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해인 기축년은 워낭소리와 함께 열렸다. 40년 동안 주인한테 뼈 빠지게 헌신하고 워낭만 남기고 떠난 소가 수백만 국민의 심금(心琴)을 울리고 있다. 작년에는 미친(美親) 소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광우병 위험 공방파동으로 장엄한 촛불시위가 전국에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번지더니, 올해는 사뭇 다른 영웅 소의 감동이 물밀 듯 넘친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던가? 그런데 요즘 같은 첨단 정보화시대에, “소는 죽어서 워낭과 감동을 남긴다”니! 믿기지 않을 소설 같은 영화다. 십수년전 정주영 현대회장이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방북했던 역사적 사건과는 좀 다르지만, 국민적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점은 비슷하기도 하다.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 글을 써서 발표한 뒤 늦게사 인연이 닿아 봄) 신문보도를 통해 소식과 사진을 접한 직감으로는, 영화감독보다 이 소가 아주 특별한 존재로 느껴진다. 물론 주인노인장과 인연을 통해서 말이다. 더러는 노인을 ‘성자(聖者)’처럼 부각시킨 평론도 보이지만, 나는 이 소가 환영(幻影: 영화 스크린)을 통해 “야이 소만도 못한 사람들아!”하고 우직하게 꾸짖는 듯한 현신설법(現身說法)을 듣는다. 워낭소리는 바로 이 말세의 사람들을 부드럽지만 매섭게 후려치는 채찍이며 경종처럼 느껴진다. 아울러 불현듯 2-3년 전 읽었던 중국 오대산 청량산지(淸凉山志)의 소가죽 북소리 인연담이 떠올랐다. 법애 스님이 소로 태어난(法愛變牛) 실화인데, 그 줄거리는 이렇다.
?당나라 때 북오대산(北臺) 뒤쪽 흑산사(黑山寺)에 법애스님은 20년간 감사(監寺)를 맡아 하면서, 초제(招提) 승물(僧物)로 남원(南原)의 밭을 널리 사들여 그 제자인 명회(明誨)한테 물려주고, 자신은 죽어서 그 밭 경작자 집에 소로 태어나 홀로 30년간이나 밭을 갈았다. 소가 늙어 병들자, 경작자는 소를 남한테 팔아 기름으로 바꾸려고 작정했다. 이날 밤 명회는 꿈에 선사(先師)스님이 울면서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승물(僧物)을 전용하여 너를 위해 밭을 사들인 죄업으로 지금 소가 되었는데, 이제 이미 늙고 쇠약하였으니, 원컨대 내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고, 북 위에 내 이름을 써서 건 다음, 예불하고 독경할 때마다 쳐서 울려 다오. 그러면 나는 고통에서 벗어날 기약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남원의 언덕이 푸른 바다가 될 때까지도 벗어날 기약이 없단다.”
말을 마치자 자기 몸을 들어 스스로 내던지는데, 이때 명회가 깜짝 놀라 깨어나 보니 바야흐로 한밤중이었다. 종을 울려 대중을 모은 다음 꿈 얘기를 다 들려주었다. 이튿날 경작자가 와서 소가 나무에 부딪쳐 죽었다고 보고하자, 명회는 꿈속의 스승 말대로 소의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고 그 위에 이름을 썼다. 그리고 곧장 남원의 밭을 다 팔아 받은 약간의 대금으로 오대산 스님들께 밥공양을 올렸다. 또 의발(衣鉢)을 다 기울여 선망 은사님을 위해 예불참회(禮懺)를 올리고, 나중에 그 북은 오대산 문수전(文殊殿)에 보냈는데, 세월이 오래 흘러 북이 닳아지자 절 주인이 다른 북으로 바꿨다. 근데 그 북이 사람가죽이라고 세간에 잘못 전(訛傳)해지고 있다.?
정말 소름이 끼치고 터럭이 쭈뼛이 서는 얘기다. 우리 전래동화나 민담에도 소가 된 게으름뱅이가 나오지만, 수행자의 본분에서 보면 중생한테 신세나 빚을 지면 소로 태어나 갚기도 하고, 동물가죽 제품을 쓰면 그 원한과 업장의 빚을 자신의 수행공덕으로 녹여 대신 보상할 만한 정성과 법력을 갖춰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과연 우리 불교의식의 사물(四物)은 온갖 중생의 제도를 염원하는 상징성이 크다. 소가죽으로 만든 북소리는 길짐승을 제도하고, 목어는 물고기를, 운판은 날짐승(새)을, 그리고 종소리는 지옥 중생을 각각 제도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소가 된 스님 인연담을 떠올리자 이런저런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독립영화로 보기 드물게 크게 성공한 ‘워낭소리’의 소가 각별한 의미로 떠올라 대비를 이룬다.
그 소는 40년이나 뼈 빠지게 고생하여 주인한테 충성하고도 전생의 빚을 다 못 갚았는지, 아니면 자기 시체를 먹지 않고 땅에 묻어 준 은덕에 보답하는 건지, 영화의 주인공으로 대박을 터트려 남들과 주인한테 큰돈과 명성을 안겨 주었다. 더구나 벌써 수백만 명의 사람들 심금을 울려 현신설법(現身說法)하였으니, 아마도 전생에 도를 깊이 닦은 고승대덕의 업보신(業報身)이거나, 아니면 대승보살이 원력으로 나톤 화신(化身)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환영(幻影)을 통해 그렇게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울릴 수 있을까?
그런데 지난 2월말쯤엔 내가 다니는 전남대 교수협의회에서 가죽가방을 기념품으로 전 교수한테 돌린 사연이 있어서, 또 한 가닥의 상념(想念)의 실마리가 베틀의 북처럼 내 마음속에 퍼뜩 교착(交錯)해 스친다. 나는 20년째 채식을 하면서, 대학 졸업 때 사촌 형님한테 선물로 받았던 가죽가방도 벌써 오래 전에 참회하며 불사른 기억이 아련한지라, 곧장 가죽가방을 사양한다는 짤막한 회신을 띄우고, 우편함에 꽂힌 가방을 보니 제법 근사한 제품인데 여직원한테 반송을 부탁했다.
왜냐하면, 내가 과연 소가죽으로 만들어졌을 가방을 받아 책을 담아 들고 다닐 만한 복덕이 되는지, 아무래도 시원찮고 자신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훌륭한 교수 분들은, 틀림없이 가죽가방에 고상한 진리의 책을 담아가지고 다니면서 넓고 깊게 진리를 탐구하고, 제 목숨을 희생하여 가죽을 제공해 준 소들의 영혼을 생각하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축원하여, 전생의 원한과 업장을 풀고 축생을 벗어나도록 천도해 주시리라 기대한다.
나도 그 가방에 경전을 담고 다니면서 매일 독송하여, 그 가죽을 남긴 소의 업장과 원한이 풀어지도록 회향 기도한다면, 그나마 소한테도 도움이 되고 내 수행에도 보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잖아도 복덕은 얇고 업장은 두텁고 무거워 낑낑대며 가까스로 살아가는 꼴에 언감생심(焉敢生心)이랴? 그렇다고 그 가방을 받아 복덕 많고 도력 높은 다른 분한테 전공(轉供)할만한 인연도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몇 년 전에도 어느 스님이 사주신 가죽가방을 되돌려 드린 적이 있었다.
전에는 탁상전등이나 등산배낭을 기념품으로 마련한 교수협의회가, 이번에 새삼 가죽가방을 준 인연도 자못 궁금하다. 회비를 매월 1-2천 원씩 올려 받고 경비를 절약해 기금이 넉넉해진 걸까? 아니면 불황으로 창고를 열어 대량으로 싸게 처분하는 절호의 기회를 만난 걸까? 그 많은 가죽이 전부 한우에서 벗긴 걸까? 수입품이라면 혹시 광우병 소가죽이 끼어, 광우병 전염가능성을 관찰하는 임상실험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닐까? 그 가죽의 업장을 다 풀어주지 못하면, 나도 죽어 소가 되는 건 아닐까? 아마도 몇천만원은 들였을 그 돈을 절약해서, 안팎으로 어려운 지역경제에 장학금이라도 보탰으면 차라리 더 낫지 않았을까?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극소수일지라도 개인의 개성과 기호가 최고 지성사회인 대학에서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서글픔이랄까? 물론 “모든 사람의 취향을 다 배려할 수는 없었습니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고 보내 온 당국자의 답신도 이미 충분히 정중하고 예의바른 지성이라서, 서운하거나 불만은 없지만! 3년 전 대만대학 학술대회 참석 시, 주최 측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매 끼니를, 그것도 회의 끝난 뒤 비공식 관광여행 때까지도, 겨우 한두 명에 지나지 않는 채식주의자를 위해 특별히 채식을 마련해 준 배려 깊은 문화다원주의를 몸소 체험한 나로서는,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무뚝뚝하고 획일적인 편의주의 의식행태가 못내 아쉬운 것이다. 그러고도 우리 대학이 떳떳하게 세계수준(World Class)을 내걸며, 명실상부하게 ‘공익인권 특성화’를 내세울 수 있을까? 게다가 한 대학의 교수 1천명이 모두 똑같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마치 예전에 중고등학생들이 한결같이 입고 다니던 새까만 제복을, 아니 군대 제복을 연상시키지는 않을까? 등교할 때 가방을 신분증처럼 감지하면 어떨까?
소의 해에 ‘워낭소리’와 소가죽가방을 인연으로, 소가 된 스님의 인연담까지 떠오르며 곰곰이 명상에 잠겨 본다. 과연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적 자각이 뚜렷하고 충직한 소를 수십 년씩이나 실컷 부려먹고, 그것도 모자라 잡아서 고기는 먹고 가죽은 가방이나 구두를 만들어 닳을 때까지 들거나 끌고 다닐 만한, 현격한 영적(靈的) 우월성과 인류 특유의 천부(天賦)적 자격을 저절로 지니는 걸까?
광우병이 괜히 생겼으랴? 그토록 순박하고 우직한 소가 미쳐 쓰러지는데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아직도 그저 지 몸과 지 새끼 건강 걱정밖에 못하는 치졸한 영성(靈性: 영악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른다. 소의 해에 우연찮게 벌어진 진리의 인연(法緣)이 자못 뜻깊은 사유거리로 떠올라, 자꾸만 둔감해지고 느슨해지는 내 심성을 아무래도 경책하는 것만 같다.
*이 글은 월간 佛光 09년 4월호에 게재한 원고의 줄이기 전 원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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