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을 펴내면서
『인광대사가언록』을 번역해 펴낸 지 어언 13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 공덕으로 교수가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염불과 홍법에 더욱 열심히 정진했어야 하는데, 현실은 거꾸로 세속 인연과 잡무에 버거워 빌빌대며 오히려 업장만 늘었으니, 불보살님과 인광대사와 자성(自性)에 참괴(慙愧)할 뿐입니다. 느슨히 풀어진 마음을 추슬러 다잡고 스스로 염불수행을 책려(策勵)하는 전기(轉機)로 삼을 겸, 전면 교정과 약간의 주석해설을 보충해 재판을 내게 되었습니다. 2년전 법공양판 교정을 제법 꼼꼼히 본다고 했는데도, 이번에 글 파일본으로 점검하니 메켄토시 출력본에서 알아채지 못한 맞춤법 착오도 여럿 드러나 바로잡습니다.
갑오경장 및 동학혁명 120주년(2甲子)을 맞이해, 앞으로 재판본에 인연 닿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자아혁심(革心)으로 염불수행에 더욱 간절히 정진하길 기원하면서, 초판 펴낸 뒤 찾아온 기묘한 법연(法緣) 두어 가지만 소개해 신원행(信願行)을 북돋울까 합니다. 2003년 청화큰스님이 열반하시고 관정큰스님도 입적하셔서 허전한 가운데, 새로운 정토염불수행의 새싹이 돋아남을 느낀 희망이랄까요?
몇 년 전, 만주에서 태어난 조선족 인공(印公)스님이 학교로 불쑥 찾아오셨습니다. 중국에서 출가한 40대 차분한 수행자는, 주경스님의 은사(청화큰스님)에 대한 지극한 갈앙심(渴仰心)을 알고, 강릉 성원사를 찾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면서, 평소 자신이 번역하고 싶었던 『가언록』의 한글판을 보고 감동하여, 수희찬탄의 마음으로 필자를 만나러 빛고을까지 몸소 발걸음하셨답니다. 전날 도착했는데, 내가 수업이 없어서 연구실을 비운 까닭에, 법공양에 열심인 임실 상이암 동효스님을 찾아뵙고, 거기서 하루 묵고가라고 붙잡는데, 이튿날 늦어져 또 못 만나 허탕 치면 안 된다며, 권청을 뿌리치고 그날 저녁 광주로 돌아와 찜질방에서 하루 묵고, 나한테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김밥집에서 채식으로 한 줄 말아 가지고 찾아와 내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셨답니다. 그렇게 처음 만난 법안(法顔)은 인광대사 분위기도 풍기면서 평화롭고 자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사양하는데 순두부집으로 모시고 가서 점심공양하고 무등산중봉까지 산행하며 법담을 나누었는데, 저녁공양도 한사코 사양해 용산행 무궁화 밤차표 한 장 끊어드리고 작별했습니다.
본인이 만주서 태어나 출가수행한 인연담도 자별하였거니와, 주경스님이 붙잡지만 앞으로 중국 여산(廬山)에 들어가 염불수행에 매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나한테 교수를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음은 유난히 은근했습니다. 옛날 혜원대사가 염불결사하신 동림사를 최근 중창하여 염불수행자들이 모여 다시 결사한다는 소식이었죠. 문득 동진(東晋) 때 혜원대사(334∼416)가 구마라집(344∼413, 일설 350∼409)의 불경번역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했으나, 먼 길에 만나지는 못하고 흠모와 찬탄의 아쉬움에 서신왕래로 법을 교유한 옛 인연담이 떠올랐습니다. 인공스님의 순수한 불심과 지극한 정성을 몸소 마주하면서, 나는 마치 혜원대사가 1600여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구마라집을 예방해 옛 회포를 푸는 듯한 도반의 우정에 잠시 젖어들면서, 인공스님이 나한테 여산에 함께 들어가 염불에 전념하자고 간곡히 권청하는 마음을 직감했습니다. 신라 왕자로 태어난 김교각스님과 무상스님이 권력다툼을 피해 중국으로 건너가 수행과 홍법에 전념한 인연을 조금 어렴풋이 공감하면서!
며칠 뒤 조계사에서 청화스님 열반 몇 주기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해, 주경스님 만나 이야기하다가 인공스님 말이 나와 전화를 걸었는데, 때마침 아무도 모르게 중국에 돌아가려고 인천공항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그 순간까진 휴대전화를 끊지 않아, 마지막 통화로 작별의 정과 격려를 나누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경스님은 일흔 나이로 홀연히 입적했습니다.
또 그 비슷한 무렵, 한번은 무등산 규봉암에 올라가 하루 묵으려는데, 오후에 일본에 사는 여자 교포 두 분이 올라왔습니다. 한 분이 새벽에 어느 교수님이 서류가방에서 좋은 책을 꺼내주는 꿈을 꾸고 영감이 내켜 그냥 올라왔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하루 묵으며 기도도 하고 이튿날 같이 내려가 『가언록』이랑 『요범사훈』이랑 책을 주겠다고 권하니, 일정상 바로 내려가야 한다기에, 무등사미한테 같이 학교 가서 어느 학생 도움으로 연구6실 들어가 책을 꺼내 한 권씩 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얼마 뒤 서울에서 다시 만나 관악산 연주암에 오르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광주 출신인 그분은 돈 벌러 일본 갔다가 눌러앉아 다행히 좋은 일본 사람 만나 결혼하고 사는데, 자기처럼 일본서 눌러앉은 한국여자들이 엄청 많답니다. 마음 의지할 곳이 없어 정신적 귀의처로 부처님가르침이 절실히 필요하나, 일본 절에 나다니기는 어려움이 많은가 본데, 이따금 고국에서 오는 스님들은 대부분 돈만 밝혀 챙길 뿐, 열과 성을 다해 그들의 마음을 붙잡아주진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일본인 남편의 동의를 얻어 선암사로 삭발 출가하고, 한국 태고종의 일본 지사를 꾸려 그들을 보듬겠다고 뜻을 밝혔습니다. 그분은 최소 1주일은 걸리는 불교성지 교토를 자신도 아직 순례하지 못했는데, 나와 무등사미가 일본 오면 모든 일정을 안배해 함께 순례하겠다고 간곡히 초청했습니다. 허나 그 고마운 인연도 힘겨운 체력여건으로 호응하지 못했습니다.
2년전쯤 공장기계수리업을 하는 조광현 불자님이 전화 걸어와, 『가언록』이 너무 좋아 주위 친지들한테 나눠주고 싶은데, 책이 없어 구하지 못한다고 여분 있으면 몇 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조금 뒤 다시 연락해와, 이것도 인연인데 자기가 아예 1천권가량 법공양판을 찍겠다고 자원하기에, 그 열성에 감탄해 꼼꼼히 새로 교정보고 나도 1천권을 보태 찍어 군법사와 기타 인연 있는 곳에 돌렸습니다. 조거사는 알고 보니 내 고교 동창의 매형인데, 자기 친척 중 어려운 시절 신부님의 권유로 독일에 간호사로 가서, 주경야독으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활동하는 분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그분은 한국의 수지침까지 배워 임상치료에 아주 톡톡한 효험도 보고 있는데, 한 권 보내드렸더니 다 읽고는 이렇게 좋은 책은 처음이라고 극찬했답니다.
그밖에 재미교포로 『가언록』을 읽고 나한테 전자우편으로 감사의 뜻을 적어온 분도 있고, 또 미국에 사가지고 간 불자 이야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내가 연구실을 잘 지키지 않고 전화를 거의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성으로 연결되는 스님이나 불자들의 소식만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인연담은 모두 불보살님과 인광대사의 미묘한 명훈가피력으로 나타난 감응입니다. 다만, 인연 있는 분들께 정토법문이 얼마나 수승하고 귀중한지, 그 기특함을 알리고 염불수행에 정진하자고 권청하는 뜻에서 소개한 것이며, 결코 내 자신의 자랑거리로 떠벌린 것이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랍니다.
풍문에 따르면, 『가언록』이 스님들한테도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 참선 가풍의 조계종도 상당한 위기의식과 경각심을 느끼고 종풍을 재정돈해 진작시키려고 화두선 수행체계를 제법 크게 정리했다고 합니다. 다함께 불법을 수행하는 착한 벗(善友)들이 선의의 경쟁의식으로 서로 자극과 격려를 주고받으며 정진에 박차를 가함은 참으로 아름답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또 최근 1년 반가량 불교방송에서 송담스님의 법문을 꾸준히 듣고 보니, 화두선이나 염불이나 수행의 기본전제와 궁극목적은 물론, 수행의 원리와 심지어 방법조차도 대체로 상통함을 재확인하였습니다. 다만 각자 근기(적성)와 인연(취향) 따라 자신에게 알맞은 방법을 선택하면 되는데, 『가언록』에서 적확히 일깨운 염불수행법의 특별함을 믿고 따르는 인연은, 또한 오로지 각자의 지혜와 복덕에 맡길 뿐임을 실감합니다. 암과 같은 중병에 걸려 생사의 갈림길에 헤매는 환자가, 그 흔하고 하기 쉬운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염불조차 무슨 미신이나 귀신처럼 알고 애써 외면하고 뿌리친다든지. 나이든 고명하신 지식인이 ‘노느니 염불한다’는 속담은 입에다 주렁주렁 달면서도, 허구한 날 하릴없이 잡담하고 망상하며 놀지언정, 정작 저승길의 가장 든든한 밑천인 염불은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평소 업습(業習)이 얼마나 막강한지 절감하며 안타까움과 슬픔만 북받쳐 오릅니다.
진작부터 현대과학의 관점에서 염불의 원리와 방법을 재정리해 ‘염불기신론’을 쓰고자 구상하고 있으나, 아직 여유가 나지 않아 손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시절인연이 닿길 기대하며, 인연 있는 모든 분들이 정토법문에 돈독한 믿음과 발원을 지니고 한평생 헛되지 않게 염불수행에 정진해, 극락왕생의 종신대사를 원만히 성취하시길 불보살님께 간절히 기원합니다. 끝으로, 『가언록』의 발췌본인 『단박에 윤회를 끊는 가르침』의 재판본에는 ‘각 수행 방법에 대한 평가’, ‘출가’, ‘양기의 등잔과 보수의 생강’ 세 꼭지를 새로 추가함을 밝히면서, 자상한 편집교정으로 재판을 꼼꼼히 챙겨준 정선경님의 정성에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갑오년 정월 초하루 화창한 설날 (2014.1.31.금) 해거름
빛고을 운암골 연정재蓮淨齋에서
극락정토 왕생을 간절히 발원하는 염불행자 寶積 金池洙 공경합장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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