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부처님 비방[謗佛]
불법이 중국에 전래한 이후, 역대 제왕들이 모두 우러러 받들었소. 오직 삼무(三武)만이 불법을 소멸시키려 했으나, 그 뒤 바로 더욱 흥성해졌소. 비유하자면, 겨울에 천지가 꽁꽁 얼어붙는 한파는, 바로 이듬해 봄여름의 왕성한 새 생명을 성취시키기 위한 준비인 셈이오. 밝은 태양이 하늘 한복판에 떴는데, 손바닥 하나로 어떻게 가릴 수 있겠소? 하늘을 우러러 침을 뱉어 봤자, 도리어 제 얼굴만 더럽히게 되오.
삼무(三武)란,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 424〜452 재위)와 북주(北周)의 무제(武帝: 561〜577 재위)와 당(唐)의 무종(武宗: 841〜846 재위)을 가리키오. 이들은 모두 애당초 불법을 깊이 믿어, 지극한 정성으로 배우고 닦았소. 그러다가 북위의 태무제는 최호(崔浩)의 현혹을 믿고, 북주의 무제는 위원숭(衛元嵩)의 모함을 받아들였으며, 당 무종은 이덕유(李德裕)와 도사(道士) 조귀진(趙歸眞)의 비방을 믿었다오.
그러나 불법을 훼멸시킨 지 오래지 않아, 주동자와 보조자 모두 극도의 재앙을 당했소. 북위의 태무제는 불교를 폐지한 후 오륙년이 못 되어, 최호의 전 가족을 몰살하고 자신도 시해당하였는데, 그 뒤를 이은 황제가 곧 불법을 크게 부흥시켰소.
북주의 무제(武帝)도 불교를 폐지한 후 위원숭을 내쫓아 죽였는데, 5년이 못 되어 자신은 악질에 걸려 온 몸이 문드러져 죽었다오. 그가 죽은 지 3년이 못 되어 수 문제(隋文帝)가 천하를 물려받아, 불법을 크게 부흥시켰소.
당의 무종(武宗)도 불교를 폐지한 후 1년이 못 되어, 조귀진은 주륙당하고 이덕유는 유배 갔는데, 무종은 도사가 만들어 준 금단(金丹)을 먹고 등에 종기가 나서 죽었다오. 그 뒤를 이은 선종(宣宗)이 불법을 다시 크게 일으켰소.
또 송(宋)의 휘종(徽宗)도 처음에는 불법을 깊이 믿었는데, 나중에 도사 임령소(林靈素)의 요망스런 말을 듣고, 마침내 불상을 모두 도상(道相)으로 바꾸었다오. 그리고 부처님을 대각금선(大覺金仙)이라 부르고, 스님을 덕사(德士)라고 부르면서, 도사의 옷을 입고 법사(法事: 종교 행사, 佛事 또는 法會에 해당) 때마다 도사의 뒤에 자리 잡았다오.
그런 칙령을 내린 지 얼마 안 되어, 경성(京城)에 큰 홍수가 나서 성안이 마치 호수나 바다와 같았소. 군신(君臣) 모두 놀라 두려워하며 임령소에게 물을 그치게 하라고 칙령을 내렸는데, 물은 그치게 할수록 더욱 불어났소. 이때 갑자기 승가(僧伽) 대성(大聖)께서 금중(禁中: 궁궐)에 모습을 나토시니, 황제가 향을 사르고 애걸했소. 이에 승가께서 지팡이를 휘저으며 성 위에 올라서자, 그 엄청난 홍수가 금세 빠져 버렸소. 이에 황제는 불법을 옛 제도대로 복귀한다는 칙령을 내렸다오. 그러나 오륙 년이 채 못 되어, 휘종은 부자(父子)가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소. 금나라는 휘종을 혼덕후(昏德侯: 덕이 혼미한 제후)에 봉하고, 그 아들 흠종(欽宗)은 중혼후(重昏侯: 거듭 더욱 혼미한 제후)에 봉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오국성(五國城: 금나라 전신인 遼가 우수리강과 송화강 유역에 설치한 五國 부족의 성)에서 죽었다오.
무릇 부처님은 삼계의 위대한 스승이며, 사생(四生)의 자비로운 아버지요, 성인 중의 성인이며, 하늘 가운데 최고의 하늘이오. 사람들에게 망령됨을 떨치고 진여에 되돌아오며, 세속 티끌을 등지고 깨달음에 합치하라고 가르치시는 분이오. 허깨비 같은 미혹의 업장을 없애버리고, 본래 지닌 마음과 성품을 회복하도록 이끄시는 분이오. 이러한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자면, 불법을 굳건히 보호 유지하고 널리 유통 전파시키기에도, 한가한 겨를이 없을 것이오.
그런데 어떻게 한때의 권력과 위세만 믿고서, 중생의 지혜의 눈을 없애버리고, 인간과 천상의 탄탄대로를 끊어버리면서, 스스로 지옥의 깊은 불구덩이를 팔 수 있단 말이오? 그런 자들은 눈앞에서 당장 악보를 당하고, 영겁토록 삼악도에 떨어져, 미래세에 두고두고 비웃음을 사야 마땅하오. 그래야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될 수 있소.
세간에 가장 넓고 두터우며 높고 밝은 것은, 하늘과 땅과 해와 달을 따를 자가 없소. 그렇지만 해는 중천에 걸리면 기울고, 달도 꽉 차오르면 이그러지며, 높은 산이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이 봉우리가 되며, 푸른 바다가 뽕 밭이 되기도 하고, 뽕 밭이 푸른 바다가 되기도 하오.
또 예로부터 지금까지 도덕이 가장 높고 중후한 인물은, 공자를 당할 자가 없소. 그런데 공자도 진(陳) 나라에서 양식이 사흘간이나 떨어진 적이 있고, 광(匡)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양호(陽虎)로 오인하여 포위하는 바람에 커다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소. 여러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도덕을 펼치려 했으나, 끝내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소. 아들도 하나밖에 없었는데, 나이 50세에 공자보다 일찍 죽고, 다행히 손자 하나가 있어서 지금까지 대를 이어 오고 있다오.
그 아래로 공자의 수제자 안연(顔淵)은 요절하였고, 염백우(伯牛)도 단명하였으며, 자하(子夏)는 시력을 잃었는데, 좌구명(左邱明)도 시력을 잃었소. 또 굴원(屈原)은 강물에 몸을 던졌고, 자로(子路)는 국난에 희생당해 시신이 젓 담아졌소.
천지 일월도 오히려 항상 불변할 수는 없고, 위대한 성현들도 또한 늘 역경 없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었소. 오직 하늘의 뜻을 알고 즐겨 따랐기 때문에, 당하는 상황마다 늘 마음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었소. 그래서 몇천 년이 지나도록,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존경하는 것이오. 따라서 당시의 현실 상황으로 본다면 복이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 도덕이 후세에 전해진 역사로 본다면 이보다 더 큰 복이 또 어디 있겠소?
인간이 세상에서 천만 가지로 생각하고 헤아리며 하는 행위들은, 가만히 따져 보면, 궁극에 몸을 먹여 살리고 자손을 남기는 것에 지나지 않소. 그러나 몸은 거친 베옷으로도 덮어 가릴 수 있으니, 어찌 꼭 비단과 모직으로 장식할 필요가 있겠소? 또 입은 나물과 된장국으로도 충분히 밥을 먹을 수 있거늘, 어찌 꼭 고기와 물고기로 미각을 돋우어야 한단 말이오? 그리고 자손은 글공부를 하거나, 논밭을 갈거나 장사를 하거나, 가족의 생계만 유지할 수 있으면 되었지, 어찌 꼭 백만장자나 고관대작이 되어야 한단 말이오?
자손들에게 만세의 부귀를 물려주려고 한 자는, 고금을 통틀어 진시황제보다 더한 이가 없소. 육국(六國)을 집어 삼킨 뒤, 책을 불사르고 선비들을 산 채로 묻어 죽였으며[焚書坑儒], 천하의 병기를 모두 거둬들여 큰 종을 주조하였소. 이는 백성들을 어리석고 약하게 만들어, 일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봉쇄한 것이오.
그러나 진섭(陳涉)이 한번 도전을 일으키자, 군웅(群雄)이 다시 일제히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소? 천하를 통일한 지 12, 3년이 채 못 되어, 자신이 죽고 나라가 망했으며, 자손들이 모두 처형당해 씨도 남지 않게 되었소. 자손들을 만세까지 안락하게 만든다는 속셈이, 도리어 죽음만 일찍 불러온 것이오.
후한(後漢) 헌제(獻帝) 때, 조조(曹操)가 승상이 되어 권력을 전횡하였소. 그가 한 짓은 모두 군주의 위세를 약화시키고 자기 권력을 강화하여, 자신이 죽은 뒤 아들이 황제가 되도록 하기 위한 속셈이었소. 그러나 조조가 죽자, 둘째 아들 조비(曹丕)가 권력을 찬탈하여, 시신을 염(殮)하기도 전에 조조의 빈첩(嬪妾)을 자기 궁실 안에 데려가고 말았소.
조조는 죽어 삼악도에 떨어졌다오. 1,400여 년이 지난 청나라 건륭(乾隆) 때, 소주(蘇州)의 어떤 사람이 돼지를 잡았는데, 간을 꺼내 보니 표면에 ‘曹操(조조)’라는 두 글자가 선명히 쓰여 있었다오. 이웃에 살던 한 사람이 이를 보고서, 커다란 공포심을 느껴 곧장 출가하였다오. 그 스님의 법명은 ‘불안(佛安)’인데, 일심으로 염불하여 마침내 서방 정토에 왕생하였다는 사실이 『정토성현록(淨土聖賢錄)』에 실려 있소.
무릇 조조가 심혈을 기울여 온갖 계략을 짜낸 것은, 모두 자손을 위함 때문이었소. 그렇게 해서 비록 황제가 되었지만, 고작 45년밖에 안 되어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소. 그것도 매일같이 서촉(西蜀) 및 동오(東吳)와 서로 치고 싸우면서, 하루도 평안할 새가 없었소.
그 뒤로 진(晋)·동진(東晋)·송(宋)·제(齊)·량(梁)·진(陳)·수(隋) 나라 및 오대(五代)의 양(梁)·당(唐)·진(晋)·한(漢)·주(周) 나라는 모두 수명이 길지 못했소. 이 가운데 가장 길다는 동진이 고작 103년이었고, 그 나머지는 더러 2〜3년이나 8〜9년, 또는 10〜20년이나 40〜50년 만에 금방 멸망하였소. 이들은 그래도 중국 역사상 정통(正統)으로 인정받는 나라이고, 그밖에 변방에서 잠시 권력을 훔쳐 할거하던 군소 국가들도 수없이 많은데, 그 수명은 더 말할 것도 없소.
이들 나라를 세운 자들의 처음 마음을 살펴보면, 어느 누구 하나 자손들에게 부귀영화를 물려주려고 하지 않은 자가 없소. 그러나 궁극의 현실 결과를 따져 보면, 도리어 자손들이 재앙과 살륙을 당하고, 집안이 몰살당하고 말았소. 가장 존귀한 천자가 되어 가장 부유하게 천하를 다스리면서도, 오히려 자손들에게 대대로 복록을 누리게 하지 못한 것이오. 하물며 무량겁 이래로 지어 온 악업이 대지보다 두텁고 바다보다 깊은 우리 서민 범부들이야, 집안이 항상 흥성하며 복록만 받고 재앙이 전혀 없길 바랄 수 있겠소?
세간의 온갖 법은 모두 텅 빈 가짜로, 전혀 진실이 없음을 알아야 하오. 마치 꿈 같고, 허깨비 같으며,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번갯불 같으며, 물속에 비친 달 같고, 허공중에 아른거리는 꽃 같으며, 뜨거울 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같고, 건달바성(乾聞婆城: 신기루) 같다오.
오직 자기의 일념(一念) 심성(心性)만이, 천고 이래로 지금까지 전혀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오. 비록 본바탕은 변하지 않지만, 항상 인연에 따라 모습은 달리 나타난다오. 청정한 깨달음의 인연을 따르면, 성문이나 연각(벽지불)·보살·부처가 되는데, 쌓은 공덕의 정도에 따라 받는 과위(果位)의 높이가 달라지는 거라오.
반대로 오염된 미혹의 인연을 따르면, 기껏해야 천상이나 인간에 생겨나고, 아니면 아수라나 축생·아귀·지옥에 떨어지게 되오. 지은 죄와 복의 경중에 따라, 괴로움과 즐거움[苦樂]을 받는 기간이 달라진다오.
불법을 모르는 사람 같으면 어떻게 할 수도 없지만, 불법을 믿고 닦는 사람들이 역경을 겪으면서도, 어찌하여 세간의 허망한 형상을 간파(看破)하여 초탈하지 못한단 말이오? 오염된 미혹의 인연을 놓아 버리고, 청정한 깨달음의 인연을 따라, 일심으로 염불하여 서방 극락에 왕생하길 구하여야 하리다. 그래서 육도 윤회를 영원히 벗어나 성인의 과위를 증득한다면, 이 어찌 작은 재앙 덕분에 큰 복을 길이 누리는 게 아니겠소?
막대하도다. 부처님의 은혜여! 넓고 커서 두루 미침에 끝도 없어라. 부처님은 과거 오랜 겁부터 허공계가 다하도록, 법계의 일체 중생이 모두 함께 본래 지닌 불성을 깨달아 생사윤회를 벗어나고,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이루어 남김 없는 열반에 들기를 발원하셨소. 그래서 보살도를 줄곧 행하셨는데, 중생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모두 힘써 행하셨소. 육바라밀을 두루 닦으면서, 어느 한 법에도 집착함이 없이, 보통 사람들이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시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 오셨소. 보시를 행함에, 나라와 성·아내·자식·머리·눈·골수·뇌 등, 어느 것 하나 아까워하지 않고 기꺼이 내주셨소.
그래서 『법화경』(提婆達多品)에는 이런 말씀이 실려 있소.
“내[智積 보살]가 보건대, 석가여래께서는 무량겁 동안 일찍이 잠시도 쉬지 않고,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 공덕을 쌓아 보리도(菩提道)를 구해 오셨소. 그래서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석가여래께서 보살로 계실 때 중생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버리지 않은 곳이, 겨자씨 크기만큼도 없소. 그런 다음에 비로소 보리도를 얻으신 것이오.”
보시의 수행 하나만도 1겁의 수명 가지고 다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그밖에 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및 사섭(四攝)과 만행(萬行)은 말할 필요가 있겠소? 그러한 수행으로 미혹이 말끔히 사라지고, 복과 지혜가 원만히 갖추어져, 자기 마음을 철저히 증득하고 더할 나위없는 도를 이루셨소. 그리고 모든 중생을 두루 위하여 증득한 법을 설하셨으니, 모든 중생이 자기가 얻은 것을 똑같이 얻기 바라는 발원에서였소.
그러나 상근기의 선비는 적고 중하근기의 중생이 많은지라, 근기와 인연에 따라 설법하고 가르쳐, 각자 분수에 맞게 이익을 얻도록 하셨소. 그렇게 한평생 할 일을 마치고 열반에 드신 뒤에도, 대자비를 차마 놓아버리지 못하고, 다른 세계에서 다시 정각을 이루어 중생 제도를 계속하고 계신다오. 마치 태양이 세상을 비추기 위해 출몰을 계속 반복하고, 뱃사공이 사람들을 건네주기 위해 강의 양쪽 언덕을 끊임없이 왕래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오.
부처님께서 중생을 연민으로 생각하심에는, 위로 등각(等覺) 보살부터 아래로 육도 중생까지, 어느 하나도 대자대비의 품에 끌어안지 않음이 없소. 마치 허공이 천지 삼라만상을 모두 포용하고, 햇빛이 만방을 두루 비춤과 같소. 설령 선천적인 장님으로 태어나 평생 햇빛을 못 본다고 할지라도, 그 또한 햇빛을 받아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소. 만약 햇빛이 비춰 주지 않는다면, 살아갈 인연 자체가 없을 것이오. 그러니 어찌 꼭 몸소 햇빛의 모습을 눈으로 보아야만, 그 은덕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겠소?
그런데 세간의 똑똑하고 말 잘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비좁은 편견으로 불법을 비방하고 배척하며, “(유교) 성인의 도를 해치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고 모함하는 짓은, 바로 선천적인 봉사들이 해를 욕하며, “전혀 빛을 비춰 주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외도(外道)들이 한결같이 불경의 뜻을 표절하여 자기들 것인 양 꾸미고, 나아가 불법의 이름을 표방하여 사악한 법을 행하는 자들까지 있소.
이것만 보아도, 불법이 세간과 출세간을 망라한 모든 도의 근본임을 알 수 있소. 마치 바다가 땅 속으로 잠복(潛伏)하여 퍼지다가, 물기가 땅 밖으로 흘러나오면 곧 모든 냇물이 되는데, (현대 과학 관점에서 보면, 바닷물이 증발하여 공중에서 응결하여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눈비로 내리면 모든 냇물 줄기의 시원이 된다고 표현하는 게 더 설득력 있음.) 그 모든 냇물이 어느 하나 바다로 흘러들지 않음이 없는 자연의 이치와 같소.
사실 부처를 비방하는 자들은, 부처를 비방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비방하고 있소. 그들의 일념 심성도 본디 전체가 부처이기 때문이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이와 같은 각종 설법으로 교화를 펼치신 까닭은, 중생이 미혹을 버리고 깨달음에 되돌아와, 자신에게 본디 갖추어진 불성을 몸소 증득하라고 이끌기 위함이오. 불성이 가장 존귀하고 소중한 까닭에, 부처님께서 이 같은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으시며, 설사 중생이 믿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차마 포기해 버리지 못 하시는 것이오. 만약 중생이 본디 불성을 지니지도 않고, 부처가 될 수도 없는데,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부처가 되라고 이토록 수고롭게 설법하고 가르치신다면, 부처님은 헛수고만 하는 세간의 최고 바보천치고, 또 세상에서 제일가는 거짓말쟁이일 것이오. 그런 분을 천룡팔부(天龍八部)와 삼승성현(三乘聖賢)이 어떻게 호위하며 의지하려 들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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