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의 필요성
무릇 채식의 가치와 필요성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고려할 수 있다.
첫째는, ‘과학’의 차원에서, 육식으로 인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여 육체의 ‘건강’을 증진한다는 이유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누구나 건강과 장수를 바라므로, 맨 처음 관심의 출발은 여기서 비롯하는 게 상례이고, 또 잘못되거나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과학과 물질 만능에 사로잡혀 몸뚱아리의 건강에만 집착하는 유물론적 소승(小乘)에 안주할까 저어할 따름이다.
둘째는, ‘철학’의 차원에서, 채식이 피와 기(氣)를 맑게 하여 정신도 맑아지고, 따라서 총명과 ‘지혜’를 증진한다는 이유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주된 이유도 지혜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또 산업화를 거쳐 정보화 시대로 들어서면서, 계속 두뇌의 지적능력이 생존경쟁의 유력한 무기로 군림하는 세상에서, 더구나 세계 제일의 교육열과 입시경쟁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머리가 좋아진다면 누구나 귀가 쫑긋할 만한 희소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혜도 그러하려니와, 특히 지식정보라는 차원에서 단지 머리 좀 총명하게 잘 돌아가는 데서 그친다면, 뭔가 좀 모자란 듯하고, 때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차원 더 높이 승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종교수행’의 차원에서, 내 배 좀 부르고 내 입맛 좀 즐기자고 다른 생명을 죽여 그 피와 살을 먹는다는 것은, 모든 생명(중생)의 존엄성과 평등성을 해치고, 인간의 어진 사랑의 마음을 져버린다는, 대승(大乘)의 ‘자비’ 정신이다. 만물과 내가 결국은 하나라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의 경지까지 승화할 때, 채식의 정신은 가장 숭고하게 순화한다. 불교에서 채식과 일종식(一終食 : 하루 한끼 식사로 午後不食하는 계율. 해가 진 뒤에는 먹지 않는다는 힌두나 이슬람 음식수행법을 염두에 두면, 또는 日終食이라고 부를 것 같음.)을 불살생(不殺生)의 기본 계율과 함께 실행하는 수행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간디의 채식
간디는 어머니로부터 인도의 종교신앙(힌두교) 전통을 이어 받아, 채식은 자연스럽게 몸에 밴 생활의 일부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시련과 우여곡절 및 비약이 있었다. 간디는 인도의 사회전통과 집안 분위기, 특히 청정한 종교신앙 생활을 하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채식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그러다가 청소년 사춘기 때, 영국을 몰아내고 독립을 이루려면 고기를 먹어 힘이 강해져야 한다는 친구들의 그럴듯한 명분논리에 넘어가, 한때 부모님 몰래 고기를 먹기도 했다. 그러나 고기를 먹는다는 것보다도, 부모님을 속인다는 사실 자체가 양심에 더욱 걸린 간디는, 고기의 유혹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열세 살에 일찌감치 결혼한 간디는 스무 살의 약관(弱冠)에 영국으로 유학가면서, 여자와 고기를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어머니께 다짐했다. 그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겠다는 순수한 효성에 힘입어, 간디는 철저한 채식을 지속한다. 다행히도 당시 영국에서는 채식동호회가 있었고, 또 과학․의학상으로 뿐만 아니라 종교(철학)상으로도 채식의 원리와 가치를 세밀히 연구 조사하여, 상당한 수준의 이론 체계가 이미 널리 보급한 상태였다. 거기서 간디는 채식을 단순히 종교나 정감(情感)의 차원에서 맹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침내 과학상의 합리성 근거까지 발견하여, 채식에 대한 확신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다.
‘간디자서전’에 직접 적힌 내용으로만 보아도, 도덕상으로는 사람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잡아먹을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처럼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서로 도와주어야 하는 상생(相生)의 원리가 밝혀졌다. 그리고 의학상으로는 사람이 생리 구조상 화식(火食)이 아니라 과식(果食)에 적합하고, 어미젖을 먹다가 이가 나기 시작하면 곧 굳은 식물을 먹게끔 태어났다는 결론도 나 있었으며, 또 모든 양념과 향료를 내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경제상으로 채식이 가장 싸게 먹힌다는 이론도, 검소한 유학생활을 해야 할 간디에게는 아주 매력 있는 실질근거가 되었다.
채식의 정의
지금도 그러하겠지만, 이미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육식’의 ‘고기’를 대체로 세 단계로 나누어 정의했다고 한다. 첫째는 새나 짐승의 살만 의미하기 때문에, 생선 먹는 것은 허용한다. 둘째는 모든 생명(동물)의 살을 의미하며, 생선은 못 먹지만 계란이나 우유는 먹는 것이 허용한다. 셋째는 모든 동물의 살은 물론, 거기서 나온 알이나 젖까지 포함하여, 채식이란 문자 그대로 순전히 식물성 음식만 먹는 협의의 정의다. 참고로, 불교에서는 우유만 허용하고, 계란은 금지하는 게 보통인 것 같다. 요즘에는 유정란(有精卵)은 생명의 씨가 이루어져 있으므로 먹어서는 안되지만, 무정란(無精卵)은 먹어도 괜찮다는 견해도 있다.
여기서 간디는 어느 범위의 채식에 따른 것인지 한참 고민한다. 그러나 어머니와 맺은 약속을 지키기로 작정한 만큼, 어머니의 정의에 따라서 달걀을 안 먹는 가장 엄격한 채식을 따라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당시 영국 채식식당에서는 달걀이 들어간 음식이 아주 많아서, 그걸 먹지 않기 위해서 많은 고생을 했다고 간디는 회고한다.
간디의 해석론
채식에 관한 간디의 결단에는 특별히 두드러진 현명한 지혜가 돋보인다. 맹세나 서약(계약, 약속)의 해석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싸움의 근원이 되어 왔다고 인식한 간디는, 사람들이 분명한 맹세조차도 자기 목적에 맞도록 본문을 뒤집고 왜곡하기 일쑤며, 또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애매하고 어중간한 말로써 자기 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이며 하늘(신)도 속인다고 탄식한다. 맹세가 두 가지로 해석 가능한 경우, 우리가 따라야 할 황금률은, 맹세를 주관했던 편에서 정직하게 해석하거나, 아니면 약자 편의 해석을 듣는 것이라고 간디는 단언한다. 진리만을 좇는 사람(진실로 도를 닦는 수행자)은 그 황금률을 쉽게 따르는데, 사람들이 진실하지 못해 그러한 황금률을 따르지 않고, 그래서 온갖 불의와 싸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간디는 어머니의 채식 정의를 따른 것이다.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통찰력인가?
이러한 해석의 문제는, 개인 간의 계약 해석을 둘러싼 다툼부터, 나라간의 조약 해석을 둘러싼 전쟁에 이르기까지, 정치․경제․사회․법률의 모든 영역에서, 동서고금의 거의 모든 분쟁의 근원 실마리임에 틀림없다. 사실 간디의 이러한 황금률(계약해석에 관한 원칙)과 채식주의는 그의 변호사 생활과 법률가 정신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서문 - 간디와 만남 (0) | 2022.12.28 |
---|---|
간디의 근원 - 아힘사 정신 (1) | 2022.12.28 |
간디의 단식 (0) | 2022.12.28 |
간디의 법률가 정신과 채식주의 (1) | 2022.12.28 |
간디의 정신과 금욕 (0) | 2022.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