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보다는 화해가 우선
간디는 자기 소송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서라면 무조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변론하는 능숙 능란한 말재주꾼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였다. 간디는 “사실은 법의 4분의 3”이라는 핀커트씨의 조언을 명심하고, 늘 진실을 그대로 밝혀 정의를 실현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소송의뢰인에게 불리한 사실도 정직하게 법정에서 밝혔고, 또 정직하거나 의롭지 않은 사람의 소송의뢰는 아예 처음부터 거절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간디는 소송보다는 당사자간의 화해나 중재를 통해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데 힘을 다했다. 간디는 인도에서 변호사로서 소송 대리업무가 잘 되지 않던 차에, 우연히 남아프리카 어느 상사(商社)의 소송보조를 의뢰 받고 현지로 건너갔다. 그러나 거기서 분쟁상황을 파악한 간디는, 그 소송이 쉽게 끝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승소한다 하더라도 소송비용조차 건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쌍방이 서로 양보하여 타협하도록 중재했다. 중재에서 자기 의뢰인이 이겼는데, 이제는 그 판정금이 너무 커서 상대방이 일시에 지불해야 한다면, 파산하고 자살까지 초래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이제 간디는 상대방이 거액의 판정금을 장기간에 걸쳐 분납할 수 있도록 허락하라고 자기 의뢰인을 양보시키는 데 더 힘들었다. 마침내 오랜 기간을 끌던 소송사건은 원만히 풀려 매듭지어졌다. 그 소감을 간디는 이렇게 감동적으로 적고 있다.
“나는 법의 진정한 활용을 배웠다. 또한 인간성의 선한 면을 찾아내는 길을 배웠고, 인간의 심정 속에 들어가는 길도 배웠다. 나는 법률인의 진정한 역할은 서로 갈라진 양쪽을 화합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교훈은 도저히 지워질 수 없이 내 속에 낙인이 찍힌 것이었으므로, 내가 변호사로서 활동한 20년간의 대부분은 수백 건의 사건을 화해시키는 데 쓰였다. 그로써 내가 손해 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돈으로도 그렇지만, 내 영혼으로는 더더구나 그렇다.”(제2편 제14장 「소송의 준비」)
소송보다는 조정(調停)이나 중재를 통한 분쟁의 평화해결이 법률가로서 간디의 위대한 정신이다. 이는 또한 동서고금의 위대한 성현들이 공통으로 주장하고 실천하신 ‘다투지 않는 덕(不爭之德)’의 법률상 표현이다. 물론 부쟁지덕(不爭之德)은 남을 죽이거나 해치지 않는 ‘아힘사’의 계율과 곧장 이어진다. 맹자가 말한 인의 실마리(仁之端)로서 ‘남한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다. 그러한 어진 마음이 분쟁의 해결에서, 서로 감정과 인격에 상처를 주고받으며, 결국 원수 척(隻)지는 법률상 소송으로 치닫기 전에, 타협과 양보로 화해시키는 쪽으로 승화한 것이다. 그러한 심성은 선천(先天)으로 타고난 어질고 자비로움에 바탕을 두기도 하겠지만, 평소 아힘사의 자비심에서 철저한 채식으로 생활한 기질과 덕성 덕분에 더욱 원만히 함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자도 일찍이 “소송의 심리․재판은 나도 남만큼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반드시 소송이 없도록 (예방)하겠다.(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고 말했다. 노자는 “큰 원한은 아무리 잘 화해해도 반드시 찜찜한 앙금이 남기 마련(和大怨, 必有餘怨)”이라고 말하면서, 도처에서 ‘다투지 않는 덕(不爭之德)’을 강조했다. 공자는 완전 채식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어진 마음(仁心)이 짐승에게까지 미쳐, 고기는 되도록 적게 먹고, 동물 사랑도 각별했다. 또 노자는 ‘자비(慈)’를 세 가지 보배의 첫째로 꼽으면서, 담백하고 무미건조(無味)함을 도(道)의 입맛이라고 칭송한다. 또 자비심으로 섭생을 잘 하는 사람은, 어떠한 맹수도 그를 해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갓난아기와 같이 중후한 덕성을 함양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아힘사의 전제인 채식
‘아힘사’에서 채식은 단식보다도 더 중요한 밑천이다. 동물성 육식은 영양이 풍부하고 에너지가 많아서,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당장 힘쓰고 살찌기에는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모든 이점에는 폐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육식의 피비린내로부터 모든 불결한 오염과 질병이 비롯한다. 동물성 지방이나 단백질이 탈 때 나는 노랑내와 그을음은, 몸 안의 피와 살을 온통 시커멓게 오염시키며, 말 못하고 죽은 동물의 원한은 인간의 영혼에 독기를 품어 댈 것이다. 육식으로 오염 당한 인간의 몸과 마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육식동물과 같은 포악한 공격성을 닮아간다. 따라서 진정한 ‘아힘사’를 철저히 실행하려면, 채식이 필수 불가결한 전제요건이 될 수밖에 없다.
간디의 정신을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모든 생명체가 한 몸이라는 대자비심에서, 차마 다른 생명을 해치지 못하고 그 고기도 먹지 않는 철저한 채식주의의 아힘사에서 비롯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점은 간디의 둘째 아들 마닐랄(Manilal)이 열 살 때 급성장티푸스에 걸려 위독하게 된 상황에서, 의사가 우유만으로는 영양이 부족하므로 계란과 닭국을 먹이는 게 좋다고 적극 권고한 데 대한 간디의 답변에 잘 나타난다. 아들의 나이가 너무 어려 본인의 의사결정을 따르기 어려운 상황인지라, 보호자가 대신 결정해야 했다. 헌데 간디는 가족의 채식주의를 고수해야 할 신성한 책임을 느끼면서, 이렇게 피력했다.
“제 생각으로는 이런 경우야말로 사람의 신앙이 시험을 받는 때입니다. 옳건 그르건, 사람은 고기나 계란 따위를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제 종교신앙의 일부분입니다. 우리 목숨을 지켜가는 방법에도 어느 한계가 있어야 합니다. 생명 그 자체를 위해서까지도 해서는 안되는 그 어떤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대로는, 종교는 저에게 이러한 경우에까지도 저나 제 가족을 위해 고기나 계란을 먹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선생님께서 짐작하시는 그 모험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제3편 22장 「시련에 처한 신앙」)
그 아힘사의 자비심이 변호사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간디를, 소송보다는 중재나 화해에 더욱 치중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영국의 식민통치에 항거하여 인도의 독립을 요구하면서는, 시종일관 비폭력․무저항의 불복종 운동으로 펼쳐졌다. 상대방의 무자비한 폭력을 아힘사로 감수하고 포용하며 나아가 자비심으로 용서함으로써, 결국은 상대방을 감화시키고 스스로 물러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민족의 정치 지도자로서도, 간디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화해를 위해 종파와 당파를 초월해 헌신적 사랑을 베풀다가, 끝내는 아힘사의 제단에 힘사의 희생(제물)으로 바쳐졌다.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두는 순간에 마지막 외친 말이 ‘오! 신이시여!’였다니, 그의 영혼 자체가 아힘사의 자비로 온전히 순화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삶은 꾸밀 수 있어도, 죽음은 속일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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