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어회와 능지처사」라는 글을 ‘산낙지와 히딩크’로 끝맺을 수 없는 인연이 있는 듯하다. 만사가 그렇듯이, 글이라는 것도 여백의 미를 지니면서 여운(餘韻)을 남기는 미완성이 완결의 구성보다 훨씬 아름다운 감명과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대승보살이 성불을 미루고 계속 중생의 몸으로 나토어 보살도를 행함도 그렇고, 주역(周易)이 기제(旣濟)괘 다음에 미제(未濟)괘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구성도 또한 그러하다. 불보살님께서 서운하셨는지 내 마음 한켠에도 왠지 아쉬움이 맴돌고 있었는데, 지난 겨울 대지도론(大智度論)을 봉독(奉讀)하기 시작하면서, 「활어회」의 여운을 뒤풀이할 영감이 내려왔다.
지금까지 중생사를 얘기했으니, 이제 보살도를 밝혀야 하지 않을까?
중생과 보살은 무엇이 다른가? 중생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고 다른 중생의 살을 산 채로 씹어 먹는 짓도 서슴지 않는데, 보살은 반대로 다른 중생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고 피와 살까지 기꺼이 주곤 한다. 무명업장에 뒤덮인 중생들의 잔인한 동물성(動物性)과 악마성(惡魔性)을 비판적 고발 투로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데 그치자니, 지옥의 암흑과 공포 분위기만 조성한 느낌이다. 반쪼까리 허전함을 채우고 균형감 있는 글을 이루기 위해서도, 그 반대쪽에서 자비 원력에 충만한 대승보살들의 신성(神性)과 불성(佛性)을 수희(隨喜)찬탄(讚嘆) 조로 여실히 선양할 필요가 있는 법이리라. 악이 무섭고 두려워 멈추는 데 그치지 않고, 선을 기꺼이 즐겨 행하는 데 나아가고, 마침내 선과 악을 모두 잊고 초월하는 반야공(般若空)의 지혜까지 이른다면, 불보살과 범부중생이 따로 있으며, 극락정토와 천국 지옥이 따로 있겠는가?
이러한 연유로, 이미 널리 알려진 법문이지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살도를 행하실 때의 본생인연담 가운데 대표적인 헌신공양 실례를 몇 가지 옮겨 소개하고자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전생에 시비왕(尸毗王)일 적에, 귀명구호다라니(歸命救護陀羅尼: 목숨을 바쳐 중생을 보호․구제하는 大眞言)를 얻어, 대자비심으로 용맹정진하면서, 마치 어머니가 자식 사랑하듯이 모든 중생을 자애로 대하셨다. 당시 세상에는 부처님께서 안 계셨는데, 석제환인(釋帝桓因)이 목숨이 거의 다하여 “어느 곳에 모든 것을 아시는 부처님이 계실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도처에 찾아가 어려운 질문을 던져 보았으나, 속 시원히 의심을 풀어 주지 못하므로, 죄다 부처님은 아닌 줄 알고 천상에 돌아와 근심스레 앉아 있었다. 그때 교묘히 변화하는 마술사인 비수갈마천(毘首羯摩天)이 “천주(天主)께서는 어찌 근심하십니까?” 라고 물었다. 이에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분을 찾고 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근심하고 있소.” 라고 답했다. 이에 비수갈마천이 “대보살님이 한 분 계시는데, 보시․지혜․선정․지혜가 두루 원만히 갖추어져 머지않아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제석이 게송으로 화답하였다.
“보살이 큰마음 내어 성불하는 것은
물고기 알이 부화하고 암수(菴樹) 꽃이 열매 맺는 것 같아
이 세 가지는 원인(시작) 시에는 수가 많으나
결과의 때에는 성취가 몹시 적다네.”
비수갈마가 다시 답변했다:
“우시나종(優尸那種)의 시비왕은 지계․정진․대자․대비․선정․지혜가 충만하여 머지않아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이에 석제환인이 비수갈마한테 제안했다.
“그럼, 정말 보살행이 있는지 알아보게 가서 시험해 보자. 그대는 비둘기가 되고 나는 매가 되어, 내가 그대를 뒤쫓을 테니, 그대는 짐짓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왕의 겨드랑이 속으로 들어가 보라.”
비수갈마가 “이렇게 큰 보살님을 어떻게 이런 시험으로 괴롭힌다 말입니까?” 라고 반문하자, 석제환인은 게송으로 읊었다.
“나 또한 악한 마음이 아닐세.
진짜 금인지 불에다 시험하듯이
이렇게 보살을 시험해 본다면
그 마음이 진짜 굳건한지 알 수 있다네.”
이 게송이 끝나자마자, 비수갈마는 바로 빨간 눈에 빨간 발을 가진 비둘기로 변신하였고, 석제환인은 매로 둔갑하여 급히 비둘기를 뒤쫓아갔다. 비둘기는 곧장 내려와 왕의 겨드랑이 속으로 숨어들어,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을 깜박이고 소리를 다급히 짖어 댔다. 이때 이 모습을 지켜 본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수군대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왕은 크게 인자하여/ 마땅히 모든 생명을 보호하리니
비둘기 같이 조그만 새라도
그 품에 안기기를 집에 들어가듯 하네.
보살의 모습이 이와 같으니/ 틀림없이 머지않아 부처님 되시리.”
이때 매가 가까운 나무 위에서 시비왕한테 말했다.
“내 비둘기를 돌려 다오. 이는 내가 받은 먹이오.”
이에 왕이 매한테 대답했다.
“이 비둘기는 내가 전부터 받은 것이지, 그대가 받은 게 아니오. 내가 처음 발심할 때 이미 이 비둘기를 받았소. 일체 중생을 모두 제도하겠다고 발원할 때에!”
그러자 매가 반문했다.
“왕이 일체 중생을 제도하겠다면서, 나는 그 일체 속에 들어가지 않는단 말이오? 어찌하여 나 혼자만 불쌍히 여기지 않고서, 오늘 내 먹이를 빼앗는 거요?”
왕이 물었다.
“그대는 무얼 먹어야 하는가? 나는 나한테 찾아와 깃드는 중생들을 반드시 구하여 보호해 주기로 서원하였소. 그대가 무얼 먹어야 하는지, 내 또한 먹여 주리라.”
매가 대답했다.
“나는 막 죽인 뜨거운 고기를 먹어야 하오.”
이 말을 듣고 왕은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이 같은 고기는 얻기 어렵겠군. 스스로 산목숨 죽이지 않고서는 어디서 얻는단 말인가? 내가 어떻게 한 생명을 죽여 다른 한 생명한테 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사유한 뒤 차분히 마음을 정하고 즉시 게송을 읊었다.
“나의 이 몸뚱아리 고기는/ 언제나 늙고 병들어 죽을 신세
머지않아 썩어 문드러질 판이니
고기를 먹어야 할 매한테 내 주리라.”
이처럼 사유한 다음, 신하한테 칼을 가져오라고 분부하여, 스스로 허벅지 살을 베어 매한테 주었다. 그러자 매가 왕한테 말했다.
“왕이 비록 뜨거운 고기를 나한테 건네주더라도, 마땅히 도리(道理)에 맞아야 하오. 살코기의 무게가 비둘기 몸무게와 똑같게 떼어 주시오. 조금도 속이지 말고!”
왕은 “저울을 가져 오라”고 분부하여, 살코기를 비둘기와 나란히 달았다. 그런데 비둘기의 몸은 무겁게 기울고, 왕의 살코기는 가볍게 올라갔다. 왕은 신하한테 두 허벅지 살을 모두 베어 달도록 했는데, 역시 가벼워 모자랐다. 그래서 두 장딴지, 두 발뒤꿈치, 두 젖가슴, 목덜미, 어깨 죽지, 등짝까지 차례로 살을 발라내어, 온 몸의 살점이란 살점은 남김없이 긁어내었다.
(보살의 이러한 육신회(肉身膾) 공양 모습이 옛날 역사상 능지처사의 처참한 모습이나 현대 식도락상 활어회의 잔인한 모습과 다를 게 무엇인가? 중생상과 보살행의 마음차이만 뺀다면! 석가모니가 마지막 성불하기 직전 6년간 고행한 모습도 실질상 전생의 보살도 수행시 보이신 육신회(肉身膾)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살점을 겉(밖)에서 발라냈느냐, 속(안)으로 밭아냈느냐-주1) 차이만 있을 뿐, 일체 중생을 구하여 보호하기 위한 보살도 수행 정진으로 헌신 공양한 점에선, 그 본질 성격과 현상 모습이 너무도 흡사하다. - 옮긴이)
어쨌든 온몸의 살점을 죄다 발라냈는데도, 비둘기 몸이 왕의 고기보다 여전히 무거웠다. 이때 가까운 신하와 친척들이 왕의 이러한 처참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천막을 쳐서 구경하려는 사람들을 막으려 했다. 그러자 시비왕은 “사람들을 막지 말고 들어와 보도록 하라”고 말하면서 게송을 읊었다.
“천상과 인간과 아수라 등/ 모두들 와서 나를 보시라.
커다란 마음과 위없는 뜻으로/ 부처님 도를 이루려고 닦는 모습을!
만약 부처님 도를 구하려거든/ 이처럼 큰 고통을 참아야 마땅하리.
그렇게 견고한 마음이 없거든/ 부처님 도 구할 뜻은 아예 그만두시게!”
그리고 보살(왕)은 피로 뒤범벅된 손으로 저울 위로 기어올라, 자기 몸 전체로 비둘기와 맞저울질할 심산이었다. 그러자 매가 말을 걸었다.
“대왕! 이 일은 하기 어려운데, 어찌 꼭 그리하시오? 그냥 비둘기를 나한테 돌려주시오.”
왕이 대답했다.
“비둘기가 날아와 나한테 깃들었으니, 결코 그대한테 넘겨주지 않으리라. 내가 몸을 무수히 잃어도 사물한테는 조금도 보탬이 없으니, 이제 몸을 가지고 부처님 도와 맞바꿀 생각이오.”
그리고는 손으로 저울을 부여잡는데, 보살의 살이 다 떨어져 나가고 힘줄이 끊어져 더 이상 뜻대로 몸을 가눌 수가 없는지라, 올라가려다가 떨어지곤 하자 스스로 책망하여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대는 마땅히 스스로 강인할지어다. 정신을 잃고 헤매서는 안 된다. 일체 중생이 모두 근심과 고통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그대 혼자서 일체 중생을 건지고자 서원을 세웠거늘, 어찌 게으름 피우고 정신을 놓는단 말인가? 이 고통은 몹시도 적고, 지옥의 고통은 매우 많으니, 지옥의 고통에 비하면 16분의 1도 채 안 된다. 나는 지금 지혜․정진․지계․선정이 있는데도 오히려 이러한 고통을 당하거늘, 하물며 지옥 속에 갇혀 있는 무지몽매한 중생들은 오죽하겠는가?”
이때 보살(왕)은 한 마음으로 저울 위에 올라가려고 애를 쓰면서, 사람들한테 자기를 부축해 달라고 말했는데, 마음에 추호도 회한(悔恨)이 없었다. 이에 천상․용왕․아수라․귀․신․인민들이 모두 한결같이 크게 찬탄하였다.
“그까짓 조그만 새 한 마리를 위해 이러하다니, 정말로 보기 드문 일이도다!”
이와 함께 천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바다가 크게 파도치며, 고목에 꽃이 피고 천상에서 향그러운 비와 아름다운 꽃을 흩뿌리는 가운데, 천녀(天女)들이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고 노래로 찬탄하였다. 그때 사방의 신선들도 모두 와서 찬탄하였다.
“참으로 훌륭한 보살이시네. 반드시 머지않아 부처님 되시리!”
마침내 매가 비둘기한테 속삭였다.
“여러모로 시험해도 이처럼 목숨을 아끼지 않으니 진짜 보살이시도다.”
그러고는 바로 게송을 읊었다.
“자비의 대지 속에서 솟아오르는/ 일체 지혜의 나무의 싹이여!
우리들 마땅히 공양할지니/ 근심과 괴로움 끼쳐서는 아니 되리!”
비수갈마가 석제환인한테 말했다.
“천주(天主)여! 그대는 신통력이 있어, 이 왕의 몸을 원상회복시킬 수 있지 않소?”
그러자 석제환인이 대답했다.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없소. 이 왕은 스스로 ‘크나큰 환희심으로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일체 중생을 감동시켜 부처님 도를 구하도록 이끌겠다’고 서원하였소.”
그리고는 제석은 왕한테 말했다.
“그대는 살을 발라내어 몹시 아프고 괴로울 텐데, 마음에 번뇌나 회한은 없소?”
왕이 “내 마음은 환희만 있을 뿐, 번뇌도 없고 회한도 없소.”라고 답하자, 제석이 “누가 그대 마음에 회한이 없는 줄 믿는단 말이오?” 라고 반문했다. 이때 보살(왕)은 진실한 서원을 굳게 발하였다.
“내가 살을 발라내어 피가 흘러도 성내지 아니하고 번민하지 아니하며, 한 마음으로 회한 없이 부처님 도를 구하는 게 진실하다면, 내 몸은 마땅히 즉각 예전처럼 본래 모습을 되찾으리라!”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왕의 몸은 본래대로 되돌아갔다. 인간과 천상에서 이 모습을 보고 모두 크게 구슬피 기뻐하며, 일찍이 보지 못한 광경을 찬탄하였다.
“이 대보살님은 반드시 부처님이 되시리니, 우리들은 마땅히 한 마음 다해 공양 올려야 하리. 원컨대 일찍 부처님 도를 이루시어 우리들을 호념(護念)하게 하소서!”
이 모습을 보고 석제환인과 비수갈마는 각각 천상으로 돌아갔다.
이는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보시(檀)바라밀을 원만히 성취하는 방법으로, “일체 모든 것을 아낌이나 걸림 없이 베풀며, 심지어 몸을 보시할 때에도 마음에 조금도 아까운 생각이 없어야 한다.”고 해석하면서 비유로 든 실례다.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인색하고 잔인한 상인이 계약서대로 살을 떼어달라고 하자, 현명한 재판관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그만치만 떼어내어야 하며, 만약 1g이라도 더 떼어내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겁주어 위기를 모면한 기지(機智)가 돋보이는데, 불경에서 부처님의 보살행은 중생사랑의 대자대비심만이 우뚝 두드러진 게 크게 대조할 만한 특징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살도를 행하실 때, 한번은 대국왕이었는데, 세상에 부처님도 안 계시고, 부처님법도 없고 비구승도 없었다. 왕은 부처님 법을 구하러 사방으로 나다니며 찾았으나,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한 바라문이 말했다.
“내가 부처님 게송을 아는데, 나한테 공양을 올리면, 당신한테 가르쳐 주겠소.”
왕이 즉시 물었다.
“어떠한 공양을 요구하오?”
바라문이 답했다.
“당신이 당신 살을 으깨 심지로 만들고 당신 몸 전체를 등불로 살라 나한테 소신연등(燒身燃燈) 공양을 올린다면, 부처님 게송을 당신한테 가르쳐 주겠소.”
왕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나의 이 몸뚱아리는 보잘것없고, 위태로우며 더럽기 짝이 없고, 금방 썩어 문드러질 물건이다. 세세생생 헤아릴 수 없이 몸을 바꾸며 고통을 받아 왔건만, 일찍이 부처님법(진리)을 위해 일한 적이 없다. 이제사 비로소 부처님법을 위해 쓰게 되었으니, 전혀 아까울 게 없다.”
이와 같이 생각한 뒤, 이윽고 전다라(旃陀羅: 도살자, 백정)를 불러, 자기 몸을 온통 칼질하여 심지로 만들고, 그 몸을 희고 고운 무명베로 잘 감싼 다음, 소유(酥油: 버터)를 흠뻑 부어 적시게 했다. 그리고는 한번에 불을 붙이니 온몸이 활활 타올랐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의 게송 한 구절을 얻어들었다.
또 어느 때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비둘기일 적에, 설산(雪山)에 살고 있었다. 한번은 큰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한 사람이 산길을 잃고 헤매다가 지쳐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추위와 굶주림이 한꺼번에 엄습하자, 목숨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워졌다. 비둘기가 이 사람을 발견하고는,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그 사람 주위에 쌓고 불을 구해다 모닥불을 피워 언 몸을 녹여 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불 속에 던져 굶주림을 달래는 공양이 되었다.
또 살바달왕(薩婆達王: 一切施王)은 적국에 멸망당하였는데, 몸만 겨우 도망쳐 나와 깊은 산 속에 숨었다. 한번은 먼 나라의 어떤 바라문이 다가와 자기한테 구걸하는데, 자신은 나라가 망하여 홀몸으로 도망해 숨은 처지라서, 일부러 먼 길을 힘들고 어렵게 찾아온 바라문한테 뭔가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몹시 안타깝고 미안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바라문한테 말했다.
“내가 살바달왕이오. 지금 새 왕이 사람들을 풀어 엄청난 현상금으로 나를 찾고 있는데, 내 몸을 갖다 바치면 큰 상금을 받을 것이오.”
그리고는 스스로 자기 몸을 묶어 새 왕한테 바치고 큰 재물을 얻게 하였다.
또 월광태자(月光太子)가 성밖에 나가 유람하는데, 어떤 문둥병 환자가 보더니만 수레를 가로막고 이렇게 아뢰었다.
“나는 몸이 중병에 걸려 괴로움과 고통으로 신음하며 번민하는데, 태자께서는 혼자 이렇게 호사롭게 유람하며 즐긴단 말이오? 부디 대자비로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제 병을 치료하고 살려주십시오.”
태자가 이 말을 듣고 의사들한테 치료법을 물었다. 그러자 의사가 이렇게 답했다.
“모름지기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한번도 성낸 적이 없는 사람의 피와 골수(骨髓)를 환부에 바르고 마셔야만 비로소 나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태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설령 이런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목숨을 아끼고 장수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인데, 누구한테서 이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내 자신을 제외하고는 얻을 데가 결코 없으리라.”
그리고는 즉시 전다라(旃陀羅: 백정)를 불러, 자기 몸의 살을 발라낸 뒤 뼈를 부수고 골수를 꺼내, 문둥병 환자한테 발라 주고 자기 피를 마시도록 하였다.
이상의 네 고사(故事)는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단(檀: 보시)바라밀을 해설하면서, 금은보화와 나라 및 처자 같은 자기 몸밖의 물건을 베푸는 외보시(外布施)와 함께, 눈․머리․피․골수․뇌와 자기 몸의 일부나 심지어 목숨 자체까지 기꺼이 바치는 내보시(內布施)의 실례로 소개한 내용들이다. 요즘은 과학과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헌혈과 수혈을 비롯하여, 콩팥․간․눈․골수, 심지어 생명의 원천인 염통까지 이식 수술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살아서 자기 몸의 일부를 나눠주는 대보살들도 많고, 불의의 사고로 죽게될 때 자신의 장기를 필요한 사람들한테 기증한다고 약속하는 보살들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현대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전생인연담에 나오는 보살행들이 더 이상 공상소설 속의 허구로 냉소 당하지 않고, 어엿한 진실로 분명히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찬제선인(羼提仙人: 忍辱仙人)이 큰 숲에서 인욕과 자비의 수행을 하고 있을 때, 가리왕(迦利王)이 뭇 시녀들을 데리고 그 숲 속에 들어와 즐겁게 노닐었다. 먹고 마시고 흥겹게 노래하는 잔치 판이 끝나자, 왕은 피곤하여 잠시 눈을 붙이고 휴식에 들어갔다. 그 사이 시녀들은 꽃을 따러 숲 속을 거닐다가 이 선인을 발견하고는, 깍듯이 공경스런 예배를 올린 뒤 한쪽에 비켜섰다. 이에 선인은 뭇 시녀들한테 인욕과 자비를 찬탄하는 법문을 설하였다. 그 설법이 얼마나 아름답고 미묘했던지, 듣던 시녀들은 조금도 싫증이 나지 않아 오랫동안 자리를 뜰 줄 모르고 경청했다.
한편 낮잠에서 깨어난 가리왕은 시녀들이 보이지 않자, 칼을 빼 들고 발자국을 뒤쫓아 찾아 나섰다. 마침내 선인 앞에 서 있는 시녀들을 발견하자, 왕은 교만과 질투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성난 눈을 부릅뜨고 칼을 시퍼렇게 휘두르며 선인한테 물었다.
“너는 어떤 물건이냐?”
선인이 대답했다.
“나는 지금 여기서 인욕과 자비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왕이 말했다.
“내가 이제 너를 시험해 보겠다. 날카로운 칼로 너의 귀와 코를 베고 너의 팔다리를 자르리라. 만약 그래도 성내지 않는다면, 네가 인욕을 수행하는 줄 알겠다.”
선인이 말했다.
“마음대로 해보시오.”
왕은 즉시 칼을 빼어 그 귀와 코를 베고 그 팔다리를 자른 뒤 물었다.
“네 마음이 움직이냐, 안 움직이냐?”
선인이 답했다.
“나는 자비와 인욕을 수행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왕이 말했다.
“너는 홀로 여기에 있어 아무 세력도 없으니, (나한테 당해도 별 수 없지 않은가?) 비록 입으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누가 그 말을 믿는단 말이냐?”
이때 선인은 즉시 서원을 말하였다.
“내가 진실로 자비와 인욕을 수행한다면, 이 피가 젖으로 변하리라!”
말이 떨어지자마자 피는 곧장 젖으로 변했다. 왕은 크게 놀라면서도 기뻐하며 시녀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이때 숲 속의 용왕신이 이 선인을 위해 뇌성병력을 크게 쳤다. 왕은 그 뇌성벽력을 맞아, 궁궐도 돌아가지 못하고 죽었다.
이는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羼提(인욕)바라밀을 해설하면서 비유로 든 실례다. 수행자는 항상 자비심을 닦아 행하므로, 비록 자기 몸을 몹시 귀찮게 괴롭히고 들들 볶더라도 반드시 참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고사는 금강경에서도 부처님께서 “내가 옛날에 가리왕한테 몸이 베이고 잘렸는데, 나는 그때 아상(我相)도 없고 인상(人相)도 없고 중생상(衆生相)도 없고 수자상(壽者相)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옛날 팔다리가 도막도막 잘릴 때, 만약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더라면, 당연히 성내고 원한을 품었을 것이다. (그와 같이 나는) 과거 전생에 5백 생 동안 인욕선인이 되었었다.”고 친히 설하신 바 있다. 신라 때 이차돈 보살님께서 불교공인을 위해 순교하실 적에 흘렸다는 흰 피도, 아마 보살서원으로 붉은 피가 흰 젖으로 변한 게 아니었을까?
바라내국(波羅奈國)의 범마달왕(梵摩達王)이 숲 속에서 사냥을 즐기곤 했다. 그 숲 속에는 두 떼의 사슴 무리가 있었는데, 각 무리마다 한 마리의 사슴왕이 있었고, 각각 500마리씩의 사슴 떼를 거느렸다. 한 사슴왕은 몸이 칠보빛(七寶色)이었는데 석가모니 보살이었고, 다른 사슴왕은 제바달다였다. 보살인 사슴왕은 사람왕이 이끄는 사냥대중이 자기 사슴 떼를 쏘아 죽이는 걸 보고는, 대비심이 일어 곧장 사람왕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사람왕의 사냥대중은 앞을 다투어 사격하여, 사슴왕한테 날아드는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사람왕은 이 사슴이 거리낌 없이 곧장 돌진해 오는 것을 보고는, 뭇 시종들한테 활을 거두어 다가오는 사슴을 안전하게 맞이하라고 분부했다. 사슴왕이 사람왕 앞에 당도하자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임금께서는 놀이와 재미 삼아 하시는 사소한 일이지만, 우리 사슴 떼는 사람들 때문에 한꺼번에 떼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만약 수라상의 공양 때문이라면, 저희들이 스스로 차례를 정해 하루에 한 마리씩 사슴을 보내 임금님의 주방에 공양 올리겠습니다.”
사람왕은 사슴왕의 말을 가상히 여겨, 그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이에 두 사슴무리의 왕은 모든 사슴을 불러 모아 차례를 정하고, 각각 하루씩 당번으로 희생하기로 정했다.
그런데 제바달다 사슴무리 중에 새끼를 밴 암사슴이 한 마리 있었는데, 새끼를 낳기 전에 자기 차례가 닥치자, 자기 왕한테 가서 아뢰었다.
“제 몸이 오늘 마땅히 임금 주방에 가서 죽어야 하건만, 저는 지금 새끼를 밴 몸인데, 제 새끼 차례는 아니지 않습니까? 다소 간 융통하사, 죽을 몸 차례 좀 늦추고, 살아야 할 새끼가 억울하지 않도록 보살펴 주시길 엎드려 비옵니다.”
그 사슴왕(제바달다)은 버럭 화를 내며 대꾸했다.
“누군들 목숨이 아깝지 않겠느냐? 차례가 되면 그냥 갈 일이지, 무슨 잔말이 그리 많으냐?”
어미사슴은 생각했다.
“우리 왕은 어질지 못하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용서(恕)도 없어서, 내 말을 살피지도 않고 버럭 화만 내니, 더 이상 말할 게 없구나.”
그리고는 곧장 보살왕(석가모니)한테 찾아가서 사실대로 모두 아뢰었다. 그러자 사슴왕이 어미사슴한테 물었다.
“너희 왕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던?”
어미사슴이 대답했다.
“저희 왕은 어질지 못하여 융통성 있는 배려도 안하고 버럭 화만 내십니다. 대왕께서는 인자하심이 일체 만물에 미치는지라, 그래서 이렇게 찾아와 목숨을 의지하는 바입니다. 비록 세상 천지가 무지 광활하지만, 저는 오늘 어디다 하소연할 곳도 없습니다.”
보살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거 참 딱하고 불쌍하게 되었구나! 만약 나까지 배려해주지 않는다면, 무고한 새끼까지 억울하게 죽일 것이고; 그렇다고 차례가 안된 자를 새로 차출하자니, 과연 누구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오직 나 스스로 대신하여야 하리로다.”
생각 끝에 마음이 정해지자, 사슴왕은 어미사슴한테 “내가 오늘 네 대신 갈 테니, 너는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거라”고 말한 뒤, 스스로 발길을 옮겼다. 사슴왕이 사람왕의 문 앞에 당도하자, 많은 사람들은 사슴왕이 스스로 온 걸 보고, 괴이하게 여겨 임금님께 그 사실을 아뢰었다. 임금님 또한 괴이하게 여기고 사슴왕을 불러 물었다.
“모든 사슴 떼가 다 죽었단 말인가? 어찌하여 그대가 왔는가?”
사슴왕이 아뢰었다.
“대왕의 인자하심은 저희 사슴 떼한테까지 은혜를 베푸사, 저희를 침범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거늘, 오직 무성하게 번식할 뿐, 어찌 씨가 마를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 다른 사슴 떼 중에 한 어미 사슴이 새끼를 배었는데, 곧 새끼 낳을 때를 앞두고 자기 차례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죽어 배가 갈리면 새끼 또한 죽을 운명인지라, 저한테 찾아와 하소연 하길래, 듣고 보니 가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차례도 안된 사슴을 새로 차출하자니, 이 또한 안될 일이고; 만약 어미사슴을 구하지 않고 그냥 푸줏간으로 보낸다면, 목석과 다를 게 뭐겠습니까? 이 몸도 어차피 머지않아 틀림없이 죽을 운명인데, 곤궁에 처한 어미사슴을 자비롭게 구해준다면, 공덕이 한량없이 클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자비롭지 못한다면, 호랑이나 이리 떼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사람왕은 사슴왕의 말을 다 듣더니만,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게송을 읊었다.
“나는 참으로 축생이니/ 사람 머리를 가진 사슴이라 부르고;
그대는 비록 사슴 몸일지라/ 사슴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 부르리.
진리(윤리)를 가지고 말할 것이지/ 모습으로 사람이 되는 건 아닐세.
만약 자비와 은혜를 가진다면/ 비록 짐승이라도 실은 사람이리.
나는 오늘 이 순간부터 앞으로/ 어떠한 고기도 결코 먹지 않으리.
내 두려움 없음(無畏)을 베푸노니/ 이제 그대들 마음 편히 살지어다.”
이렇게 하여 사슴들은 평안을 얻었고, 임금님은 인자함과 믿음을 얻었다.
이는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비리야(精進)바라밀을 해설하면서, 부처님 법(진리)을 얻기 위해 온갖 수고와 험난을 마다하지 않고, 온갖 공양과 희생 심지어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끝내 이루어 내는 신정진(身精進)과, 진리를 구하고 선정과 지혜를 수행함에 추호도 의심하거나 후회하거나 게으름 피우는 마음을 내지 않고 끊임없이 지칠 줄 모르는 항상심(恒常心)으로 매진하는 심정진(心精進)으로 양분하고, 그 구체 실례로 든 부처님 전생인연담이다.
사슴왕의 어진 마음과 언행으로 뭇 사슴 떼의 생명이 남살(濫殺)을 면했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권력을 지닌 인간왕이 육식을 끊고 생명을 보호하게 되었으니, “한 사람한테 경사가 있으면 억조 창생이 혜택을 입는다.(一人有慶, 兆民賴之)”는 서경(書經)의 격언이, 바로 대승보살행을 찬탄하는 진리인 줄 알겠다.
한편 춘추 좌전(左傳)과 안자춘추(晏子春秋)에는 이와 비슷한 안자(顔子)의 어진 보살행이 나온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을 보필한 안자는 검소하기로 유명한데, 군주가 거듭 강권해도 시장 부근의 누추한 거처를 계속 고집하였다. 그래서 한번은 경공이 시장 가까이 사니까 물건가격의 귀천을 알겠다고 조롱 섞인 말문을 열자, 안자는 어찌 모를 수 있겠느냐고 답했다. 이에 경공이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천하냐고 묻자, 이에 안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보통사람이 신는 신발은 싼데, 발뒤꿈치 잘린 죄인이 신는 신발은 몹시 비쌉니다.”고 답하였다. 당시 제나라 형벌이 무척 번다(煩多)하고 무거움을 은근히 풍자하여 우회로 간언한 것이다. 경공이 안자의 말뜻을 알아듣고 형벌을 크게 줄였는데, 이에 대해 당시 사관(史官)은 “어진 사람(仁人)의 말은 그 이로움이 진실로 크도다. 안자의 말 한마디에 제 경공이 형벌을 줄였구나!” 라고 칭송한다.(左傳, 昭公 3年 및 晏子春秋, 內篇雜下) 인민을 긍휼히 여기는 인서(仁恕)의 마음이 형정(刑政)을 통해 죄수들을 이롭게 하는 흠휼(欽恤)정신으로 표출한 것이다.
또 안자는 제 경공이 동식물로 인하여 인민을 처형하려고 한 비인도적 분노를 여러 차례 식힌 적이 있다. 한번은 경공이 새를 사냥하는데, 야인(野人)이 모르고 새를 놀라게 해 날아가자, 그를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안자는 사람을 봉양하기 위한 금수로 말미암아 인간을 죽이는 일은 본말이 뒤바뀐 불인(不仁)이라고 간하여, 그를 구했다. 또 경공의 애마(愛馬)가 관리 소홀로 죽자, 경공이 마부를 능지처사(刀解; 支解)하도록 명하니, 안자는 일부러 경공이 듣는 앞에서 마부의 죽을 죄(死罪)를 셋이나 열거하며 맞장구쳤다. 그 중에서 특히 군주로 하여금 말 한 마리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하는 불인(不仁)을 범하도록 한 죄가 사형에 해당한다고 말하자, 경공이 알아듣고 깨우쳤다. 그런가 하면 경공이 사랑하는 괴수(槐樹)를 침범하면 처벌하고 손상시키면 사형에 처한다는 금령이 있었는데, 이를 모르고 술에 취한 사람이 범하자, 경공이 그 사람을 처형하라고 명했다. 이때 안자는 짐승이나 초목 때문에 인민을 해치는 것은 현명한 군주가 아니라고 하소연하는 범인 아내의 구원요청을 받고, 경공에게 간언하여 그 금령을 해제시키기도 하였다.(晏子春秋, 內篇諫上下)
군주의 절대 권력이 개인의 향락이나 감정의 사치로 치우치면, 자칫 애완동물이나 관상물의 과잉 보호를 위해 인민의 생명조차 가벼이 여기는 무지몽매한 짓이 곧잘 저질러졌다. 다행히도 경공의 불인(不仁)은 안자의 지혜와 충간에 힘입어 포학무도로 번지지는 않은 것이다.
애법범지(愛法梵志)는 12세 때 거룩한 가르침(聖法)을 구하러 온 염부제(閻浮提)를 두루 돌아다녔으나 구할 수가 없었다. 그 시대에는 부처님도 안 계셨고, 부처님법도 다 사라졌다. 그 때 한 바라문이 말했다.
“나한테 거룩한 가르침 한 구절이 있는데, 만약 그대가 진실로 진리를 사랑한다(愛法)면, 내 그대한테 알려주리라!”
애법범지가 “진실로 진리를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자, 바라문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진실로 진리를 사랑한다면, 그대의 살갗을 벗겨 종이를 삼고, 그대의 뼈를 붓(펜)으로 삼아, 그대의 피로 글을 쓸지어다. 그러면 그대한테 일러주리라.”
이에 애법범지는 망설임 없이 곧장 그의 말대로 뼈를 쪼개고 살갗을 벗겨 그가 알려주는 게송을 피로 받아썼다.
“진리라면 마땅히 수행할 것이오, 如法應修行
진리가 아니라면 받지도 말아야 할지니, 非法不應受
금생이건 내생이건 간에 今世乃後世
진리를 수행하는 자는 항상 평안하리.” 行法者安隱
이도 대지도론에서 정진바라밀 해설에 인용한 사례인데,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보현보살의 십대행원(十大行願) 중 여덟째 ‘상수불학(常隨佛學)’편에도 비슷한 내용이 보인다.
“항상 부처님을 본받고 배운다 함은 이러하다네. 이 사바세계에 비로자나 여래께서 처음 (진리를 구하겠다고) 발심한 이래 물러섬 없이 정진하시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고 또 말할 수 없는 목숨을 기꺼이 보시하시고, 살갗을 벗겨 종이를 삼고 뼈를 쪼개 붓을 만들고 피를 흘려 먹물을 삼아 쓰신 경전만도 수미산처럼 쌓였으니, 진리를 소중히 여긴 까닭에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네.(以不可說不可說身命而爲布施, 剝皮爲紙, 析骨爲筆, 刺血爲墨, 書寫經典, 積如須彌, 爲重法故, 不惜身命.) 하물며 임금자리나 성곽․취락․궁전․정원 따위의 소유물이 아깝겠는가? 온갖 험난하고 고통스런 수행 끝에 보리수 아래서 대보리를 이루시어, 온갖 신통을 보이시고 온갖 변화를 부리시며, 온갖 부처님의 모습으로 온갖 중생들이 모인 도량에 나토시어 … 천둥 같이 우렁찬 원만한 소리로 중생들의 소원과 취향에 따라 각각 성숙시킨 다음, 마침내 열반에 드는 모습을 보이셨네. 이와 같은 일체의 수행을 나도 모두 본받아 배우리.”
또 옛날에 어떤 야산에 불이 나서 수풀이 온통 타는데, 숲 속에 살던 꿩 한 마리가 큰 산불을 끄려고, 부지런히 힘을 다해 냇물 속에 날아 들어가 깃털에 물을 흠뻑 적신 다음 불타는 수풀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허나 불길은 크고 물방울은 적어, 간에 기별도 안가는 조족지혈이었다. 꿩은 시내와 불길위로 번갈아 왔다 갔다 하느라 몹시 피곤했지만, 조금도 지치거나 괴로운 빛이 없었다. 이때 천제석(天帝釋)이 내려와서 꿩한테 물었다.
“자네 지금 뭐하는가?”
꿩이 답했다.
“나는 지금 이 숲을 구하고 있소. 중생들이 가엾고 불쌍해서! 이 숲은 잘 우거지고 비옥하며 서늘하고 상쾌하여, 우리 여러 새들과 수많은 다른 중생들이 다함께 깃들어 살아가고 있소. 나한테 몸이 있고 힘이 있는데, 어떻게 남의 집 불난 듯 멀뚱멀뚱 구경만 하고 구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러자 천제가 물었다.
“그대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부지런히 수고할 생각이오?”
꿩이 답했다.
“지쳐 죽을 때까지!”
천제가 다시 물었다.
“그대 마음이 비록 그렇게 장하지만, 누가 알아주고 증명할 것이오?”
이에 꿩은 곧장 스스로 서원을 세웠다.
“제 마음이 지극히 정성스럽고 진실하여 헛되지 않다면, 불길은 즉각 꺼질지어다!”
이때 정거천(淨居天)이 보살(꿩)의 커다란 서원을 알고 즉시 비를 뿌려 산불을 꺼 버렸다. 그리하여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오직 이 숲만큼은 항상 울창하게 무성하며, 다시는 불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성어인 우공이산(愚公移山)을 떠올리는 이 내용도, 대지도론에서 정진바라밀을 해설하며 인용한 고사다. 전북 임실군 오수에 가면 의견비(義犬碑)가 있는데, 주인이 술에 취해 들에 쓰러져 잠든 사이 불이 나자, 주인을 따르던 개가 주인을 구하기 위해 냇물에 몸을 담가 주인 잠자리 주위를 둥그렇게 적셔 놓은 뒤, 자기는 기진맥진했는지 불길에 탔는지 끝내 죽었다는 사연이 전해 온다. 꿩과 같은 보살행이 아닐 수 없다. 예로부터 국가(군주)나 주인한테 충성을 다하는 걸 견마지로(犬馬之勞)라고 표현해 왔는데, 육도 윤회하는 중생계에서 전생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축생으로 생겨나 사역 당하고 희생당하는 현실이 많겠지만, 보살의 원력으로 중생들한테 보시․인욕․정진하기 위해 수행하는 짐승도 적지 않으리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전생에 사슴일 적에, 숲에 불이 나서 삼면이 불길에 휩싸이고 한 면은 냇물에 가로막혀, 그 안에 있던 짐승들이 도망갈 구멍 없이 꼼짝없이 죄다 타죽을 운명이었다. 이때 사슴이 냇물에 들어가 자기 몸을 가로로 길게 다리 놓고, 다른 짐승들한테 피난하라고 외쳤다. 그래서 불길에 갇힌 짐승들이 하나씩 사슴의 등과 머리를 밟고 물을 건너 피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끼 한 마리가 사슴의 등을 밟고 건너자마자, 사슴은 기진맥진하여 등이 부러지면서 물에 빠져 죽었다. 그때 마지막 물을 건넌 토끼가, 현생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친견하고 설법을 들어 그 자리에서 아라한도를 얻은 뒤, 부처님보다 먼저 스스로 열반에 들었다는 120세의 제자 수발타라(須跋陀羅)라고 한다.
일찍이 공자께서도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자기) 삶을 위해 남(또는 어짊)을 해치는 법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을 희생하여 어짊을 이룸이 있다.(志士仁人, 無求生而害仁(人), 有殺身而成仁.)”고 말씀하셨다. 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고 말씀하셨다. 부처님법을 배우고 닦아 실천하면서 자기의 생명까지 기꺼이 바치는 대승 보살의 자비심 그대로다.
비록 부처님법을 널리 전한다는 미명 아래 옮겨 소개하는 글이지만, 스스로 진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겠다는 서원을 다짐하기는커녕, 아직까지 남을 위해 지폐 한 장도 선뜻 희사하지 못하는 간탐심(慳貪心)에 찌들어 있는 한낱 범부중생으로서, 이 글을 쓰기가 무척이나 부끄럽고 쑥스러워 망설여야만 했다. 경전을 혼자 봉독할 때 감동이 커서 인연 따라 알리고 싶은 마음은 내었지만, 막상 옮기려 하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실행이 따르지 않는 앵무새 지껄임이 경전의 감동을 얼마나 생생히 전달할 수 있을지, 자못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청화 큰스님께서 간곡히 부촉하시고 휘호(揮毫)로도 주셨다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경책이 항상 새롭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주1) 밭다: (자) 액체가 바싹 졸아서 말라붙다. (타) 건더기와 액체가 섞여 있는 것을 체 같은 데 따라서 액체만을 따로 받아 내다. (고어) 밭이다, 거르다.
*이 글은 계간 불교잡지 ?光輪?, 2004년 가을호(통권 제11호)와 겨울호(통권 제12호)에 걸쳐 두 차례 연재한 원고를 조금 손질하고 보충한 것이다. |
개미보살과 모기보살, 그리고 돼지보살 (0) | 2022.12.27 |
---|---|
조고각하 개미보살(照顧脚下螞蟻菩薩) (0) | 2022.12.27 |
헌혈공양 모기보살(獻血供養蚊子菩薩) (1) | 2022.12.27 |
뱀과 먹이사슬 (0) | 2022.12.27 |
수행과 건강 (1) | 2022.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