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주문 지송[持呪]
주문 지송의 법문은 단지 보조 수행[助行]으로 삼을 수 있소. 혹시라도 염불을 보조로 병행하면서, 주문 지송을 기본 수행[正行]으로 삼아서는 안 되오. 무릇 주문 지송의 법문도 불가사의한 효험이 있긴 하오. 그러나 범부 중생의 극락왕생은, 오로지 믿음과 발원이 진실하고 간절하여, 아미타불의 위대한 서원과 감응의 길이 서로 열릴 때에만 이루어진다오.
이러한 이치를 모른다면, 일체의 법과 사물이 모두 불가사의하거늘, 임의로 어떤 법문을 닦는다고 안 될 게 있겠소? 그러다 보면, 곧 “참선 수행도 없고 염불 공덕도 없어, 쇠 침대에 누워 구리 기둥을 껴안으면서, 억만 겁과 천만 생이 지나도록, 믿고 의지할 사람 몸 하나 얻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 것이오.
만약 자신이 온통 업장투성이의 범부 중생인 줄 안다면, 여래의 위대한 서원력에 의지하지 않고는, 결코 현생에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없는 줄도 알아야 하오. 정토 법문은 부처님의 한평생 가르침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비견할 수 없는 위력을 지녔소.
주문 지송과 경전 독송은, 죄악과 업장을 소멸시키고 복덕과 지혜를 심는 수행으로는 마땅하오. 그러나 만약 신통력을 구하려는 망령된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 지엽을 쫓아가는 잘못된 생각이오. 그렇게 잘못된 생각이 마음에 단단히 맺힌 데다, 이치도 분명하지 않고 계율을 지니는 힘도 견고하지 않으며, 보리심(菩提心)도 생기지 않고 나와 남을 구별하는 마음이 편협하게 치열해지면, 반드시 악마에 붙들려 미쳐 날뛰는 때가 올 것이오.
무릇 신통을 얻고자 하면, 모름지기 먼저 도(道)를 얻어야 하오. 도를 얻으면 신통은 저절로 갖추어지기 마련이오. 만약 도에는 힘쓰지 않으면서 오직 신통만 구한다면, 신통을 얻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설사 얻는다고 할지라도 도리어 도에 장애가 될 뿐이오. 그래서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이 한결같이 사람들에게 배우지 못하도록 엄금하신 것이오. 세상에 이런 잘못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늘상 적지 않기 때문에, 상세히 언급하는 것이오.
염불하는 사람은 주문을 지송하지 말라는 법이야 없소. 다만 주된 수행과 보조 수행을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소. 그래야만 보조 수행도 주된 수행으로 귀결하기 때문이오. 만약 분별하지 않고 대충 적당히 한꺼번에 본다면, 주된 수행도 중심이 잡히지 않게 되오. 준제주(準提呪)나 대비주(大悲呪) 사이에 어찌 우열의 차이가 있겠소? 마음만 지성스럽다면, 모든 법마다 한결같이 영험스럽게 되오. 그러나 만약 마음이 지성스럽지 못하면, 어떠한 법도 결코 영험스럽지 못할 것이오.
왕생주(往生呪)를 범문(梵文: 산스크리트 문자)으로 배운다면 매우 좋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염송하고 있는 약문(略文: 한문으로 음역한 간략본인 듯)은 잘못이라고 굳이 분별심을 낼 필요는 없소. 한번 이러한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대장경 안의 모든 주문에 대해 ‘부처님의 본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심이 생기기 때문이오.
경전을 번역한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할 일 없이 무료해서 한 게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하오. 어찌하여 다른 번역본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할 수 있겠소? 천여 년 동안 이 주문을 지송하여 이익을 얻은 사람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으리오? 그렇게 천여 년 동안 주문을 지송해온 사람들이 모두 범문(梵文)을 몰랐겠소?
배울 것은 정말로 배워야 마땅하지만, 우열이나 승부(勝負)의 분별심은 절대로 내어서는 안 되오. 그러면 스스로 얻는 이익이 불가사의할 것이오. 또 주문 지송의 법은 화두를 드는 것과 비슷하오. 화두를 들 때 논리나 의미의 길이 없기 때문에, 범부의 분별 감정을 잠재우고, 본래 갖추고 있는 진짜 지혜[眞智]를 증득하게 되는 것이오.
주문 지송도 의미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단지 지성으로 간절하게 지송해 가는 것이오. 그렇게 정성을 지극히 다하다 보면, 저절로 업장이 소멸하고 지혜가 밝아지며 복덕이 높아지게 되오. 그 이익은 우리 생각이나 추측으로 미칠 수 없이 막대하오.
깨달음과 증득[悟證] (0) | 2023.01.01 |
---|---|
선종과 교종 (1) | 2023.01.01 |
출가(出家) (0) | 2023.01.01 |
유교와 불교 (1) | 2023.01.01 |
부처님 비방[謗佛] (1) | 2022.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