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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한테 참회를, 꽃들에게 위문을!

인광대사가언록. 채식단상 몇 조각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2. 2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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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애벌레한테 참회를, 꽃들에게 위문을!

2007 1 28일 병술년 섣달 초열흘 일요일 낮 2시경, 점심공양 중 무슨 조그만 애벌레 번데기 같은 게 하나 문득 눈앞에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어인 일일까 의아해 하며, 새봄 되면 깨어나 활개치라고, 내 깜냥에는 방생(放生)한답시고 주어다 창밖 풀밭에 던져 주었다. 그런데 조금 뒤 또다시 이번에는 브로커리 속에서 언뜻 벌레가 눈에 띄었다. 어제 말바우시장서 2천원어치 사온 브로커리를 점심 반찬용으로 몇 개 칼로 빠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계룡산 구원사서 좀 얻어 온 45년 된 된장에 찍어 먹는 중이었다. 다 찾아보니 아홉 마리의 애벌레 시체가 나왔다. 아뿔싸! 다가올 새봄에 피어날 꽃봉오리들은 또 얼마나 많은 희망을 잃어버리게 될까? I go! !

브로커리는 기질이 좀 억세고 단단해서 벌레 같은 게 끓지 않는 줄 알았다. 더구나 이 한겨울에 전혀 생각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 촘촘한 곱슬머리 같이 빽빽이 총생(叢生)한 작은 꽃봉오리다발 속에 미물이 기생(寄生)하고 있는 것이다. 어렸을 적엔 상추가 흰 뜨물이 나오고 독한 기운이 있어서 벌레를 타지 않았다. 근데 요즘엔 상추에도 벌레가 시글시글 들끓는 형편 아닌가?

하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다른 생명인들 먹지 못하? 사람이 못 먹는 것도 다 소화해 내는 생명력들인데! 내가 좋아하면 다른 사람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미물들도 대부분 좋아하기 마련이구나! 죽기 싫어하고 잘살고 싶은 것(好生惡死)이 모든 생명체의 일반 공통의 본능이라고 하더니! 그래서 벌레 많이 끓는 과일이 달고 맛있다고 정평이 나 있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17년간 채식 수행이 무색하게 시리, 나는 전혀 뜻하지 않게 무심코 무려(無慮) 열 마리 가량의 생명을 또다시 한순간에 과실치사(過失致死)하는 살생업(殺生業)을 저지른 셈이다. 그것도 펄펄 끓는 물에다 삶아 죽인 것이다. 화탕(火燙)지옥의 고통으로! 내가 내생에 화탕지옥에 가서 오늘의 살업과보를 얼마나 받아야 할까? 아니면 그들이 전생에 나를 화탕으로 해친 적이 있어서, 그 과보로 오늘 사태가 벌어진 것일? 인과응보의 미묘한 수리(數理)를 내 알 수 없음이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하다. 먹고살기 위한 생존경쟁의 그물이 이처럼 얼키설키 치밀하단 말인가?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 실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알게 모르게 직접 간접으로 희생당하고 고통당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먹이사슬이 아닌?!

조심하고 또 주의한다고 해도, 한순간 조금만 방심하면, 도마(道魔)의 농간이 어김없이 찾아와 그 틈새에 끼어든다. 그저께 성도재일(成道齋日) 지난 뒤 어제 심기(心氣)와 정신이 좀 편안하고 온화하다 했더니, 오랜만에 시장보고 밤에는 아미타사 법회 마칠 시간에 전화도 걸어 홍원법사와 법담도 좀 나눴더니, 그새 틈을 타서 내 영혼의 등위에 올라타 내 수행을 비웃듯이 희롱(戱弄)한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도마(道魔)간의 치열한 신경전이기도 하며, 또한 나의 풀어진 마음고삐를 제때 잡아 죄어주는 선지식이기도 하다.

마장(魔障)이 없으면 도업을 어떻게 이룰 수 있으리? 중생이 없으면 또한 보리를 어떻게 얻을 수 있으며, 설령 얻는다고 해도 어디다 쓰리? 중생의 어리석은 업장과 그로 인한 희생 및 고통이 한순간 역증상연(逆增上緣)의 도마(道魔)로 나토시어(化現), 수행자의 자비심과 보리심과 구도의 서원을 일으키고 북돋아 주며, 점차 성취시키는 것이다. 자비와 지혜의 채찍이요 뜀틀 노릇을 자처하시는 것이다. 애벌레 같은 미물들이 무심코 찾아와 내 부주의에 다치고 죽어감으로써, 나를 더 큰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감독하고 경책(警策)하며 또한 보호해 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느슨해진 마음을 추슬러 다잡고, 희생당한 애벌레들의 해원소업(解怨消業)과 리고득락(離苦得樂)을 염원하고 회향기도하며, 새봄에 피어날 꽃들에게도 미리 미안한 위문의 마음을 전하면서, 참회(懺悔)와 보속(補贖)의 발원으로 정진해야 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왕보살마하살! 나무마하반야바라밀! 2007.01.28. 일 낮 기초

(최근 새로 나온 책에 따르면, 미국 각지에서 꿀벌들이 대량으로 사라져 여러 식물들의 꽃 수분이 차질을 빚게 되고, 그 결과 인류는 심각한 식량부족 사태에 부닥칠 위험이 아주 높아지고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근데 꿀벌들의 실종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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