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말복이라고 고교 동창한테서 점심이나 먹자고 연락 왔다. 한 소식(消息) 했다는 친군데 사람 먹으라는 음식 가릴 게 뭐 있냐며, 내 채식을 답답한 얽매임으로 여기는 이른바 무애행자(無礙行者)다. 내가 서로 식성이 다르고, 자넨 복날 별미를 먹고 싶을 텐데, 같이 먹을 게 있겠냐고 물었더니, 너털웃음으로 나를 딱히 여기며 양해하여 끝났다.
22년전 대만에 유학 가서 채식 자조찬(自助餐)을 알았지만, 첨엔 자각이 없이 가끔 들르다가, 나중에 도량 들어가 기사회생의 수행길에 매진하면서 채식에 눈뜨니, 대만은 수행자의 공양천국 같았다. 근데 귀국하니 채식자의 지옥 같아, 20년간 몸과 정신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다행히 이상구박사가 속한 제7안식일교파와 칭하이 관음법문 수행모임이 지옥 속에 푸른 생명의 싹을 틔우기 시작해, 나도 두 분 강연에 직접 참관하기도 했다. 나는 처음부터 우리도 대만처럼 채식수행자가 어디 가든 마음 놓고 쉽게 밥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얼른 오길 간절히 염원했고, 한번은 청화스님을 친견하여 그 포부를 여쭈었더니, ‘아주 장하십니다.’ 고 흔쾌히 수희찬탄하며 호념(護念)해 주셨다.
문득 2000년 5월의 어느 화창한 봄날이 떠오른다. MBC의 TV 대학(특강)이 곡성군 옥과 성륜사(聖輪寺)에서 청화스님을 초청해 야단법석을 열었다. 당시 서울에 살던 나는 도반들과 함께 청화스님의 월례 정기법회에 참여하던 터라 내려와 참석했다. 잔디밭에 펼쳐진 야단법석에서 나는 앞자리에 앉은 인연으로 설법 뒤의 청중질문자로 뽑혀, MBC 제작자가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받아들었다. 나는 법문의 주제를 생각해 진작부터 마음에 품어왔던 ‘수행과 음식, 특히 수행에서 채식의 중요성’에 관해 질문하고 싶었다. 근데 MBC에 호의를 보이려는 주지스님이 거의 막무가내로 쪽지에 적힌 대로 외어 여쭈라고 강요하였다.
하는 수 없이 “현대에는 물질문명이 엄청 발달해 의식주 모두 풍족한데, 그에 반비례하여 정신은 황폐해져 가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라는 취지의 각본을 읊었다. 사실 그 내용은 법문에 이미 넉넉히 설해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청화스님은 각본에 쓰인 대로인 줄은 꿈에도 모르신 채, 내 질문을 듣고는 대뜸 “거사님은 제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셨군요.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 라고 답변을 죽 풀어 가셨다.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참으로 아둔하고 쪽팔리는 우문(愚問)을 앵무새처럼 지껄인 것이다. 법문의 내용을 듣기도 전에 알량하게 똑똑한 머리로 예단한 제작자의 각본에 놀아난 꼭두각시 꼴이었다.
물론 TV 방영 때는 스님의 핀잔을 보기 좋게 삭제 편집해서 무참은 면했지만,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일은 본래 회포의 질문을 던지지 못해, 수행에서 음식, 특히 채식의 중요성이 공중방송을 통해 수많은 시청자들한테 효과적으로 전파될 기회를 잃은 거였다. 제작자의 기계적인 독단설계와 주지스님의 순진한 영합예의가 빚어낸 청정수행의 기연(機緣) 상실이었다. 생각하면 아직도 입가에 씁쓰름한 맛이 감돈다. 다만, 그 뒤로 청화스님은 제 마음을 헤아리시고 정기법회 때 이따금씩 수행에서 음식의 중요성을 말씀하시곤 했다.
왜 우리 불교는 대만과 같은 대승불교면서도 수행기풍은 그리 다를까? 왜 청정한 채식공양을 중시하지 않을까? 늘 안타까운 의문이다. 성철스님 같은 분들이 불자들한테 채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얼마나 큰 공덕장엄이 펼쳐질까? 자타가 ‘보살’이라 일컫는 불자들은 왜 다른 교파처럼 청정한 채식운동을 안팎으로 펼치지 않을까? 선수련회니 템플스테이, 전통찻집은 크게 일면서도, 사찰음식점이나 채식집은 왜 그리 무관심할까?
전남대 와 보니, 빛고을엔 인구비례로 따져 채식집이 많은 편인데, 아직 내 복이 모자라는지 한결같이 멀리 떨어져, 차도 없는 내가 밥 먹으러 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외국인 채식주의자가 심심찮게 내방하는데, 그때마다 음식대접이 가장 곤란하다고 실토하는 교수들도 주변에 적잖다. 아주 오래 전부터 국제선 항공기내식에 채식을 예약할 수 있고, 대만에선 학술대회에서도 시종 ‘채식’대접을 배려하는데, 우린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은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한일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 일행한테 산낙지를 초장 찍어 먹으라고 강권해 우세 살 정도다. 어디 국제망신이 한둘이랴?
하지 직후 증심사 아래에 ‘풀향기’가 생겼다기에, 이제 불교도 채식보급에 나서나 보다 싶어, 반가운 마음으로 도반 따라 시식했다. 다양한 전통나물 중심으로 괜찮았다. 근데 학생들 데리고 두 번째 가보니, 무 조림에 새우가 보이고, 김치에 비린내가 나길래 물었더니, 젓갈은 쓴다고 했다. 미륵종의 미륵사 여스님이 주도하여 신도들이 자원 봉사하여 사회복지기금마련에 보탠단다. 수희찬탄하면서, 기왕이면 완전채식으로 하면 더욱 좋겠다고 권청했더니, 김치 등 밑반찬을 함께 파는데, 일반대중의 입맛 때문에 젓갈조차 안 쓰긴 어렵단다. 아쉽지만 내 염원이 이뤄지기엔 아직 우리 사회의 인연이 덜 무르익었나 보다.
지난해 12월27일 승속 도반 두 분과 함께 계룡산 미륵존불 수행을 하는 스님들 절에 다녀오면서, 처음으로 은진미륵부처님을 친견하고 게다가 익산 미륵사지도 처음 들렀다. 복원을 위해 해체중인 석탑은 1층만 남겨진 상태였는데, 나는 너무도 감격스러워 금줄을 넘어 석탑1층 십자통로 따라 심주석을 오른쪽으로 들락날락 한바퀴 돌았다. 보름쯤 뒤 바로 거기서 금제사리장엄이 나와 세상이 떠들썩했다. 참으로 묘한 감격의 인연이었다.
보존처리를 거쳐 반년쯤 지나 미륵사지서 유물전시법회가 열렸고, 나는 윤5월 그믐날 강권하다시피 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친견했다. 미륵사지의 본사로서 법회를 주관한 금산사엔 진표율사가 세운 미륵불전이 유명한데,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우리네 차편이 마땅치 않아 아쉽게도 못 갔다. 대신 왕궁5층탑을 9바퀴 돌았다. 백제불교문화의 감동이 어렴풋이 눈뜨기 시작한 걸까? 전시 마지막 날엔 친구와 함께 다시 한 번 뵈었다. 내 고향 전북은 유난히도 미륵신앙과 인연이 깊다. 구한말 민족정신을 일깨우며 부상한 몇몇 신흥종교들도 주로 전북에서 미륵신앙과 연관 지어 나왔다.
불자라면 승속과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당래하생(當來下生) 미륵존불의 용화(龍華)세계를 학수고대하며 복혜쌍수(福慧雙修)에 정진할 것이다. 더러는 석가부처님 오신 지 3천년이 다되어 미륵부처님이 이미 나왔다느니, 곧 오신다는 말들도 무성하다. 사람들의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보니, 더러 헛보이기도 하고 꼬드김 말 발림도 설칠 법하다.
미륵부처님이 언제 오시든지, 용화세계에 나고자 하면 미륵부처님의 본원(本願)에 알맞은 수행으로 문을 통과해야 하리라. 포대화상으로 알려진 미륵불상의 배가 불룩하니, 그저 아무거나 잘 먹고 뱃심이 두둑하여 너그러운 인덕만 갖추면 미륵불자가 될까? 허나 ‘미륵’의 뜻은 ‘자씨(慈氏)’로 생명존중의 자비심이 특별히 지극하다. ‘불설미륵대성불경’에는 성경의 신세계나 유가의 대동사회와 비슷한 용화세계가 그려진다.
“국토가 안온하고 절도․겁탈․도적 같은 범죄가 없어 마을이나 도시나 문 닫는 일이 없으며, 수재․화재․전란․기근․중독 따위 재난이 전혀 없다. 사람들은 항상 자비심과 공경심으로 감각기관을 잘 조복(調服)하여, 마치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고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 서로 겸손한 말씨로 대한다. 이는 모두 미륵부처님께서 자비심으로 가르치고 일깨우시어 불살생의 계율을 지니고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皆由彌勒慈心訓導, 持不殺戒, 不噉肉故.) 이 인연으로 그 국토에 생겨나는 자는 감각기관이 차분하고 고요하며 얼굴모습이 단정하여 마치 천상의 동자처럼 원만한 위엄과 상호를 갖춘다.”
이 경전의 또다른 명칭은 아예 ‘자심불살불식육경(慈心不殺不食肉經)’이다.
또 ‘일체지 광명선인이 자비심 인연으로 고기를 먹지 않은 경전(一切智光明仙人慈心因緣不食肉經)’에선, 미륵보살이 전생에 선인으로 수행할 적에 혹심한 기근으로 굶주리자, 석가 전신인 토끼가 소신공양(燒身供養) 올렸는데 차마 먹을 수 없다고 자신도 소신공양하면서, 성불할 때까지 결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서원했는데, 미륵보살이 성불하기까지 범륜(梵輪)을 굴리는 곳에선 고기 먹는 게 가장 큰 파계라고 설한다. 장래 미륵부처님 용화세계 뿐만 아니라 당장 내생에 도솔천의 미륵보살님 법회에 끼기 위해서도, 채식은 필수불가결의 기본요건이다.
또 송고승전(宋高僧傳)에 보면, 진표(眞表)스님은 본디 사냥하는 집에 태어나 아주 날렵하고 활을 잘 쏘았는데, 한번은 새우를 잡아 버들가지에 꽂아 물속에 넣어두고 사슴을 쫓다가 뒤쪽 길로 내려온 뒤 새우는 까맣게 잊었다. 이듬해 봄 사냥하다 새우 울음소리가 들려 가보니, 작년 새우가 아직도 살아있었다. 진표스님은 크게 한탄하고 새우를 조심스레 풀어준 뒤 출가하여, 참회의 고행으로 7일 만에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14일 만에 공포의 귀신을 통과한 뒤, 21일 만에 마침내 미륵보살이 강림하여 삼법의(三法衣)․발우․계법과 함께 ‘眞表’라는 이름까지 주셨다.
하산하는데 초목과 짐승들도 앞뒤로 순종하며, 공중에서 보살께서 산에서 나오시니 나와 영접하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녀노소 모두 나와 머리카락이나 옷․융단․이불을 깔았다. 진표스님은 답례로 하나하나 밟고 오는데, 한 여자가 깐 흰 융단에 이르러 깜짝 놀라며 피해 가자, 그 여자는 불평등하다고 불평했다. 진표스님은 융단 실올 사이에 온통 돼지새끼가 가득해, 혹여라도 밟아 해칠까 염려해 피했다고 답했다. 과연 고기 판 돈으로 산 융단이었다.
우리 불교는 대승을 내세우는 화두선 위주로, ‘일체유심조’라 모든 게 마음에 달렸으니, 고기 먹는 것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듯하다. 불법 자체도 뗏목에 지나지 않으니, 경전은 더더구나 찌꺼기쯤으로 여기는가? 오로지 관념론과 구두선으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경론과 역대 고승대덕의 어록을 무시한다면, 근래의 스님들 말씀은 그들을 능가하는 절대 진리 그 자체인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외치는 판이니, 미륵부처님의 용화세계는 안중에도 없는 걸까? 똥 속에서 굴러도 이승에서 살라는 속담처럼, 사바세계가 곧 극락정토라니, 입속에 고기를 씹을 때도 연꽃 위에 부처님을 나토는 위대한 법력을 지니셨을까?
자신을 속이고 중생을 속이는 궤변에 속지 말자! 경전을 보고 미륵을 기다린다면, 경전 말씀대로 믿고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 서울에 대만 불광산사와 칭하이 소속 회원들이 채식집을 열었다고 하니, 머잖아 대한불교도 적극 따라나서길 기대하며 또한 간절히 기원한다.
*이 글은 월간 佛光 09년 9월호 게재한 원고를 덧보태고 손질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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