 고용인까지 모두 완전 채식하도록 이끌었다네. 오직 아버지 문년만 아직 완전 채식은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육식을 절제하며 크게 줄였지. 그런데 그 어머니와 할머니 가정부(이 노파도 몹시 현명하고 방씨 집에 수십 년간 함께 살았는데, 그 아들도 잘살고 그 손자가 집에 돌아가 사시자고 청하였지만, 그는 주인 마님과 수행하고 싶어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고, 주인 마님도 그를 하녀가 아니라 친구로 대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네.)가 목숨을 바칠 듯이 ‘나무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염송하고, 또한 『금강경』도 함께 독송하였다네. 그 결과 사흘 만에 창자 안에서 종기가 저절로 터져 피고름이 대변을 통해 쏟아지고, 닷새 만에 완전히 나았다네.
념불과 독경을 지성으로 하면, 이와 같이 숙세의 업장이 해소되곤 하지.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단지 업장을 쌓을 줄만 알고, 해소하는 방법은 모르고 있으니, 정말 가련하네.
또 절강성의 해염현(海鹽縣) 출신인 서울여(徐蔚如)는 줄곧 북경에 거처하였는데, 공부를 너무 많이 하여 속이 다 상하고 탈장(脫腸) 병까지 얻은 지 2년이나 되었다네. 매번 대변을 보고 나면, 반드시 한 차례 잠을 자면서 창자가 스스로 들어가길 기다린 다음에야, 감히 움직일 엄두를 낼 정도였네. 그런데 1919년 정월 대변을 본 후 잠시도 늦출 수 없는 중요한 일이 있어 곧장 차를 타고 외출했다가, 접촉 마찰로 말미암아 탈장이 끝내 되들어가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네. 그리하여 이레 밤낮을 한 순간도 그치지 않고 마치 바늘로 쑤시는 듯한 고통 속에서 나뒹굴며 눈도 전혀 붙일 수 없을 정도였지.
비록 처음부터 념불은 계속 했지만 고통이 줄어들지 않자, 마침내 대보리심(大菩提心)을 내어 “이토록 극심한 질병의 고통을 차라리 내가 좀 더 받기를 원하옵나니, 세상 사람들은 누구도 이 병에 걸리지 않기를 끝끝내 바라옵니다”라고 발원했다네. 그리고 지성으로 념불하다가 곧 잠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병이 저절로 나아 있었고, 그 후로는 병이 뿌리째 뽑혀 재발하는 일이 없다는 걸세.
그 사람 본인이 서신을 보내 와 이 사실을 알렸기에, 내가 답장에다 “이 병은 숙세의 업장 때문에 생겼는데, 귀하께서 이처럼 큰 보리심으로 발원하여, 그 숙세의 업장이 완전히 해소되고 병이 완치되어 뿌리 뽑힌 것입니다.”라고 격려해 주었네.
그대의 외사촌 형도 만약 이러한 리치를 알고 실행한다면, 단지 치질만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사 륜회의 질병 또한 완치할 수 있지. 그렇지 않고 집안에서 복이나 누리고 편안히 지내면서, 술에 취한 듯 살다가 꿈결처럼 죽는다[醉生夢死]면, 차라리 그대처럼 감옥에 갇혀 념불 수행의 막대한 이익을 얻는 것보다 훨씬 못할 걸세. 바깥 상황이란 고유한 본래 속성이 없으며, 그 이해득실은 오직 사람 자신에게 달려 있지. 그대가 내 말을 믿을 수 있다면, 그로 말미암아 얻는 이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네.
도생 거사 보게나 (3)
세간의 화(禍)와 복은 서로 기대고 숨어 있어서, 오직 사람의 마음씀이 착한지 여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이라네. 그대가 감옥에 들어감으로써 불법(佛法)을 듣게 되었으니, 이 또한 불행 중의 천만다행이 아닌가? 만약 이를 그대의 훌륭한 인도자로 생각한다면, 그대 마음이 더욱 더 청정해질 수 있을 걸세.
그대가 언급한 『금강경(金剛經)』의 구절은 그대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네 그려. 경전에서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독송한다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이나 경멸을 당하는 경우에는, 이는 전생의 죄업이 무거워 본디 삼악도에 떨어져야 할 운명인데, 바로 금생에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이나 경멸을 당하는 까닭에 (악업이 선하게 전환되고 금생에) 전생의 죄업이 곧장 소멸하여 아누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正覺]를 얻게 될 것이다.”(이는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얻을 것이라는 말이지, 현생에 곧장 얻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결코 안 되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은 금생의 선행이고, 남들의 비웃음을 당하는 것은 전생의 업장인데, 남들의 비웃음 덕분에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에 떨어져야 할 과거의 악업이 소멸될 뿐만 아니라, 미래세에 무상정등정각이라는 부처의 과보까지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지. 이것이 바로 선업(善業)으로 악업(惡業)을 전환시키고, 미래의 과보[後報]를 현재의 과보[現報]로, 그리고 무거운 과보[重報]를 가벼운 과보[輕報]로 각각 변화시키는 수행 공덕의 원리라네.
그대가 감옥을 악도(惡道)의 일종으로 여기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세. 옛날 감옥은 그 고통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지금 감옥은 바로 폐관(閉關) 수련이나 매한가지이니 무슨 고통을 받는단 말인가? 감옥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사람들을 한번 보게나. 동분서주 정신 없이 바쁘지만 의식주조차 구할래야 제대로 얻지 못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않은가?
사람이 분수를 깨닫고 만족할 줄 안다면, 감옥 또한 복록 가득한 천당이 될 걸세. 그러나 만약 만족할 줄 모른다면, 설령 억만장자의 대부자나 최고 관직의 권세가라 할지라도, 정말로 날마다 지옥에서 살아가는 거나 다름없다네.
도생 거사 보게나 (4)
속세의 인연은 제아무리 장수한다고 할지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덧없이 지나고 마는데, 스스로 힘써 닦지 않으면 대부분 사후에 삼악도에 떨어진다네. 다시 사람 받기조차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네.
그대가 이제 잘못을 깨닫고 뉘우쳐 고치면서 청정한 선업을 힘써 닦기 시작한다면, 격물(格物: 즉 克己를 뜻하며, 外物을 이르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되네)과 치지(致知)를 이루어, 살아 생전에 성현의 경지에 들 수 있고, 업장이 다하고 감정이 텅 비면 죽은 뒤에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네. 설사 업장이 다하고 감정이 텅 비는 경지까지 이르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서원으로 념불하면, 반드시 부처님 자비광명의 가피력에 의해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네.
이렇게 하면, 금생에 타고난 인생과 배우고 닦은 공부를 헛되이 낭비하지 않으며, 또한 이번에 겪은 커다란 좌절(감옥생활)의 운명도 무의미하게 저버리지 않는 것이 될 걸세. 이것이 이른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것이니, 마땅히 멀리 내다보는 안목으로 불퇴전의 대보리심(大菩提心)을 내어야 할 걸세. 그리하기만 한다면, 앞서 말한 커다란 이익은 틀림없이 얻게 된다네.
만약 정성과 공경은 전혀 없이, 단지 겉모습만 꾸며 대어 남들이 자기가 진실하게 수행한다고 알아 주기를 바란다면, 이는 완전히 거짓 투성이에 불과할 뿐, 결코 실제 이익을 얻을 수 없으니 명심하게.
이번에 관음송(觀音頌) 7부를 부치네. 혹시 전에 부쳤는지 기억할 수 없으니, 남는 것은 감옥의 소장과 교도관이나 믿음과 공경심을 지니고 문리(文理)가 트인 동지들에게 나누어 주게나. 비록 많은 책들이 있지만, 모름지기 부처님과 관세음보살 성호의 염송을 위주로 수행하여야 함은 물론일세. 책만 보고서 념불 수행을 하지 않으면 결코 안 되네. 아무리 훌륭한 요리라도 보기만 하고 먹지 않으면 빈 뱃속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리치일세.
지금 그대에게 혜성(慧誠)이라는 법명(法名)을 지어 보내네. 정성은 도의 근본[道本]인데. 도가 크게 자라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어리석고 지혜가 없기 때문일세. 만약 정성으로 말미암아 현명을 피워내고(현명은 곧 지혜일세) 현명으로 말미암아 정성을 드러낼 수 있다면, 도는 저절로 생겨 자라게 된다네.
정성은 대학(大學)으로 말하면 명덕(明德)이고, 지혜는 곧 ‘밝힌다’는 명(明)에 해당하니, 지혜와 정성이 함께 갖추어지면 이것이 바로 ‘명명덕(明明德)’이 되지. 명명덕은 곧 정성과 현명이니, 정성은 성덕(性德: 천성적인 덕)에 속하고 지혜는 수덕(修德: 덕의 수양)에 해당하네. 성덕은 사람마다 타고 났으나, 수덕에는 거역과 순응이 있지.
거역하여 닦으면 타락하고, 순응하여 닦으면 상승하는데, 순응이 극도에 이르면 곧 불도(佛道)를 원만히 성취하게 된다네. 우리는 이러한 능력까지는 아직 없기 때문에, 단지 자기 마음의 넓고 좁은 도량과 수행 공부의 깊고 얕은 정도에 따라 각자에게 합당한 이익을 얻으면 그만이라네.
도생 거사 보게나 (5)
서본무(徐本茂)가 이미 수행할 줄 알게 되었다면, 어찌하여 항상 채식할 수는 없단 말인고? 아마도 육식을 좋은 것으로 생각하여, 차마 완전히 끊어버리지는 못하겠다는 거겠지.
그러나 모든 생명이 도살될 때 받을 고통 상황을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라고 하게. 잠시 자기 입맛을 즐기기 위해 차마 그렇게 도살된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는가? 가령 자신이 그 짐승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한다면,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남들이 자기를 도살하여 그 입과 배를 채우도록 기꺼이 받아들이겠는가?
이러한 식탐(食貪)으로 말미암은 잔인스러운 마음과 행동은, 한 마디로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일 따름이라네. 만약 조금만 자세히 생각하고 살펴본다면, 육식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감히 먹고 싶은 엄두가 나지 않을 걸세.
원한의 업장은 결국 스스로 감당하여야 한다네. 그대가 아직도 중생의 고기를 먹으려고 한다면, 죽을 처지[死地]까지 이르지는 않은 일체의 고통은 모두 ‘고통’이라고 부를 수가 결코 없네. 금생에 어떤 중생의 고기를 먹는다면, 장래에 반드시 그에게 먹히는 날이 돌아오게 되지. 그래서 정말로 원한의 업장은 해소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걸세.
그(서본무)가 말하는 걸 보면, 깨달음의 근기[悟機]가 상당히 있는 듯하이. 그렇지만 아직도 육식을 하고 싶다면, 그 깨달음이란 단지 빈말에 지나지 않네. 빈말은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아. 예컨대, 밥을 입으로만 말해 가지고 그대의 굶주림을 채워 줄 수 있겠나? 내가 남들에게 채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결코 아니네. 다만 그가 바라는 바와 행동하는 내용이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그를 위해 간곡히 말해 주는 것일 따름이라네.
서본무가 묵은 잘못을 힘써 참회하고, 맵거나 비린내 나는 음식을 완전히 끊어 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지난날을 회개하고 미래를 닦아[改往修來], 본래 마음의 근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진실한 수행이 되지.
진국보(陳國甫)는 종신토록 불경을 독송하고 념불을 하겠다고 발원했다니, 그 뜻이 가상하네. 그러나 그 마음이 오래도록 물러서지 않고 유지되어야 하지, 용두사미처럼 시작만 있고 끝은 없이 흐지부지해서는 결코 안 되네.
이번에 서본무의 법명을 혜본(慧本)으로 지어 보내네. 지혜를 근본으로 삼으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저절로 위로 부처님의 마음과 천리[天理: 하늘·자연의 리치]에 부합하여, 예전처럼 어리석고 미혹되게 악업을 지어 삼악도에 떨어지는 일은 없게 될 것이라는 뜻일세.
진국보의 법명은 혜보(慧甫)로 짓네. 보(甫)란 남자에 대한 아름다운 호칭이지. 만약 지난날의 잘못을 비통하게 회개하고 마음에 바른 생각[正念]을 지니면서, 착한 마음을 품고 착한 말을 하며 착한 일을 하고 어떠한 악도 짓지 않으며, 모든 선행을 받들어 행하고 효제충신(孝悌忠信)과 같은 인륜을 돈독히 실천하되, 여기다가 덧붙여 지성으로 념불하여 극락 왕생을 바란다면, 이것이 바로 ‘혜보’의 실질 내용이라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단지 허울 좋은 빈 이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부처님 앞에 나아가 귀의를 하는 법은 『문초』 안에 이미 설명해 놓았으니, 그 내용에 따라 그들에게 말해 주게나. 세간과 출세간(出世間)을 막론하고, 모든 일은 다 진실한 정성[眞誠]을 근본으로 삼으니, 이를 명심하게. 항상 자기의 허물을 되돌이켜 살펴냄으로써, 날마다 높고 밝은 경지로 나아가길 바라마지 않네.
도생 거사 보게나 (6)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 근래 수행 상황은 어떠한지 궁금하네. 념불은 잘하고 있겠지? 그대의 성정(性情)은 자못 총명한데, 대개 총명한 사람들이 마음을 잘못 써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네. 단지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되고 연구와 수행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곤 하지.
내가 7월에 상해(上海)와 항주(抗州)의 각 지역을 돌아보며 두 달 남짓 머물렀는데, 자못 똑똑한 어느 젊은이가 질문하는 게 어찌나 우스꽝스럽고 안스럽던지 혼났다네. 그가 질문한 내용이 대강 이러한 것이네.
“모든 유정(有情)이 다 불성을 갖추고 있다면, 비록 크고 작은 것은 다를지라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 가지일 텐데, 무릇 방생(放生)에는 마땅히 작은 생명에 먼저 주의를 해야 한다고 하면, 이는 모두 불성을 갖추고 똑같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이론에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까? 똑같은 걸 알았으면, 응당 자기의 분수와 능력에 따라 구제하여야 할 것이지, 어찌 논함에 앞뒤를 가린단 말입니까?”
“또 물속이나 공기 중에는 미생물이 수없이 많아서, 사람이 한 번 호흡할 때마다 숨 따라 흡입하는 생명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텐데, 장래의 업보는 언제나 다 끝마칠 기약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사람과 축생이 서로 순환한다면, 고금의 위대한 유학자 중에도 불교의 리치에 통달한 자가 몹시 많은데도, 어찌하여 그들은 살생을 끊어 버리도록 계률을 세우지 않았단 말입니까?”
“또한 일체의 중생이 모두 과거의 부모이고 미래의 부처님들이기에, 살해해서도 안 되고 간음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데, 세간의 정식 결혼도 또한 숙세(宿世: 전생)의 부모였던 이들과 결합하는 게 아닙니까?”
이 세 가지 질문들은 모두 얄팍한 총명을 자랑하여 편협한 말단지엽의 논리를 내세우는 것으로, 백해무익하기 짝이 없네. 왜 그렇겠는가? 그토록 극단적인 미세한 것 때문에, 거대한 것까지 함께 모두 폐기해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예컨대, 청결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 몸에 때나 먼지가 끼지 않기를 바라겠지. 그런데 결벽증이 약간 생겨 자세히 살펴보니, 몸 안은 똥오줌과 피고름으로 가득 차 있고, 몸 밖은 땀과 때가 뒤범벅이 되어 피부와 터럭에 절어 있으며, 옷 속에는 이와 벼룩이, 옷 밖에는 모기와 날타리가 들끓으면서 자신을 귀찮게 하는 줄 깨달았단 말일세. 이 몸뚱아리가 안팎으로 더럽고 추악한 꼴이 결국 측간의 똥 고자리와 진배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이 결벽증 환자는 마침내 더 이상 몸을 깨끗이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왼종일 측간의 고자리 떼 속에서 함께 뒹굴며 즐거워한다고 비유하면 적절하지 않겠나?
고금의 위대한 유학자들이 어찌 살생하지 못하도록 계률을 세우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은, 세간과 출세간의 법에는 일시적인 임기응변(臨機應變)의 방편인 권(權)과 항상적인 구경불변(究竟不變)의 본질인 실(實)이 있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품는 것이지. 【옮긴이: 유가에서는 實에 상응하는 것을 經이라고 하여 經權으로 대칭함】 비록 대유학자들이 실(實)을 안다고 하더라도, 세속의 인심이 완전히 부처님의 교화에 귀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실체의 리치[實理] 그대로 살생 금지의 계률을 정하기는 정말로 쉽지 않은 걸세.
군자는 자신이 처한 지위에 맞추어 행동하는 법이네. 무릇 자기 능력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닌 경우에는, 능력이 미칠 수 있는 것까지 함께 끌어다가 파괴해서는 결코 안 되지. 능력이 미칠 수 없는 줄을 안 경우, 자기 능력이 미칠 수 있는 것에 각별히 주의해서 행한다면, 이것은 막대한 선(善)이라네. 그러나 능력이 미칠 수 없는 것 때문에 능력이 미칠 수 있는 것까지 물리치고 파괴하여 이를 행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면, 이는 중대한 악(惡)이 되네.
똑똑하고 총명하다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견(邪見)에 빠져 있는 경우는 너무도 많지. 이러한 종류의 시비논리를 내가 얼마나 보고 들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네. 나는 오직 사람들이 마음을 잘못 써서 죄악을 짓지나 않을까 두려울 따름이네. 그대나 그대 주위의 동료들이 혹시라도 이러한 사견(邪見)을 가지고 있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그대에게 대강만 특별히 말하는 것이네. 만약 이러한 사견을 미리 뽑아내지 않으면, 장래에 자신은 물론 남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일세. 내가 이러한 사견을 비판하여 조복시킨 언론은 며칠간의 공력을 몽땅 들이지 않으면 다 쓸 수가 없다네.
“인륜강상을 돈돈히 실천하고[敦篤倫常] 자기 분수를 공경스럽게 다하며[恪盡己分] 어떠한 악도 짓지 않고[諸惡莫作]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衆善奉行]” 이 열여섯 글자[네 구절]가 살아 생전에 성현의 경지에 들고 사후 극락세계에 되돌아가는 근본 서원[本願]이지. 우리 제자들이 모두 이를 조심스럽게 지키고 힘써 행한다면 매우 다행이겠네.
도생 거사 보게나 (7)
정성이 지극하면 쇠와 돌도 열린다네[精誠所至, 金石爲開]. 또 적은 알맹이가 많은 허울보다 나으며[小實勝多虛] 기교스러운 속임수가 졸렬한 성실만 못한[巧詐不如拙誠] 법이네.
전에 황함지(黃涵之)가 장기간 채식하려고 마음먹은 뒤, 자기 어머님도 함께 채식하시도록 권해 드리고, 나에게 어떤 방법이 좋은지 자문을 구해 왔지. 그때 내가 어머님을 대신해 지성으로 참회해 드리면, 업장이 해소되어 채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는데, 한 달이 채 못 되어 장기간 채식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왔네.
또 한 번은 척칙주(戚則周)가 딸이 나이 열아홉에 두 눈을 실명(失明)하여 눈 앞에 손을 갖다 들이대도 보지 못한다고 편지로 알려온 일이 있었네. 그때 그는 산중의 삼성당(三聖堂)에 있었는데, 답신을 받으면 곧 귀가하여 자기 딸을 항주(抗州)의 비구니 암자에 보낼 생각이었지. 내가 편지를 보내 지성으로 관세음보살 성호를 염송하도록 분부했는데, 역시 한 달이 채 못 되어 자신이 직접 편지를 써서 다 나았다고 알려 왔다네.
또 한 여인은 열여섯 살 때 기관지 통증을 얻어 매일 반드시 두세 차례 발작하는데, 통증이 죽을 정도로 극심하였다네. 올해 56세로 나에게 와서 귀의하기에, 내가 지성으로 ‘관세음보살’ 성호를 염송하도록 분부하고, 아울러 한 약처방을 알려 주었지. 곧 『문초』 안에 있는 담배 끊는 처방인데, 연기도 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 가지를 물에 끓여 처음 한 차례 복용하자 기관지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다는 걸세. 41년간 수많은 의사들도 어찌할 수 없었던 고질병이 한 차례 약처방을 쓰고 나서 완전히 나았다니, 지성으로 관세음보살 성호를 염송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처방의 속효를 본 것이 아니겠는가?
이상 세 사람이 힘은 적게 들이고 큰 효험을 본 것은 바로 정성 때문일세. 그대가 어머님의 고질병 때문에 어찌할 줄 모르고 탄식하기에, 나는 그대가 어찌하여 지성으로 념불하여 어머님의 업장을 해소시켜 드리려고 하지 않는지 꾸짖었네. 그대가 곧 많은 불경을 베껴 쓰고 부처님께 예배드렸는데, 아직 별 효험을 보지 못하는 듯하군.
이렇게 불경을 베껴 쓰는 일은, 이른바 적은 알맹이가 많은 허울보다 나은 것인데, 가령 그대가 진실로 이처럼 예배 독송하는데도 그대 어머님의 고질병이 낫지 않는다면, 내 두 눈이 멀고 하늘과 땅이 뒤바뀌며 해와 달도 거꾸로 운행하여만 할 걸세. 세상에 정말로 그러할 리가 있겠는가? 내 생각에는 아마도 그대가 ‘정성’ 한 글자에 뜻을 완전히 집중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기네. 그래서 내가 애당초 그대의 법명을 혜성(慧誠)이라고 지어 주지 않았나?
결국 그대의 정성은 붓 끝에 있지, 마음에 있지 아니한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네. 가령 정성이 마음에 있다면, 이처럼 수행하는데도 전혀 이익(효험)이 없는 지경에까지는 결코 이르지 않을 걸세.
그대가 살아 생전에 성현의 제자가 되고, 죽은 다음 극락세계에 들어가길 바란다면, 모름지기 모든 가식적인 마음 상태[假心相]를 완전히 바다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실질적인 일을 진지하게 하여야 하네.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하고, 실행할 수 없는 것은 말을 꺼내지도 말아야지.
정말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대의 조상이나 부모에게도 커다란 영광이 있을 것이고, 나 또한 그대의 실행 공덕으로 말미암아 죄업을 상당히 해소할 수 있다네.
만약 내가 직접 보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대가 자기 멋대로 거짓말을 한다면, 설사 나는 참말이라고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천지신명과 불보살님들도 또한 진실이라고 여길 줄로 생각하는가? 그대가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이는 부모를 속이고 스승과 부처님을 속이는 대불효가 될 걸세. 부모와 스승을 어떻게 정말로 속일 수 있단 말인가? 그대가 단지 스스로 속일 뿐이네. 나는 그래도 그대가 어느 정도 사리에 밝다고 여겨, 여러 번 침과 송곳으로 찔러 주어 왔네. 그런데 내가 잘못되었다고 하면, 오늘부터 앞으로는 서로 왕래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 군자는 일시적인 방편상으로는 속일 수 있어도, 도(道)가 아닌 것으로 영원히 속이기는 어려운 법일세.
내가 지나치게 각박하게 따지는 것은 아니네. 그대의 말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또 그 일이 그대가 감옥 안에서 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일세. 내가 비록 별 도덕은 없지만, 세상을 68년간이나 겪어 왔기 때문에, 리치와 정황에 맞지 않는 일은 눈가림으로 속이기가 자뭇 어려울 걸세. 침통하게 뉘우치고 고치길 바라네. 그렇지 않다면 장차 종신토록 유교와 불교 모두에게 큰 죄인이 될 걸세.
도생 거사 보게나 (8)
편지를 받고, 그들이 아직도 계속 념불을 실행하고 있다니 기쁘기 짝이 없네. 그대 어머님의 질병이 30여 년이나 끌어왔다면, 어찌 그대는 몸소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의 성호를 염송하여 어머님을 위해 회향 기도해 드리고, 그대의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념불하도록 당부하지는 않고 있는가?
자식이 어버이를 위해 수행함에 그 마음이 정말로 정성스럽다면, 당연히 기묘한 감응과 효험이 있게 마련이네. 또 그대가 마땅히 어머님께 서신을 올려, 당신도 친히 념불하시도록 완곡히 권해 드려야 할 일 아닌가? 그렇게 해서 그대 어머님이 믿음을 내어 실행하게 된다면, 오랜 지병이 바로 세간을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는 스승[出世導師]으로 변신할 걸세.
이번에 그대의 뜻에 따라 그대 어머님을 위해 덕초(德超)라는 법명을 지어 보내며, 서방 극락세계 칠보지(七寶池) 가운데 련꽃 한 송이를 덧보탤 수 있도록 기원하네. 일심으로 념불하여 그 공덕으로 현세에 사바 홍진의 번뇌업장을 초월하고, 림종에는 시방삼계를 초월하여 구품련화지(九品蓮華池)에 곧장 올라가도록 격려하는 뜻일세.
념불을 하지 않을 때는 마음을 완전히 세속의 번뇌망상 속에 파묻어 두지만, 일심으로 념불만 할 수 있다면, 홍진의 번뇌도 더 이상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어, 홍진 속에서 홍진을 초월할 수 있다네. 그리고 극락 왕생하면 단지 질병 고통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차 질병 고통을 당하는 모든 중생들을 고해로부터 건져 내어 함께 극락을 누리도록 할 수 있지.
자식된 자가 부모를 섬기는 효도는 육체상의 수고와 물질상의 봉양이 맨 처음 바탕이 되지만, 자신을 세워 도를 실행하는 것[立身行道]이 커다란 근본이 된다네. 혹시라도 마음에 사악한 염두를 일으키면 곧 불효가 되니, 당장 참회하고 제거하여 청정하게 만들어야 하네. 그리하여 이 마음이 한 순간 한 생각이라도 천지신명께 떳떳하지 않음이 없으면, 그 밑바탕이 제대로 선 걸세. 여기다가 다시 믿음과 발원으로 념불공부를 진실하게 하면, 살아 생전에 성현의 영역에 들고 죽은 후 극락국토에 되돌아 가는 것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혹시라도 입으로는 수행한다고 말하면서 마음에 착하지 못한 생각을 품고, 정인군자(正人君子)의 진실 수행이라는 이름만 얻으려고 꾀한다면, 약삭빠르게 눈치나 살피는 파렴치한 진짜 소인배가 될 걸세. 본디 남을 속이려다 끝내는 스스로만 속이고 말게 되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몹시 똑똑하고 잘난 체하는 사람들이니, 어찌 서글프지 않겠는가?
예컨대, 옥돌도 진흙처럼 단번에 가르는 천하의 보검(寶劍)을 가지고서 하찮은 진흙 덩어리나 자른다면, 진흙도 별 물건을 이루지 못하면서, 괜히 보검의 날만 손상시키지 않겠나? 원컨대, 그대는 내 말을 잘 음미해서 독실하게 실행해 나가길 바라네. 그런다면, 성현이나 불보살의 경지가 어찌 그들만의 전유물이고 나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포기할 수 있겠는가?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성현도 한 생각 놓쳐 버리면 미치광이가 되고, 미치광이도 한 생각 잘 이기면 성현이 된다.”고 했네. 또 불경에는 “세간에 두 부류의 건아(健兒)가 있으니, 하나는 아예 죄를 짓지 않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죄를 지은 뒤에 곧 회개하는 자이다.”고 말씀하셨지. 말하자면,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은 것은 유가 선비들이 성현을 향해 수양해 가는 방도이고, 죄악을 스스로 드러내 참회하는 것은 우리 불자들이 본래 성품으로 되돌아가는 요체일세.
하지만 그대는 몇 년간 서신왕래 하면서, 한 번도 자기 잘못을 드러낸 적이 없었네. 나는 그래도 그대가 이제나마 자기 수행하려고 발심하는 것을 생각하여, 지나간 일은 조금도 묻지 않고 그대에게 편지와 책들을 보내 주면서, 그대가 진실한 념불 수행으로 살아 생전에 성현의 영역에 들고 죽은 후 극락국토에 올라가기만을 기원해 왔네.
그런데 그대가 말을 거짓으로 꾸며 사람을 속일 줄은 어찌 알았겠는가? 이제 보니 그대는 이미 3년간이나 계속 정좌(靜坐: 참선)하여 정신상으로 자못 체득한 바가 많다고 자랑하고 있으니, 내 마음이 통탄스러울 뿐이라. 그대가 정말 이럴 수 있는가? 그런 행위는 한 번으로도 심한데, 하물며 몇 년씩이나 계속해왔단 말인가? 열 개의 눈이 함께 보고 열 개의 귀가 함께 듣는 법인데, 그대가 나를 속이려 들었단 말인가?
그대가 이 편지를 보고, 만약 지금까지의 마음을 비통하게 회개한다면, 아직 늦지 않았네.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절교(絶交)하고, 그대가 무슨 도를 닦아 천하를 뒤덮든지, 나는 전혀 간섭하지 않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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