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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건강

운명을 뛰어 넘는 길. 채식명상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2. 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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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허약한 체질로 태어나 선천이 부족(先天不足)한 필자는, 가난한 살림에 못 먹고 나중엔 공부한다고 진도 빼면서, 게다가 죄업까지 많이 지어 몸 건사를 잘못해 후천실조(後天失調)한 탓으로, 건강을 잃고 한때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었다. 그래도 죽기는 싫어서 어떻게든 건강을 되찾아 살려고 무진 애를 쓰면서, 운명처럼 마침내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그런 연유로 누구 못지않게 곧잘 건강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곤 하는 필자는, 건강(健康) 씩씩할 건()자 하면 두 경전의 구절이 생각난다.

그 하나는, “하늘(자연)의 운행은 씩씩하여, 군자는 이를 본받아 쉼 없이 스스로 자아를 강화한다.(天行健, 君子以自彊不息)는 주역 건괘(乾卦)의 구절이다. 하늘을 상징하는 이 본디 씩씩할 건()의 뜻으로 정의되는데, 천체의 운행은 씩씩하고 건강해서 지치거나 몸져누울 줄 모르고, 늘 일정한 궤도로 오차 없이 정확히 운행한다. 그래서 대자연은 늘 생기발랄한 건강미가 넘친다. 심지어 조락의 계절 가을이나 겨울조차도 씩씩하고 늠름하다. 옛부터 군자는 대자연의 섭리()를 터득하여 삶을 거기에 조화일치시켜 왔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지향하는 유교와 도교의 수양은 바로 대자연(하늘)의 씩씩한 생명의 이치를 깨닫고 생명의 기운 호연정기를 함양하는 삶이다. 쉴 새 없이 부지런히 자기 몸과 마음을 살피고 닦아야 한다. 물도 고이면 썩듯이,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듯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자강활동이 수양의 본래면목이다. 다만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의 조화를 이루면서!

다른 하나는, “세상에는 두 부류 건아(健兒)가 있으니, 하나는 아예 죄를 짓지 않는 자고, 또 하나는 죄를 짓고서 뉘우쳐 고치는 자다.”는 부처님(佛說佛名經) 말씀이다.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떳떳하고 당당하여 몸도 씩씩하고 건강하다. 허나 오탁악세 사바고해에서 누가 전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으랴? 다만 얼른 죄를 알아차리고 참회하면 마음의 평화와 정신의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 모든 종교철학에서 참회와 개과천선이 기본 가르침임은 너무도 자명하다.

수행이란 무엇인가? 바로 빛이요 생명인 진리의 ()을 닦아() 걸어가는() 것이다. 그럼 왜 수행하는가? 질병과 죽음, 죽음과 어둠, 더러움과 괴로움 따위를 겪으며 인생무상을 느끼고, 영원한 생명과 무량한 광명, 지극한 안락, 우주의 평화, 청정한 행복(常樂我淨)에 이르기 위해 수행을 한다. 바로 완전한 건강을 위해서가 아닌가?!

일반인은 육신 건강만 알고 마음정신 건강은 몰라, 온갖 그릇된 식도락과 약물남용에 빠져 악업을 짓고, 결국 몸의 건강과 생명까지 잃고 마는 경우가 많다. 또 많은 수행인은 심신(心神)의 잘못으로 육신의 건강을 잃은 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수행의 길로 접어든다. 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잘못된 식습관부터 고치고, 운동도 하고 단전호흡이나 절도 하면서 체력을 회복하지만, 참회나 염불독경기도참선 같은 마음수행으로 직접 입문하기도 한다. 물론 일체유심조이므로, 마음이 건강하면 몸도 건강할 것은 자명하다. 모든 질병은 악업으로부터 비롯하고, 악업은 나쁜 생각에서 싹튼다. 반면 바른 마음과 좋은 생각은 선신(善神)과 정기(正氣)를 불러 모으고 몸을 건강하게 한다. 따라서 팔정도만 잘 닦으면 건강장수는 문제없다.

근데 색즉시공이고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마음과 인격 수양에 몸의 건강도 필수요건이다. 관념철학자들처럼 불교수행자가 자칫 잘못 빠지기 쉬운 함정이 편협한 일방통행 唯心이다. 마음 닦는 데만 외곬으로 빠져, ‘몸이 곧 법당이요 성전(聖殿)이라는 중요한 법문과 복음을 까맣게 잊곤 한다. 전통철학에서 강조하는 성명쌍수(性命雙修)는 복혜쌍수(福慧雙修) 못지않게 중요한 수행원칙이다. 대승의 공도리(空道理)에만 집착해 색신(色身)의 건강이나 복덕 짓기를 소승으로 폄하하면, 중도실상을 깨달아 리사무애(理事無礙)와 사사무애(事事無礙)를 이루기는, 외다리로 걷고 외날개로 날기만큼 어렵다. 오죽하면 부처님도 늙어서 수행하길 부서진 수레 끌기에 비유하셨을까?

몸을 단련하고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행으로는 오체투지 절이나 요가(아사나)나 등산이 좋고, 마음 수행에는 기도독경염불참선 등 온갖 법문이 널려 있다. 자기 근기와 적성형편에 따라 최적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사실 몸과 마음 수행은 동시에 이뤄지고, 궁극에는 하나로 합쳐진다. 하지만 처음에는 양자를 적절히 배합하여, 정공(靜功)과 동공(動功)의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호연정기 함양에는 맑은 공기 호흡도 참 중요하다. 사실 운동이 필요한 원인 중 하나도 맑은 공기를 흡입해 몸 안의 노폐물을 걸러내는 신진대사 촉진에 있다. 허파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므로, 운동으로 심호흡을 하거나 아예 단전호흡을 수련하기도 한다. 부처님께서 사람의 목숨이 숨 쉬는 사이에 있다고 답한 사문한테 도를 닦는 자라고 칭찬하셨듯이, 정말로 호흡에 도와 생명과 건강이 달려 있다.

또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청정한 채식과 계율이 아주 긴요하다. “벌기보다 쓰기를 잘해라는 속담이 있다. 돈뿐 아니라 건강도 그렇다. 아무리 몸에 좋은 보약을 많이 먹어도, 쏟고 탕진하면 헛것이다. 기도참선을 잘해서 정기가 충만하고 법력이 높아져도, 역시 쏟거나 탕진하면 그만이다. 더러 대승보살은 전법과 중생제도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기도 하지만, 온갖 마장의 유혹에 걸려 생명의 정기(精氣)를 낭비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요, 빈 냄비 불 달구기다.

 개처럼 벌고 정승처럼 써라.”는 속담도 있다. 음식은 깨끗하기만 하면 좀 거칠게 먹고(粗食; 疏食: 현미나 통밀, 채소류 등) 운동을 해서 체력을 건강하게 단련해서, 그 에너지를 정승처럼 우아하고 고상하며 중요한 일의 성취에 가치 있게 사용하라는 뜻이다. 수행도 마찬가지로 온갖 마장과 시련을 인욕과 겸허의 고행으로 극복하고, 그 공덕과 복혜와 법력을 시방법계 중생을 위해 회향하여 널리 베풀라는 뜻이겠다.

끝으로 명심할 가장 요긴한 건강수행법! 인연 따라 수시로 착한 짓 많이 해서 복덕 착실히 쌓는 일! 지금 받는 복은 과거에 지은 것. 앞으로 복 많이 받으려면 지금 많이 지어야 한다. 심지어 명당자리 얻는 인연도 선행으로 복 짓는 게 최고다.”고 한다.

전남대 부임한 지 2-3년 되어, 잘 아는 후배 아버님이 저를 불러 얘기하는데, 소장하고 있는 필사본 풍수지리 비서(秘書)를 한 권 보여주면서, 한문 좀 아니까 한글로 번역하면 인기 있어 잘 팔릴 거라고 권하셨다. 그래서 받아다 좀 살펴보니, 풍수 전문용어가 많은 데다가 한국식 한문이라 내가 손대려면 본격 달려들어 씨름해야 할 형편인데, 체력과 할 일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근데 책의 맨 뒷장 표지에 두 구절 열 글자의 한문(漢文)이 쓰여 있는데, 책 한권을 다 요약하고도 남을 압권(壓卷)의 명문이었다. 바로 내가 번역한 료범사훈의 핵심주제 그 자체였다. “如欲得吉地 莫若乎爲善 한글로 옮기면, “만약 길한 땅(명당자리)을 얻고자 한다면, 선을 행하는 것 만한 게 없다! 당대에 내놓으라고 쟁쟁하던 풍수전문가가 산천 혈맥을 다 짚은 다음, 한평생 경험지혜로 마지막 내린 총 결론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 구절을 보고 더 이상 책을 펼쳐 해석하느라 골치 아프게 매달릴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곧바로 책을 돌려 드렸다. 복덕이 두터운 분은 자연히 좋은 자리 들어갈 게고, 제아무리 명당이라도 복덕 없는 사람이 들어가면 암당(暗堂)이나 흉당(凶堂)이 되겠지.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듯이! 아참, 그 분은 3-4년 뒤 돌아가셨는데, 길한 자리에 들어가셨는지 모르겠다.

복덕뿐만 아니라 건강과 지혜를 증진시키고 궁극에 불도를 이루고 펼치는 일까지, 모두 복덕이 가장 중대한 밑천임을 명심하자! 지덕체(智德體) 삼위일체 수!

 

 

*이 글은 불광(佛光)” 2006 3월호(통권 제377) 130-134면에 실은 글을 바탕으로 보충하고 손질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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