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 : 식물은 생명이 아닌가?
동물이나 식물이 다 같은 생명인데, 동물성을 먹지 않고 식물성만 먹는 채식주의가 진정한 생명사랑의 대자대비인가? 움직인다고 동물만 생명이고, 우리 눈에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식물은 생명이 아니란 말인가? 동식물의 불평등 대우는 또 다른 차원의 차별심이고 분별지(分別智)일 따름이다. 오십 보 달아났다고 백보 도망간 자를 비웃는 격이다. 자기네 민족(인종; 종교)끼리만 서로 뭉치고 사랑하면서, 인류보편의 인권과 존엄을 무시하고 다른 민족(인종; 종교)에 대한 공격과 침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민족(인종; 종교) 차별주의와 다를 게 무엇인가? 또 인간만 사랑하고 동물은 사랑하지 않는 서양의 인본주의가 인간우월주의의 만물영장론에 불과한 또 다른 패권주의이듯이,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중생평등을 설파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다고 하면서도, 동물만 중생이고 식물은 중생이 아니라고 배제한다면, 이는 동물우월주의의 만법유식(萬法唯識)론에 불과한 또 다른 차별주의가 아닌가?
그리고 또 자연계의 먹이사슬은 본디 식물이나 미생물을 작은 동물이 먹고, 작은 동물을 큰 동물이 잡아먹고, 큰 동물은 또 맹수가 잡아먹는 게 자연법칙이고 신의 섭리가 아닌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먹이사슬의 맨 위에 군림하여, 식물과 함께 작은 동물 및 큰 동물을 다 먹을 수 있는 것도 또한 자연법칙이고 신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답변
우선 첫째로, 사람이 동물고기를 먹으면, 먹이사슬의 순환법칙성에 의해, 다른 미생물과 병원균의 침입을 받아 질병으로 고통을 많이 받고, 그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식물성만 먹으면, 동물이 개입하는 더 높은 먹이사슬에 끼어 들지 (연루 당하지) 않으므로, 병균이나 세균의 숙주가 되지 않고, 천수(天壽)를 다하다가 선종(善終)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다시 말해, 동물성 먹거리를 섭취하면, 자신이 동물로서 살아 움직이는 동안, 다른 미세 동물의 먹거리가 되는 걸 피할 수 없지만; 식물성 먹거리를 섭취하면, 자신이 동물로서 살아 움직이기를 마치고 자기 육신이 식물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될 때, 다른 미세 동물에 의해 분해 당하여 흙 속에서 다른 식물의 먹거리(영양분)가 되는 것으로 충분해진다.
설령 태어난 이래 줄곧 채식만 한다 해도, 전생의 원한과 업장으로 인한 삼세(三世: 과거, 현재, 미래) 인과응보의 소치로, 더러 다른 미생물이나 병원균의 침입을 받아 병고를 치르고 죽을 수도 있는 것인데, 하물며 동물성 고기를 많이 먹는다면 오죽하겠는가? 먹이사슬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불결과 혼탁으로 오염도가 높아지고 업장도 많아지며, 먹이사슬의 단계가 낮아질수록 순수하고 청정해지며 업장도 줄어든다.
음식을 먹어 소화시키는 일은, 기본상 물질을 불태우는 체내 산화(酸化)작용이다. 일정한 온도 이상에서 유기물 속의 탄소가 공기 중의 산소와 화학상 결합하여 이산화탄소가 되면서 그 반응열을 내는 물리현상이 산화다. 그런데 몸 안의 음식물 소화는, 허파를 통해 들이쉰 숨 속의 산소가 혈액에 녹아 들어가, 역시 창자를 통해 흡수한 유기물 영양분 속의 탄소화합물과 만나 결합하여, 이산화탄소와 젖산 등 온갖 노폐물(유독 물질)을 만들면서 열을 내는 산화작용이다.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장소가 체외냐 체내냐 차이만 있을 뿐, 산소와 탄소가 결합하는 산화작용의 원리와 현상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라! 마른 풀이나 낙엽이 탈 때 나는 불꽃의 빛깔 및 연기 냄새와, 동물성 고기나 지방 또는 손톱이나 터럭 같은 단백질이 탈 때 나는 불꽃의 빛깔이나 연기 냄새 등을 비교해 보라! 그러면 채식과 육식의 차이는 분명하고 현격하게 드러나고 느껴질 것이다.
하물며, 공장식 우리에 갇혀 24시간 내내 제대로 몸을 움직일 여유도 전혀 없이 항생제나 온갖 성장호르몬, 그리고 자연의 식성에 반하는 동물성 살과 뼈로 만들어진 인공사료를 먹으면서, 자연과 완전히 차단당한 채 오로지 두려움과 공포와 저주와 증오로 가득 찬 지옥에서 마지못해 연명하다가, 마침내 수명(獸命)이 다해 무자비하게 도살당하면서 최고조의 두려움과 공포와 저주와 증오의 독기를 내뿜을 소 돼지나 닭오리를 생각해 보라. 사람도 분노가 치밀어 화를 내면 치명적 독기를 내뿜는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실험을 통해 명명백백히 밝혀진 주지의 상식이다. 동물이라고 다르겠는가? 우리를 짐승들처럼 사육한다면, 엄청난 스트레스에 며칠 안되어 모두 미치거나 죽고 말 것이다. 그렇게 독기 서린 고기를 먹고도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길 바라는가? 만물의 영장, 지혜로운 인류여!
둘째로, 식물도 생명이고 채식도 살생이라고 문제를 내세우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스스로 되돌아보라. 정말 순수하게 생명을 사랑하고 식물도 생명이므로 차마 먹을 수 없다는 가녀린 마음에서 궁금증을 풀기 위한 질문인지? 아니면 어차피 못 먹을 감 찔러나 보자는 심보로, 완전 채식은 죽어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육식하는 게 꺼림칙한 데다 채식의 이유가 자신의 양심을 찔러 오므로, 오히려 반발과 역공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서 자아기만성 자위라도 하자는 저의에서 퍼붓는 독설의 비난과 힐난인지?
거의 대부분은 후자에 가까워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선현(先賢)들도 일찍부터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탓하지 말라.”고 지혜로운 잠언을 속담으로 전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공자는 “더불어 이야기할 만한 상대가 아닌데 더불어 이야기하면 말만 잃는다(失言)”고 경고했다. 또, 맹자는 답변하지 않는 것도 대답의 한 방법이라고 말하였고, 불교에서 침묵으로 답변하는 묵빈(黙擯)대치를 가르친다.
선한 마음에서 나온 말은 아무리 더듬고 하찮게 들리더라도, 그윽한 덕향(德香)이 풍겨 하늘과 사람을 모두 감동시키지만; 거꾸로 악한 마음에서 내뱉는 말은 아무리 번지르르한 윤기가 철철 흐르고 그럴듯한 감언이설이라도, 그건 한낱 독사의 낼름거리는 혀나 날카로운 비수처럼 독기와 살기만 진동할 뿐이다. 차라리 진솔하게 이 세상에서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하소연하면, 차라리 하늘과 사람의 동정이라도 사지 않을까?
물론 문자표면상 형식논리로만 따지자면, 힐난이든 비난이든 제기한 질문이 틀리지 않다. 그러나 실질상의 논리를 깊이 음미하면, 그런 형식논리는 소피스트의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 책의 내용을 마음으로 정신으로 잘 음미했다면, 더 이상 부연설명이 없어도 이미 충분히 납득하고 공감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진실로 생명을 사랑하여 쌀 한 톨 풀 한 포기조차 차마 다치지 않게 하고 싶은 여린 마음의 수행자들을 위해서, 미욱하고 어설픈 사견(私見)이나마 참고삼아 조금 밝혀 보겠다.
사실 우리 일반 범부중생한테는 너무도 충격적인 소식이라서 진실을 그대로 밝히기가 좀 꺼려지긴 하지만, 인연 있는 분들을 위해서 서슴없이 전하겠다. 주파수 2만Hz가 넘는 소리는 우리 귀에 안들리는 까닭은, 우리 인간의 고막과 정신이 터져 버릴까 염려하는 하늘(님)의 자비로운 조화라고 믿는다. 대범한 지혜와 심력(心力)과 담력으로 이러한 이치를 유추하여 이해하기 바란다.
우선, 도교의 신선술이나 정통 한의학에 따르면, 만약 장(腸) 안이 항상 맑고 깨끗하면(淸) 불로장생하며, 만일 장(腸) 안에 노폐물(大便)이 전혀 없으면 죽지 않고 신선이 된다고 한다. (葛洪 : 抱朴子)
또 불교 경전에 따르면, 사람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기 때문에 그 업장으로 땅에 이끌려 속박 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만약 땅에서 나는 음식을 전혀 먹지 않으면, 사람은 신선이나 천사처럼 자유자재로 허공을 날며 노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구상 인간의 최초 조상은, 광음천(光音天)의 천인(天人: 신선, 천사)들이 지구에 소풍 나와 내려앉았다가, 당시 감미로운 땅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는데, 그 업보로 몸이 육중(肉重)해져 하늘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지구인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인간이 지구상의 윤회 삶을 끝마치고 해탈하여, 영원한 대자유의 생명으로 본디 고향에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종국에는 땅에서 나는 모든 음식, 채식까지도 완전히 끊어야 한다고 한다. 봉황이 대닢(竹葉)의 이슬만 먹고살고, 신선이나 심지어 조상귀신조차도 음식의 향기(기운)만 맡아 흠향(歆饗)한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바로, 식물도 생명이고, 채식도 차마 할 수 없고, 또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극단론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논거다.
셋째로, 식물도 생명인 것은 분명하다. 생명을 해치고 잡아먹으면, 그 업(Karma)과 원한이 내 몸과 영혼(정신)에 어두운 그림자(장애)를 드리운다. 그걸 업장(業障)이라고 한다. 따라서 곡식이나 야채를 먹어도 그 식물의 업이 나한테 심신상의 장애로 옮겨지는데, 다만 식물은 감정과 의지와 영성이 동물보다 훨씬 약하고 옅기 때문에, 그 업과 그로 인한 업장도 비교가 안되게 몹시 가볍고 얇다. 최근 심령과학연구에 따르면, 식물의 업(장)은 대개 며칠이면 다 흩어져 사라지는데, 동물(고기)의 업(장)은 대개 몇 년 이상이고, 고등동물과 원한이나 독기가 특히 강렬한 파충류 등의 업(장)은 수십년 내지 백년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흔히 민간에서 고양이 고기라든지 말고기라든지 절대 금기시하는 구전(口傳)관습이 있는데, 이런 고등동물의 업장은 사람의 한평생 동안에도 다 흩어지지 않은 채 단단히 엉겨 있어, 죽음 이후까지 따라다니며 내생을 크게 그르칠 위험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불경(능가경)에서 절대 먹어서는 안될 10가지 동물을 구체로 열거한 내력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무리 이오십보소백보(以五十步笑百步)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사는 상대적 현상세계에서는, 분명히 “수량의 변화가 급격한 성질의 변화를 초래하는 한계점”이 존재하며, 그 한계점을 둘러싸고 동물성과 식물성의 음식구별을 하는 것은, 현상세계의 상대성원리에 부합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이다. 지금 사람의 몸이 전생의 복덕으로 튼튼하게 타고나, 어지간한 독에도 끄떡없이 버텨나가지만, 온갖 독과 스트레스가 쌓이고 또 쌓여 어느 순간 극한에 이르면 어떤 치명적 질병으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왜 무너져 내렸는가? 건축공학상의 긴장강도를 조금 초과했기 때문에 제 모습을 지키지 못하고 폭삭 무너진 것이다.
넷째로, 식물도 똑같은 생명체이므로 채식도 살생이라는 주장은, 동물도 인간과 똑같은 생명체이므로 육식도 식인과 비슷하다는 주장보다, 조금도 나을 것 없는 터무니없는 논리비약의 궤변이다. 왜냐하면, 동물과 식물의 종간(種間) 차이는 인간과 동물의 종간(種間) 차이보다 본질상 훨씬 크고 현격하여,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수 없는 성질의 대비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분류한 생물계통도에서 보면, 먹이사슬의 맨 위층에서 다른 고등동물을 잡아먹는 동물들을 맹수(猛獸) 또는 맹금(猛禽)류로 부르고, 유독 물질을 내뿜어 다른 동물을 죽이는 동물까지 합쳐 맹독류(猛毒類)로 부른다. 그런데 자기 몸과 특히 정력에 좋다면, 굼벵이나 지렁이부터 독사나 곰쓸개 등 맹독류까지 물불 안 가리고 잡아먹는 일부 사람들은, 과연 무슨 동물로 분류해야 할까? 언제부턴가 우리 인류의 상당수는 더 이상 영장류(靈長類)이길 스스로 포기하고, 흉악하고 혐오스런 초맹독류(超猛毒類)를 자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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