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과 예수님과 묵자님은 궁극에 모든 사람을 내 가족, 아니 나 자신과 똑같이 사랑하라고 인애(仁愛)와 박애(博愛)와 겸애(兼愛)를 설파하셨다. 그 사랑만 행할 수 있어도 분명히 이 세상은 지상 천국이요 지상 낙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왜 그런 숭고한 보편적 인류애를 참되게 실현할 수 없을까? 우리 인간만 위한다면 다른 동물을 마음대로 부리고 죽이고 잡아먹어도 된다(좋다)는, 배타적 인본주의(exclusive humanism)와 편협한 인간이기주의 때문은 아닐까? 인간을 위해 자연을 정복하고 환경을 파괴해도 괜찮다는 인간 중심의 물질문명과 개발 논리의 결과가 과연 지금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라! 자연과 우주 자체도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이고, 우리 인간은 다른 만물과 마찬가지로 각자가 그 커다란 우주 생명체의 조그만 한 세포일 수 있다는, 성현들의 일깨움을 더욱 절실하게 공감할 때가 아닌가? 하물며, 우리 인간과 비슷하게 살아 움직이며 희노애락의 감정과 사고판단의 지각을 지닌 동물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인류평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생평등을 설파(說破)하셨으리라. 그리고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혼의 한 분으로 추앙 받는 마하트마 간디님도 그의 ‘진리 실험 이야기’인 자서전에서, “우리 목숨을 지켜 가는 방법에도 어느 한계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생명 자체를 위해서조차도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라고 역설하면서, 한평생 외곬으로 우유조차 마시지 않는 극단적인 채식주의를 집요하게 관철하시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 인간들은, 배고픔과 질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한 순간 입맛을 즐기기 위한 식도락(食道樂)으로나, 아니면 음탕한 정욕을 좀더 자주 강렬히 부리려는 강장제로서, 거의 모든 동물과 미물들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아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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