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대만대학 동아법철학회의 채식대접에 감사와 찬탄
전 선생님께 :
‘채식여부’를 확인 요청한 주최 측의 자상하고 세심한 문화다원주의에 충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표하면서, 참고로 저는 대만유학 시절에 배워서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7년째 완전 채식을 해 오고 있사오니, 비행기 예약 시에도 확인 등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만은 채식문화가 널리 보급되어 체류기간 동안 채식하는 데에도 큰 불편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공식 숙식제공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참고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만 도착 첫날 제가 개인으로 숙소를 마련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전 선생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에 거듭 깊은 감사를 드리며, 대회준비가 순조롭고 원만히 이루어지길 기원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6.02.26. 日. 저녁 빛고을 전남대 법대 김지수 공경합장
12년만의 해외여행
나는 12년만의 해외여행으로, 예전에 3년간 유학했던 중화민국 타이완을 지난 3월 하순에 엿새간 방문했다. 짧지만 여러 모로 뜻 깊고 감회도 새로우며 인연도 훌륭한 나들이였다. 개인으로 보면, 유학에서 돌아온 뒤 특별한 일로 한두 번 더 방문했던 것을 빼면, 사실상 첫 나들이나 다름없다. 그 동안 주로 고독하게 연구와 수행에 침잠해 있었다.
교수에 부임한 뒤로 5년여 동안 대학동료들의 집단 해외나들이 기회가 두 차례쯤 있었지만, 별로 내키지 않아 오히려 사양하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교수 해외연수 목적의 중국 장가계 여행과 일본 로스쿨 참관 목적의 와세다대학 등 방문이, 나한테는 해외 나들이의 명분과 실익을 충분히 제공할 만한 인연이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경제비용과 시간상 체력상 정신상 대가 및 희생에 비하면, 거의 가치 없는 소모성 사치와 낭비에 불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6회 동아시아법철학회 심포지움이 유학모교인 국립대만대학 주최로 열린다기에, “법과 법학의 목적”이란 조그만 글을 발표하겠다고 신청하여 초청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기꺼이 설레는 마음으로 해외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비행기를 탑승하면서 무료로 받은 문화일보 석간기사를 통해서 안 사실인데, 바로 우리가 황해와 동지나해를 비행하던 그 시간에, 로마교황청에서는 우리나라 제2의 추기경 서임식이 이루어진 기묘한 인연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감동시키고 감격스럽게 한 사건은, 회의 주최 측에서 비행기표 예약을 위한 준비단계부터 ‘채식’ 등 특별한 기호주문사항을 주동해서 확인질문하고, 회의 진행기간 동안 내내 비록 몇 안 되는 채식주의자지만 특별히 우리를 위해서 채식식단을 따로 주문하여 공급해 준 따뜻하고 자상한 배려였다. 물론 우리가 이용한 식당은 적어도 중급은 되기에, 따로 채식요리를 마련해 동시에 제공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채식의 요청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나 이질감을 느끼지 아니하고, 오히려 당연한 봉사(서비스: 服務)로 자연스레 여기며 흔쾌히 부응해 준 사실이, 바로 문화다원주의가 널리 보편화한 성숙한 사회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웅변이 되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번 타이완 여행에서 극소수에 속하는 채식주의자의 기호가 일반 대다수의 식성과 동등하게 존중받은 점에 대하여, 지극한 감사와 찬탄과 존경을 바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세계 패권을 거머쥔 부국(父國)의 국적을 배경으로, 그것도 미식축구라는 인기 운동 분야의 최고급 선수의 명망을 타고서, 태평양 건너 조그만 모국(母國)을 방문해 국빈 이상의 지극한 환대를 받은 흑황(黑黃) 혼혈아 하워드보다, 나는 훨씬 더 훌륭하고 융숭한 대접을 대만대학에서 받았다고 감히 자부하고 기뻐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며 크게 칭송한다.
하워드에 대한 정부 당국과 국민여론 및 언론의 열광적인 환대는, 남들한테는 자칫 편협한 국수적 애국주의나 정치․외교․사회적 과시(쇼) 내지 민족의 집단 자위(自慰)나 최면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개별 특수의 현상임에 틀림없다. 반면, 정치․외교․사회적 비중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학술회의에서 외국 학자한테 채식의 기호를 세심하게 보살펴 준 행동은, 인류 보편의 진리와 가치와 존엄을 탁상공론으로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장 흔하고 사소한 일상음식에서부터 소수자 인권을 몸소 실천한, 지극한 선행이자 미덕이며,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문화다원주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중화민국 타이완은 내가 유학하던 1980년대 후반에 인구 2100만 시절에 이미 순수 채식 전문식당이 전국에 모두 1천여 개 분포했었다. (2009년 사찰음식 국제 세미나에 참석해 ‘대만 사찰 음식’을 소개한 영묘(永妙)스님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대만에는 230만 명의 채식 인구와 5천개 이상의 채식식당이 있으며, 홍콩에도 200개 이상의 채식식당이 있다고 한다. 엄청난 증가추세다.) 중화민국 타이완은 경제상으로도 이미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지만,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훌륭한 수행자의 천국이요 문화선진국임에 틀림없다. 타이완의 애칭 Formosa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 이름값이 충분한 곳이다.
2006.04.07.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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