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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공양 모기보살(獻血供養蚊子菩薩)

운명을 뛰어 넘는 길. 채식명상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2. 2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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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공양 모기보살(獻血供養蚊子菩薩)

 

2005 11 6() 정오와 자정에 두 차례 모기보살한테 헌혈(獻血)공양을 올리다. 늦게사 지장경 독송하는, 염라왕중찬탄품을 막 시작한 직후 정오가 막 되는 시각에, 배고픈 모기 한 마리가 날아왔다. 겁도 없이 옷소매를 조금 걷어 올린 내 오른팔 아래쪽으로 내려앉아 자리잡더니, 입 주둥이 침을 살며시 꽂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독송을 멈추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얼마나 굶주렸으면 한낮에 날아와 두 눈으로 주시하여 지켜보는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침을 꽂아 깊게 얕게 좌우로 쑤셔 보며 내 피를 빨아들이고 있다.

3분 남짓은 됐을까? 배가 찼는지 침을 빼 거두고 날아가려고 하기에, 두루마기 화장지 가운데 둥근 원통형 공간의 한쪽 면을 왼손바닥으로 막고 다른 쪽으로 덮어 가두려는데, 간발 차이로 먼저 날아가 바로 왼쪽 옆 문설주에 앉는다. 살펴보니 아닌 게 아니라 배아지가 빨아들인 붉은 피로 풍선처럼 빵빵히 부풀어 올랐다. 놓칠 새라 바로 화장지 중심공간으로 조심스레 덮쳤는데, 배가 불러 몸놀림에 둔해진 탓인지 재빨리 날아 도망하지 못하여, 이내 가두는 데 성공하였다. 곧 종이를 밑바닥에 밀어 넣어 들어올린 뒤, 베란다로 나아가 철망창(紗窓)을 열고 바깥 허공을 향해 모기 갇힌 화장지 든 손을 쭉 내밀어 종이와 손바닥을 모두 떼어 방생하니, 비 온 뒤 구름 낀 허공으로 부리나케 날아 멀리 사라진다. 첫 번째 헌혈공양이다.

다시 밤늦게 이 글을 노트북으로 타자 정리하는데, 자정이 넘어 3(45)이 지난 시각에, 또 언제 어디로 들어온 모기인지 한 마리가 나타나, 아까부터 계속 내 주위를 맴돌며 피 빨아먹으려고 왱왱 날개버둥 친다. 마침내 타자하고 있는 내 오른 손 등 한가운데 사뿐히 내려앉기에, 왼손으로만 점타 하며 오른손은 멈추고 지켜보니, 역시 주둥이 침을 사뿐히 꽂고 피를 빨기 시작한다. 1-2분가량 바라보다가 종이컵으로 살포시 덮어 창 밖으로 날려 보내다. 두 번째 헌혈공양 후 방생하다.

성성적적히 깨어 관조하는 자비마음으로 굶주린 모기보살의 피 동냥 양식구걸에 담담히 헌혈공양의 보시바라밀을 처음으로 이루다. 지금까지 헌혈 한번 못했는데, 첫 헌혈이다. 물론 태어나서 지금까지 모기들한테 숱하게 피 도둑질은 당해 왔지만, 이번에는 도혈(盜血) 당하지 않고 헌혈공양을 이룬 셈이다. 자발로 선선히 주는 보시와 마지못해 빼앗기는 피탈(被奪), 잃는 건 같지만 잃는 의미와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리라.

사실 사람이 피 좀 덜어 나눠주는 거야 아깝지 않지만, 모기가 다른 동물 피를 빨다가 병균이나 세균에 감염 당한 경우, 질병을 전염시킬 수 있기에 그게 가장 염려스러울 뿐이다. 실제로 요즘 농촌 지역에 각종 가축사육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면서, 온갖 악취와 수토오염이 극심해지고, 특히 모기들의 흡혈을 통해 온갖 부작용과 질병이 범람한다고 한다.

우리 인간이 각종 건강검진 시 주사기로 뽑는 피의 양이면, 얼마나 많은 모기들한테 양식공양을 베풀 수 있을? 그런데 우리 사람이란 자기 돈 물 쓰듯이 흥청망청 사치 낭비하기는 쉬워도, 남한테 심지어 동냥 구걸하는 거지한테조차 돈 한푼 나눠주어 적선하기는 무지 어려운 법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건강 점검하기 위해 피검사하는 데는 주사기 두어 개를 가득 뽑아도 아까워하지 않고 기꺼이 참으면서, 목숨 부지하고 자식 낳아 대를 이으려고 일용할 양식으로 구걸하는 모기들한테는, 바늘 끝 적실 만큼의 피조차 아까워 주지 못하고, 마치 자기 목숨 노리는 적을 대하듯 살기등등하게 때려잡으려 혈안이 되곤 한다.

내 피 빨아먹은 모기는 도저히 용서 못해!

사람 피와 키스한 죄목으로, 기수와 미수와 예비음모를 막론하고, 기꺼이 사형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조물주께서 부여하신 자기보존 및 종족보존 본능의 자연법을 준행(遵行)하는 모기보살의 운명이요 신세인 셈이다. 냉혹한 자연계의 먹이사슬과 인과법칙을 누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으랴?!

참 희한한 일은, 모기 입의 침()이 얼마나 여리고 가늘며 약한가? 그런데 또 모기 입의 힘(압착력과 흡인력)이 얼마나 크길래, 그 침을 사람의 살갗이나 동물의 두껍고 칙칙한 가죽까지 뚫고 박아 피를 뽑아 올린단 말인? 이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로운 자연의 조화인가? 노자(老子)에 보면 부드럽고 약한 게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柔弱勝剛强)는 유명한 명제가 나온다. 마치 물이 돌과 쇠를 갈고 뚫듯이! 또 장자(莊子)에 보면, 포정(庖丁)이 칼 하나로 숫돌에 한번 갈아 19년간 소를 잡았어도, 날이 전혀 무뎌지지 않고 방금 숫돌에 간 것처럼 날카로움을 줄곧 유지했다는 고사가 나온다. 두께가 없는 칼날로 크게 훤히 뚫린 근골(筋骨) 사이와 살결 사이를 사뿐히 지나다니기에, 힘도 전혀 들지 않고 날도 전혀 닳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모기가 주둥이 침으로 다른 동물의 굳고 두꺼운 살갗을 뚫고 피를 빠는 이치도 바로 그러하리라.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신비 그 자체다. 중국속담에 사람의 셈이 하늘의 셈만큼 정교하지 못하다.(人算不如天算巧.)고 하던데, 정말로 사람의 생각이 하늘의 섭리만큼 정밀하지 못하구나.(人思不如天理精.)

허지만 헌혈공양도 어쩌다 큰 맘 먹고 자각해서 실험 삼아 한두 번 지켜본 것뿐이다. 우리 범부중생한테 일상수행으로는 너무도 귀찮고 괴로운 번뇌다. 진정 대승보살이거나 아니면 아주 순박하고 우직하며 선량한 원시인 정도나 가능한 경지가 아닐까? 하여 나는 지금도 여름밤엔 물론, 심지어 겨울조차도 모기가 나타난 낌새가 있으면 곧장 모기장을 치고 잠잔다. 모기의 안면방해와 도혈(盜血) 혐의에 대해 무의식적인 살생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참변을 예방하고 자비심을 잃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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