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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와 벌 관찰 일기

운명을 뛰어 넘는 길. 채식명상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2. 2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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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08) 8 13 수요일 무등산 중봉능선을 오르다가, 잠자리가 내 이마 정수리에 내려앉았다가 바짓가랑이에 앉기에, 스스로 사진 찍으며 떠오른 시상(詩想)을 적어 두었다.

  

잠자

 하늘땅은 만물의 잠자리라 더니

잠자리한테는

풀닢도 잠자리요

돌팍도 잠자린가 보다.

그것도 모자라

오매 잠자리는

제 정수리도 지 잠자리요

바짓가랑이도 잠자린 줄 아나 봐.

무턱대고 내려앉아

선정삼매에 들었네.

잠자리 없어 잠 못 자는 자

그 누구런?

 

1년쯤 지나 올해 7 26일 고교 동창친구의 청도 있어서 함께 고향 전북 나들이에 나섰다. 친구가 운전하는 1톤 트럭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익산까지 달리는데, 바로 눈앞에 유리창 밖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 벌어지며 두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거였다. 고속도로서는 그리 빠르지 않은 시속 100 km쯤 되는데도, 연붉은 고추잠자리들이 눈앞 차창 유리에 재빠르게 날아 부딪쳐 부서지는 게 아닌가?! 고속 자살비행이라도 하는 걸? 가만히 살펴보니 아니다. 잠자리가 너무 평화롭고 몸놀림이 둔한 탓에, 차가 고속 질주해 달려들어도 피할 줄 모르고, 아니 제자리에 맴돌다 자신을 덮치는 투명한 유리창을 피할 틈이 없이 산산조각 박살나는 거였다.

호남 벌판 가운데 쭉 뻗은 고속도로는 왕복 4차선이라 꽤 넓지만, 잠자리가 보기엔 본디 자연의 한가운데 난 오솔길인지라 논밭과 이어진 지들의 놀이판일 뿐이다. 드넓은 한여름 잠자리 놀이터 아래로 총탄처럼 질주하는 쇠말(鐵馬)들이 오가는데, 잠자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평스럽게 노닐다가 갑자기 참변을 당하는 것이다. 키가 가장 낮고 공기를 비스듬히 가르는 유선형 유리창이 달린 승용차는 그래도 피할 만하리라. 근데 좀 키가 크고 유리창을 수직으로 우뚝 세운 트럭이나 버스가 질주할 때는, 갑작스런 상대역풍의 바람에 빨려들어 흘러나갈 겨를도 없이 그냥 헤딩슛을 하는 순간 그만 산(散化)하고 만다.

정읍 휴게소에서 내려 다른 버스들을 보니 과연 앞 유리창들이 얼룩덜룩 잠자리 빛으로 물들었다. 그렇게 익산까지 가는 동안 수많은 잠자리가 부딪쳤다 흩어지길 되풀이했다. 익산서 전주 거쳐 진안 가는 길은 일반국도를 타고 속도가 좀 낮아져 훨씬 나았다. 나중에 귀가 길에 진안서 대전 충무 간 고속도로를 타고 88올림픽 고속도로로 갈아타면서 다시 참사가 벌어졌지만, 아침나절보단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온종일 그렇게 내 눈앞에서 흩어져간 잠자리는 어림잡아 적어도 4-5십 마리는 될 듯하다. 무슨 업장이 터지느라 벌어진 연쇄 집단 박살참사일?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아니 동첩견패(動輒見敗)일까, 비싼 기름 태우며 많은 삶을 앗았구나. 참담한 마음 안으로 삭이며 가눌 길 없었다. 오직 염불 참회로 스스로 어루만지고 달랠 뿐. 잠자리여 그대는 아는? 이 속죄하는 애틋한 심정을……. (근데 친구는 두 달 쯤 지나 트럭을 처분했다.)

다시 1주일쯤 지나 8 4일 오후 무등산 올라가는데, 부질없는 사념 탓인지 모처럼 들어선 오솔길 중간에 커다란 뱀이 나타나,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뱀을 안경 꺼내 쓰고 바라보며 나무아미타불 염불낭송을 하는 동안, 이내 저쪽으로 기어 사라졌다. 동화사터 지나 중봉 오르는 능선 길을 걷는데, 잠자리 한 마리가 우산을 지팡이 삼아 내딛는 오른손 주먹 엄지손가락에 살포시 내려앉기에, 멈춰 서서 나무아미타불 염불낭송을 한 5분가량 해주었다. 한참을 떠날 줄 모르고 내 손가락에 깃들어 잠자는가 참선하는가?

다시 이틀 뒤 입추 전날 낮에 쑥떡 점심공양하며 염철론(鹽鐵論) 좀 읽고, 산행 가면서 민주당 언론악법원천무효 규탄대회 준비하는 도청 앞에 내려 둘러보고, 모처럼 증심사 쪽으로 가서 새인봉으로 힘겹게 서서히 올라갔다. 중머리재까지 땀 뻘뻘 흘리며 올라 약수터에 이르니, 사람도 없고 무더워서 웃통 벗고 머리와 등에 물줄기 맞으며 더위 식히고 숨 좀 가라앉혔다.

물마시고 작은 병 채워 중봉으로 곧장 오르는데, 잠자리 한 마리가 내 왼손 엄지 위에 앉아 한참 멈춰 나무아미타불 염불낭송을 해주다. 중봉 하단 용추봉 820m’라는 나무말뚝 세워진 걸 보고, 시원한 바람결 쐬며 중봉 올라 구름과 찢어진 구름장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 그리고 파란 하늘 조각의 아름다움을 쳐다보고 자연에 도취하다.

능선 길 따라 동화사터로 하산하는데, 잠자리 한 마리가 내 오른 어깨 위에 앉았다가 날아 왼 어깨에 앉더니, 다시 날아 이번엔 이마 정수리 한 가운데 앉는다.  3분 남짓 나무아미타불 염불낭송을 해 주는데, 불현듯 잠자리가 마치 우보처(右輔處) 보살 자리와 좌보처(左輔處) 보살 자리를 거쳐 부처님 자리에 곧바로 내려앉아 나한테 마정수기(摩頂授記)라도 베푸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손길의 화신(化身)이 현현(顯現)하는 듯 느껴지는 게 아닌? 천천히 걸어 내려오며 나무아미타불 염불낭송을 하는 동안 날아가다. 조금 더 내려와 다시 잠자리 한 마리가 또 내 손등에 내려앉는다. 작년 이맘때 이 길 오르며 잠자리가 내 이마와 바짓가랑이에 앉아 사진 찍고 시상이 떠올라 적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올핸 사진기를 지니지 않아 그냥 마음과 염불로 대화하다.

8 9일 일요일 낮에 염철론(鹽鐵論) 열독(閱讀)을 마치고 찰밥 먹고 무등산행길에 나섰다. 산장서 걸어 올라가다 전망대서 시내 소낙비 내리는 구름비 기둥을 감상하느라 다가갔는데, 땅바닥에 말벌인지 땅벌인지 큰 벌이 잠자리 한 마리를 붙들고 레슬링하듯 씨름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안경 꺼내 쓰고 관찰하니, 벌이 잠자리를 확 움켜쥐고 먼저 뒤 꼬리부분을 싹둑 잘라내더니, 몸을 돌려 목을 죄어 그때까지 살아 바둥거리는 잠자리 목숨을 끊는다. 이윽고 머리를 잘라내고 날개는 달린 채 몸통부분만 움켜쥐고 붕 떠서 날아가다, 가까운 땅바닥에 한번 내려앉아 자세를 가다듬었는지, 이내 날아서 제 집으로 간 듯 안보인다. 바닥에 끊겨 떨어진 잠자리의 긴 꼬리와 머리만 나뒹구는데, 곧 개미들이 달려들어 횡재했다고 벌의 사냥 뒤끝 이삭줍기를 하는 모습만 눈에 밟힌다. 처참하고 서글픈 약육강식의 자연계 먹이사슬 현장 하나를 오늘 또 생생하게 목격하고 나니, 참 씁쓸한 느낌이다.

동화사터 올라 의자에 누워 파란 하늘과 구름과 햇살 감상하며 30분가량 평안한 휴식을 즐기다. 중봉 오르는 능선 길에 잠자리 한 마리가 오른 손등에 앉더니,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해 주며 천천히 발걸음 옮겨 걷는데도 잘 날아가지 않고 계속 앉아 있다. 서너 차례 잠깐 떴다가 다시 앉기를 되풀이하면서, 나와 함께 15분 남짓 50m는 걸어 올라갔다. 한번은 내 얼굴 쪽을 향해 앉아 내가 눈을 20cm가까이 들이댔는데도 날아가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그 잠자리는 날아가고, 한참 뒤 방송국 송신탑 부근에서 다른 잠자리 한 마리가 내 오른 이마 위에 내려앉아 한참 같이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중년 여자가 길을 묻기에 답하고, 내 이마에 뭐가 앉았지야고 물으니 쳐다보고 깜짝 놀라며 웃음을 띤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 이튿날 새벽에 꾼 꿈엔, 무슨 도량인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중앙으로 허공을 나르는 공중 전차 같은 탈것이 쉭 날아다니는데, 각 지역 별로 사람 수에 따라 폭(너비)이 각각 조금씩 다르다. 한 칸짜리로 케이블카보다 크고 간단하며 앞뒤가 트인 건데, 공중에 전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닥에 레일이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냥 비행기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나르듯이 운행하는데, 안에 사람이 탄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근데 그 주위를 내가 자유자재로운 허공비행으로 날아다니며 노니는데, 깰 때까지 줄곧 이리저리 신나고 기분 좋게 소요유(逍遙遊)하다. 지금까지 허공을 나는 꿈을 많이 꾸었지만, 이번에 가장 오래 길게 신나게 걸림 없이 막힘없이 내림 없이 꾸준히 날아다닌 듯하다. 어제 잠자리와 함께 노닌 인연일?

다시 8 22일에 새벽녘 춥게 자서 몸살감기가 들락말락한 몸으로 오후 무등산 길에 올랐다. 힘들고 어렵게 서서히 올라 동화사터 지나, 중봉 비석 위에 서서 서천(西天)과 무등산 천왕봉을 바라본 뒤 내민 지팡이에 잠자리 한 마리가 앉기에, 무심코 내 왼손바닥을 가까이 들이 내밀어 잠자리 입가 다리 밑까지 대었더니, 잠자리가 내 왼손검지에 올라앉는다. 손을 가까이 당겨 보니 입에 뭘 넣고 오물오물 씹는 듯했다. 유심히 보니 개미 머리와 다리가 잠자리 입 밖에 나온 채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데, 잠자리는 열심히 우득우득 씹어 먹느라 여념이 없다. 개미는 보통 작은 종류도 아니고 아주 큰 것도 아니고 중간쯤 되어 보이는데, 아직 살아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소용이 없다.

나는 그냥 잠자코 관조했다. 내가 손으로 꺼내줄 수도 없거니와, 꺼낸다고 해도 톱날 같은 잠자리 입에 개미 몸이 이미 동강나거나 병신이 되어 나올 게 분명했다. 또 몇 해 전 두꺼비 잡아먹던 뱀을 돌로 때려 빼내준 유쾌하지 못한 기억이 떠올라, 이미 되 돌이킬 수 없는 먹이사슬의 인과관계에 더 이상 끼어들지 않고 싶었다.

잠자리는 내 눈앞 손가락 끝에 앉아, 건듯 부는 바람결에 제법 세게 흔들리는 날개를 가까스로 균형 잡으면서, 먹이를 맛있게 씹어먹는다. 마침내 개미 몸통 절반을 씹어 삼키면서, 앞에 내민 나머지 머리통은 그만 땅에 떨어지고, 그 순간 잠자리는 내 손가락을 떴다. 조금 뒤 그 잠자린지 다른 놈인지 또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입을 쳐다보니 또 한 마리 개미를 먹이로 붙잡아 아까처럼 씹어 먹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엔 나한테 내려앉지 않고, 나도 쳐다보다 이내 곧 서석대 오르려고 길을 떴다.

2주전 말벌인지 땅벌인지 잠자리를 움켜잡아 뒷꽁무니와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만 가져간 뒤, 땅바닥에 떨어진 잠자리 잔해(殘骸)는 개미떼가 달려들어 먹이사냥 하더니, 오늘 보니 잠자리가 개미를 한 마리씩 통째로, 마치 소리개가 병아리 채듯, 뱀이 개구리 덥석 물 듯, 그렇게 사냥하다니! 잠자리와 개미가 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을 오늘 적나라하게 관찰하였다.

다시 엿새 뒤인 8 28일 금요일 오후, 서울서 내려온 한 동학과 다른 연구보조원을 데리고 무등산을 오르는데, 전망대 돌아가는 한길바닥에서 누에 비슷한 푸른 애벌레 한 마리를 보고 주위를 살피니, 벌 한 마리가 제 몸집보다 훨씬 큰 애벌레를 사냥하는 중이었다. 아마도 이미 벌침을 쏘아 얼빠진 상태인 듯한데, 몸집은 꿀벌 만한데 더 호리호리하게 가는 편이고, 검은 색이 나는 가뿐한 몸매였다. 처음엔 낯선 이방 중생의 존재를 느꼈는지 멈칫하더니, 자신을 해치려는 공격의도가 없음을 알아차렸는지 이내 태연하게 사냥질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생존과 생식에 열중하는 생명은 몸소 직접 커다란 위험을 감촉하기 전에는, 주위의 눈총을 아랑곳하지 않는 게 자연본능인가 보다.

헌데 그토록 조그맣고 가녀린 몸매로, 그렇게 크고 육중한 몸집의 먹거리를 질질 끌고 가는 사냥현장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자연계 먹이사슬의 생생한 모습 그대로였다. ‘동물의 왕국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나 영상으로 볼 수 있을 법한 신기한 생존경쟁의 현장을 처음 보는지라 신기하게 넋 놓고 바라보다가, 문득 사진기가 생각나 곧장 꺼내 동영상으로 녹화하며 따라갔다.

그 유명한 파브르 곤충기도 바로 이렇게 관찰한 기록이겠구나 생각하다가, 문득 시경(詩經)에 나오는 나나니벌이 애벌레를 잡아다가 (알을 까놓고) 나 닮아라, 나 닮아라 하고 축원해 마침내 벌로 변태()하는 모습을 그린 구절이 떠올랐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완(小宛) 시의 뽕나무 벌레의 자식을 나나니벌이 업어 가네. 내 그대 자식을 가르치리니, 나를 잘 닮아 가거라.(螟蛉有子, 蜾?負之. 敎誨爾子, 式穀似之.)는 구절 말이다. 그렇다. 이 장면은 바로 3-4천년 전에 조상들이 이미 관찰하고 시까지 써서 전하는 바로 그 기록의 재생(재현)이다.

아니나 다를까, 길 가운데서 길가 쪽으로 자잘한 깬돌(자갈)이 널린 울퉁불퉁한 땅바닥을 한참동안이나 줄곧 오르락내리락 부리나케 옮겨가더니, 이제는 좀 안전한 곳이다 싶은지, 마침내 벌은 애벌레 몸통에 침이라도 놓듯이 자기 꽁지를 여러 차례 붙였다 떼기를 되풀이하였다. 바로 제 수정란을 숙주(宿主)에 벌침 쏘듯 쑤셔 넣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는 이내 마땅한 자리를 잡더니, 애벌레를 바로 옆에 놓아두고, 이번에는 그 여린 입과 앞다리로 모래와 잔자갈을 부지런히 들어내며 땅을 파 들어갔다. 그 조그맣고 가녀린 몸집에서 어디서 그 힘이 다 나오는지 궁금했다. 괴력(怪力)이 틀림없었다. 제 몸집보다 몇 배 크고, 무게로는 열배쯤 되어 보이는 애벌레를 끌어 나르더니, 제 몸집 절반 이상 되는 바윗돌도 땅속에서 파 올리는 것이다! 개미가 떼를 지어 흙을 물어내어 집을 짓는 것도 가끔 보았지만, 벌은 혼자 아주 재빨리 순식간에 모래와 돌을 파 올려 집을 짓더니, 이내 애벌레를 끌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한 10분쯤 관찰하며 녹화했다. 벌과 애벌레가 사라진 구멍입구를 한참 바라보다가 이내 경이로움을 간직하고 산길을 계속 오르기 시작했다. 참으로 만나기 드문 모습을 본 인연에 감사하면서! 저녁에 귀가하여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영락없이 나나니벌이 분명했다.

나나니(): 나나니벌과의 곤충. 몸길이 2cm, 흑색이며 허리가 가늘고 두 마디로 됨. 날개는 투명한데 누르스름함. 여름에 땅을 파서 그 속에 살며 벌레를 잡아 모아 유충의 먹이로 함. =세요봉(細腰蜂).”

일찍이 중국 고승법문(印光大師嘉言錄)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불교에선 사람이 염불(念佛: 부처님 생각)하면 점차 부처님을 닮아가 마침내 부처님이 되는 이치가, 바로 나나니벌이 애벌레(螟蛉)를 잡아다가 나를 닮아라, 나를 닮아라!고 축원 기도하면, 이레만에 나나니벌 새끼로 변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상징적 비유가 오랜 전통으로 내려온단다. 나나니벌(蜾?: 과라)이 뽕나무벌레(螟蛉)를 잡아다가 자기 새끼에게 먹이는 것을 옛 사람들이 그만 오해하여, 뽕나무 벌레가 나나니벌의 양자(養子)로 둔갑한다고 보았단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명령螟蛉()을 양자의 대명사로 써왔단다.(162쪽 사진 참조)

돌고 도는 게 자연인지 알면서도, 얽히고설킨 먹이사슬을 여실히 생생하게 자주 목격하는 올 가을에는, 왠지 유난히도 새삼스레 허허롭고 수수로운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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