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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의 육식

인광대사가언록. 채식단상 몇 조각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2. 2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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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람쥐의 육식

아우가 치과 임플란트 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서 내려와 학교로 찾아왔다. 아우가 보고 싶어하는 인터넷 자료를 찾아 열람하라고 주고, 졸업앨범사진 한 컷 찍고 나서, 장동로터리 채식 뷔페에 가서 점심 공양했다. 치과 약속시간까지 좀 여유가 있어, 둘이 함께 버스 타고 증심사 가서 죽 순례하고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길가에서 다람쥐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가만히 다가가서 살펴보니, 조그만 나무 위에 올라가 두 앞발로 뭔가를 움켜쥐고 입으로 발라먹는 것 같은데, 자세히 관찰하니 무슨 애벌레를 흥건하게 찢어 먹고 있는 것이 아닌?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고만 알았는데! 동요로 친근한 다람쥐가 상수리만 먹는 순한 초식동물인 줄 알았는데, 벌레도 잡아먹다니. 하긴 요즘 춘궁기라, 먹어서 죽지만 않을 것이면 뭐라도 눈에 띄는 대로 주워 먹어야, 굶주림과 아사(餓死)를 면하겠지!

사실은 다람쥐는 일용하는 양식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벌레를 함께 먹는 잡식동물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다람쥐의 주식인 밤이나 도토리(상수리)에는 무슨 나방인지 벌이 침 쏘듯 예방주사를 놓듯 주입해 놓은 알이 부화하여, 그 속에 도사리며 밤이나 도토리 살을 갉아먹고 살다가 겨울을 나고 봄에 나와 고치 짓고 탈바꿈하여 다시 나방이 되는데, 가을에 땅에 떨어진 밤이나 도토리를 다람쥐가 주워다가 쟁여놓고 먹는 겨울양식 속에 얼마나 많은 애벌레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끝내 다람쥐 뱃속으로 함께 들어가 녹아버릴?

자연계의 생존경쟁과 먹이사슬의 진면목을 현장에서 노골(露骨)로 생생히 목도하고 나니, 참으로 안타깝고 씁쓸한 탄식이 절로 나왔다. 생사의 윤회 속에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술래잡기가 한순간도 쉼 없이 숨 막히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 이게 중생계의 본래 모습이런? 2005.05.24.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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