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생에 어디서 만났던 인연으로, 어제 봉황 철천 들에서 너를 다시 만난 걸까? 며칠 전 너희들 순 풀만 먹는 순둥이들은 아예 쓸개가 없다는 얘길 들었는데, 어제 뜻밖에 들판을 달리던 차안에서 귀여운 노루를 처음 본 나는 너무도 신기하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 근데 순전히 나 혼자서 신나 기쁨에 들떴지, 갑자기 나타난 덩치 큰 철마가 너보다 재빠른 속도로 네 곁을 쌕쌕 지나갈 때, 네가 느꼈을 놀라움이나 두려움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구나.
그래도 한번 지나치고 그대로 멀리 사라졌다면, 너한테 그리 잔인한 위협은 안 되었을 텐데, 애꿎게도 철마를 몰던 분이 자기 뜻을 다 펼친 뒤, 기수를 되돌려 온 길을 거꾸로 달리다가 다시 너를 마주친 게 이토록 마음 아프고 애달픈 인연이 될 줄이야! 나는 무심코 너를 또 볼 수 있는 기대에 부풀었고, 멀리 떠나지 않고 놀란 심장 고동이 채 가라앉기 전에 다시 반대방향에서 몰아닥치는 괴물한테, 너는 그만 기겁하여 다급히 옆 물도랑에 뛰어내렸지.
혹시나 다쳤을까, 네 모습을 보려고 급히 차를 세우고 우리 둘이 뛰어가 보았지만, 네 모습은 사라졌고, 수직으로 1m 넘게 깊은 콘크리트 도랑 벽만 눈에 들어오더구나. 물길은 들판을 가로질러 한없이 이어졌고, 건너편 야산과는 한참 멀리 떨어져서, 과연 네가 거길 빠져나와 무사히 네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랑 안으로 뛰어든다고 해도 너를 찾아서 보내기도 어렵고, 갈길 먼 손님들한테 떼를 쓸 수도 없어서 그냥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섰지.
한참 네 생각에 잠겨 달리던 철마는 큰길과 만나는 삼거리서 하마터면 앞을 가로지르는 큰 차와 부딪칠 뻔했지. 게다가 목적지를 못찾고 한참 헤매느라 자못 애가 탔어. 너를 놀라게 하고 네 안전을 위협한 죄로 즉각 닥친 하늘의 인과응보성 경고인 셈이지. 두 절을 찾은 뒤 저녁 먹고 헤어질 때까지, 우리 마음은 네 염려로 가득했어. 두 분은 물이 깊지 않은 데다, 가에 유채며 풀들이 자라서 네 먹이감도 있고, 수로 중간에 논의 물꼬와 이어지는 곳에 빠져나갈 통로가 있을 거라며, 애써 나를 위로하며 안심시키더라. 도랑이 네 모습을 사람 눈에 띄지 않게 가려주고, 너는 이리저리 찾다가 벗어날 만한 뜀뛰기와 꾀가 넉넉할 거라고 말이야. 글쎄, 확신은 안서지만, 네가 정말로 그렇게 안전히 돌아가기만 바랄 수밖에.
30년 전쯤 귀향하던 고속버스가 여산 부근에서 길을 가로질러 날던 꿩과 충돌해, 꿩은 즉사하고, 버스는 앞 유리가 깨져 조심스레 정읍까지 온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인간이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을 파괴하여, 자연의 뭇 벗들이 움직이는 길마저 끊겨 삶을 위협받고 터전을 잃는구나. 농촌에서 삶의 젖줄인 물길까지 죽음의 상징인 콘크리트로 수직 제방을 만들어, 너희를 뜻밖의 함정에 빠뜨리다니, 하늘을 거스르는 역천(逆天)의 문명이 멸망을 향해 마지막 절정을 치닫는가?
요즘 가뜩이나 대운하니 4대강 살리긴지 죽이긴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젖줄인 물줄기를 파헤치는 전 국토의 쇠삽질로 한창 어수선해지고 있으니, 앞으로 너희 자연의 생명들이 얼마나 엄청난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르겠구나!! 예전에는 사람도 스스로 자연의 일부로 여겨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지향하여, 사람 길과 너희 산들 자연 생명들의 길이 서로 교차해도, 마치 빛이 교차하듯 별 간섭이나 충돌 없이 평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이젠 사람이 자연에서 갈수록 멀어져, 과학기술 문명이란 미명으로 죽음의 상징들로 온통 뒤덮여, 너희들 순하고 부드러운 삶들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으깨는구나. 2백년 전 유럽 백인들이 아메리카에 상륙하여, 그 순하디 순한 인디언들을 야금야금 도륙(屠戮)하던 문명의 역사와 전철을 지금 우리 인간들은 너희 중생들한테 그대로 재연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게 몸서리쳐지고 낯부끄러운 악업이지. 윤회의 굴레를 못 벗어나고 언젠가는 다시 앙갚음을 받아야 할 죄악의 씨앗을 거리낌 없이 흩뿌리고 있어.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들이!
차길과 물길 사이 좁은 띠 모양의 마늘밭을 껑충껑충 뛰던 네 춤사위는 그야말로 귀염둥이 재롱처럼 발랄했지. 사람들은 너희가 농작물을 다 망가뜨린다고 싫어한다나? 자신들이 자연과 너희 터전을 마구 망치는 줄은 생각하지 않고서. 어제 내가 뜻밖에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봉황벌을 처음 나들이하다가, 숲의 품을 벗어나 들에 내려온 너를 처음 보고 기뻐한 순간, 화복동행(禍福同行)의 자연법은 어김없이 너와 나를 함께 두려움과 슬픔의 늪에 빠뜨렸구나. 다만 네가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잘 돌아갔길 바랄 뿐이다.
만에 하나 더 큰 고난에 부닥쳤더라도, 나를 만난 박복한 인연 탓하지 말고, 부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무상(無常)법칙에 순응하여, 더 큰 도약의 발판 삼아 축생을 벗어나 천상에 올라가길 간절히 기도할게. 미안하구나, 용서하렴. 백양사의 흰 양처럼, 노루 너도 천상에서 잘못해 땅에 잠시 귀양 왔거나, 아니면 어제 나한테 현신설법을 하러 일부러 몸을 나톤 화신(化身)일 텐데, 언젠가 네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니?!
숲속의 품이든 천상의 고향이든, 노루여 잘 가거라!
’09.5.5.화. 빛고을 운암골 보적 삼가 기도하며 적음.
후기(後記): 이 글을 발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규봉암 사미승이 무등산 운무 속의 어린 노루 한 마리를 만나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봉황벌에서 만난 노루 모습인데, 바로 그 노루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사진을 참고로 기념 삼아 195쪽에 싣는다. *이 글은 월간 佛光 09년 6월호 게재한 원고를 손질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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