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부계(扶乩)
부계(扶乩)는 대부분 영민(靈敏)한 귀신이 신선이나 불보살 또는 성인의 이름을 빌어 행세하는 법이오. 귀신 가운데 열등한 자들은 이러한 신통력이 없소. 그러나 조금 우수하고 영민한 귀신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총명한 지식을 빌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오. 그래서 기문달(紀文達)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소.
[부계(扶乩): 계는 점을 쳐서 신에게 의심스러운 일을 묻는다는 뜻이고, 부(扶)는 그 방편 도구를 붙든다는 뜻이다. 나무로 만든 T자형 틀을 두 사람이 한 쪽씩 붙잡고, 끝은 모래판 위에 내려놓은 뒤, 의식에 따라 신(神)의 강림을 청하면, 두 사람의 손떨림으로 모래판 위에 문자가 그려지는데, 이를 강계(降乩)라 부르고, 신의 계시나 길흉 판단으로 해석한다.
도교나 민간신앙에서 널리 행해져온 일종의 무속(巫俗)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틀을 키로 대신하는 경우 부기(扶箕)라 부르고, 신이 난(鸞) 새를 타고 강림한다는 전설에 의해 구어로는 부란(扶鸞)이라고 한다.
특히 음력 정월 대보름 밤에는, 자고(紫姑)를 영접하여 부계하는 민간 풍습이 전해 온다. 자고는 갱삼고낭(坑三姑娘)이라고도 부르는 중국 민간의 변소신(厠神)이다. 전설에 따르면, 본명은 하미(何媚)이고, 자(字)는 여경(麗卿)이며, 산동 내양(萊陽) 사람으로, 당나라 측천무후 때(687년) 수양(壽陽) 자사인 이경(李景)의 첩이 되었는데, 본부인 조(曹)씨가 질투하여 정월 대보름 변소에서 암살당했다고 한다. (옥황)상제께서 그를 불쌍히 여겨 변소신에 임명했고, 민간에서 대보름 밤에 그에게 제사 지내면서 의문점을 부계로 청한다고 한다.
부계와 비슷한 민간 점법은 세계 각지에 있으며, 영어로는 sciomancy가 여기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지금도 중화민국 대만에서는 도교나 민간신앙 조직을 중심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다.]
[기문달(紀文達: 1724~1805): 본명은 기윤(紀昀), 문달은 시호. 자(字)는 효람(曉嵐) 또는 춘범(春帆). 직례(直隷) 헌현(獻縣) 사람으로, 청나라 건륭(乾隆) 때 진사가 된 뒤, 예부상서와 협판대학사(協辦大學士)에 이름. 사고전서(四庫全書)의 총편찬관을 역임하여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를 편찬함. 시문(詩文)도 잘하여 문집이 전해짐.]
“부계는 다분히 영민한 귀신이 신선이나 부처를 가탁(假託)하는 점법이다. 내가 형 탄연(坦然)과 함께 부계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시를 잘 짓지만 서예는 별로 못한다. 그래서 내가 부계를 하면, 시문은 민첩하게 잘 내려오는데, 서예는 엉망으로 휘갈겨진다.
그러나 (시는 별로 못하고 서예가 뛰어난) 형 탄연이 부계를 하면, 시문은 평범한데, 서예(글씨)는 힘 있고 훌륭했다. 옛 사람을 내세우는 계시 내용 중 심오한 부분을 물으면, 연대가 오래 되어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이 내려오곤 했다. 그래서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러고 보면 이 영민한 귀신은, 단지 부계하는 사람이 현재 알고 있는 마음만 능통하여, 이를 빌려 쓰는 것일 따름이오. 의식의 밭[識田: 무의식·아뢰야식]에는 있으나 현재의 지식(의식)에는 없는 것은, 이 귀신이 자기 지식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를 끌어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이오. 따라서 세간의 이치에 관한 내용은 옳은 게 많지만, 불법(佛法)을 말할 때는 자기가 아는 것이 아닌지라 헛소리를 꾸며대기 십상이오.
업장이 다 사라지고 감정이 텅 빈 상태의 타심통(他心通)과 비교하면, 실로 하늘과 땅 차이라 할 것이오. 다만 그 기분(氣分)은 비슷한 데가 있소. 일반 불자들이 혹시라도 부계와 같은 민간 무속점에 미혹할까 염려스러워 특별히 이 사실을 밝히고 당부하지 않을 수 없소.
근래 상해(上海)에서 부계를 한다고 야단법석을 크게 떤 모양이오. 거기서 내려온 내용은 개과천선과 약간의 윤회 및 인과응보 법칙 등이 주를 이룬 듯하오. 그런 내용은 세간의 도리나 인심(人心)에 크게 보탬이 되기 때문에 괜찮소. 그러나 하늘이 어떻고 불법이 어떻고 언급한 것은 단지 헛소리에 불과하오.
우리 불자 된 사람들은 이러한 부계의 방편법을 굳이 배척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오. 사람들에게 개과천선하도록 권선 징악하는 일을 가로막는다는 허물만 뒤집어 쓸 수 있기 때문이오. 그러나 여기에 들러붙어 맞장구치며 적극 찬성하고 나서서는 안 되오. 그들이 말하는 불법(佛法)은 모두 지어낸 것이라, 진짜 불교의 정법을 어지럽게 파괴하고 중생을 잘못 인도하는 죄가 클 수 있기 때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