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하아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
국민(초등)학교 때 배운 동요 가사다.
마음은 허공처럼 텅 비어 무색투명하기에, 대상과 상황에 따라 작용하는 대로 갖가지 빛을 골고루 나톨 수 있다. 그러면 채식하는 마음은 어떤 빛일까? 초여름 연두빛 신록(新綠)일까? 한겨울 은빛 설화(雪華)일까? 그 마음과 영혼이 더욱 순수해지고 지고(至高)해지면, 찬란한 태양처럼, 삼라만상 일체 중생을 보듬어 감싸주는 부처님처럼, 따사롭고 포근한 황금빛 자비평화가 될까? 남극이나 히말라야의 하늘처럼, 태고 적 창천(蒼天)이나 벽공(碧空)처럼,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리기까지 하다는 쪽빛이나 에메랄드빛 무위자연(無爲自然)이 될까? 입춘 우수를 지나 매화 꽃망울 벙그는 봄을 시샘하여 몰아친 눈보라 덕분에, 무등산 서석대의 벌거벗은 나무 가지가지마다 활활 피어난 하얀 설화(雪華)가, 밑에서 올려다보니 티 없는 창천 벽공을 배경으로 펼쳐 내던 환상의 그림 한 폭이 될까?
악인은 善(法)도 악용하고, 선인은 惡(法)도 선용한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짜내고, 뱀이 마시면 독을 뿜는다. 같은 칼이라도 도둑이 들면 강도짓을 하고, 의사가 들면 수술을 한다. 주방장이 들면 멋진 요리를 만들어 내고, 조각가가 들면 멋진 작품을 창조해 내겠지? 밥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마음씀(用心)이 핵심 관건이다.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채식도 하는 마음이 아주 중요한데, 사람마다 동기와 목적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첫째, 육신의 건강 위해 요즘 흔히 말하는 웰빙 채식은 소승(小乘) 성문승(聲聞乘) 차원.
둘째, 혈기(血氣)를 맑히고 정신을 밝혀 지혜를 증진하려는 채식은 중승(中乘) 연각승(緣覺乘) 차원.
셋째, 우주가 커다란 하나의 생명체임을 깨닫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니므로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에서 하는 채식은 대승(大乘) 보살승(菩薩乘) 차원.
나도 그랬지만, 보통 사람이 우선 안 죽고 건강하게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먹는 걸 바꾸어 식이요법도 하고, 운동이나 수행도 시작하는 건 인지상정이라 전혀 나쁠 게 없다. 다만, 오로지 육신의 건강만을 위해 채식이니 유기농에 얽매이는 것은 좀 쪼잔하고 애처롭지 않겠는가? 맨 처음 인연은 자신의 생명과 몸 건강을 위해 비롯했을지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점차 정신지혜가 밝아지고, 나아가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심과 평등심과 경외심이 일어, 그 마음이 창공처럼 맑아지고 우주처럼 크게 넓어지기 마련이다. 이기적이고 육체적인 건강을 꾀하는 소승에서 출발하여, 점차 이타적이고 정신적인 자비평화를 바라는 대승으로 승화하는 게, 채식을 포함한 모든 수행이 자연스레 나아가는 길이다. 그 자체가 조그만 깨달음의 빛이 아닐까?
사실 나는 지식 습득에 치우친 잘못된 우리 교육풍토에서 30년간 알게 모르게 허덕이며 몸과 정신을 크게 망쳐 죽음의 문턱까지 드나들며, 그 와중에 대만대학에 3년간 유학하는 인연으로 말미암아 본격 수행의 길로 들어서면서 완전 채식도 시작하게 되었다.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극한 상황에서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나는 채식도 알지 못했을 것이고, 기사회생으로 목숨을 건져 새 삶을 누리지도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참으로 기묘한 인연에 이끌려, 나는 청정수행의 기풍이 넘치는 채식 천국 중화민국 대만에 어렵사리 발을 디디게 되었고, 끝내는 타이완 보도(寶島)에서 채식과 수행이라는 두 가지 보배를 한꺼번에 주워 품에 안고 귀국한 것이다. 그리고 ‘채식’이 아주 낯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였던 1990년대 고국에서, 마치 꼬리가 잘리고 귀가 하나밖에 없는 원숭이 나라에 들어선 두 귀에 긴 꼬리 원숭이처럼, 온갖 손가락질과 엄청난 비웃음 세례를 묵묵히 달게 받으면서 20년을 하루처럼 꿋꿋이 지켜왔다.
그러는 동안 내 안에서는 몸과 마음에 많은 변화가 저절로 일어났다. 피가 맑아지고 기(氣)가 맑아지면서 정신이 맑아지고 얼이 더욱 뚜렷이 깨어 갔다. 마음은 뭇 생명에 대한 연민과 자비로 물결치기 시작하였고, 이따금씩 부딪치는 일마다 조그마한 깨달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에 상응하여 내 밖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채식을 하겠다고 발원하고, 우리나라도 대만처럼 수행자가 채식을 어디서나 자유롭고 쉽게 할 수 있는 풍토가 되길 간절히 염원하였는데, 과연 채식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일깨우는 선구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서구 선진 과학문명사회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새 시대의 음식혁명 이야기들도 하나씩 한글로 옮겨져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O-157이니 구제역, 조류독감, 광우병에 이어 마침내 돼지독감이라는 신종 인플루엔자 같은 온갖 괴질들이 잇달아 터져 나와 인류의 식탐에 커다란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한편으로 육식은 환경파괴 및 식량자원 낭비, 그리고 지구온난화 촉진의 주요 원인제공자로 지목 받아, 그 비경제성과 비윤리성이 강한 비판과 성토의 과녁이 되고 있다. 이에 필자는 20년간 몸소 겪어 온 채식 실험을 바탕으로, 그간 보고 듣고 느낀 채식하는 마음을 한데 엮고, 나아가 수행의 한 고리로서 일깨워진 채식명상을 자유롭게 적어 펴내게 되었다. 본디 채식 위주로 담백하고 검소하게 먹고 살아온 백의민족 한겨레의 정갈한 음식문화가, 문명의 발달에 따라 인류역사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리면서, 육식 위주의 기름지고 느끼한 서구 풍으로 심각하게 잘못 오염되어 가는 혼탁한 시대조류를 조금이나마 가라앉히고 맑히는 데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보잘것없지만 조촐한 생각들을 글로 적어 펼치고자 한다.
2008년 8월 4일 월요일 무등산행 하산 길에 떠오른 시상(詩想)으로 채식하는 마음과 채식 펴는 마음을 간추려 가름한다.
問余何緣喫素食 나한테 무슨 인연으로 채식하느냐고 묻거들랑
莞爾不辯心自安 빙그레 웃고 답변 안하니 마음 절로 평안하네
誰謂殺戮是善事 뉘라서 잡아 죽이는 걸 착한 일이라 이를까만,
焉噉其果霑惡業 어찌 그 열매를 씹어 먹어 악업을 나눠 가지랴?
譬如醉中妄言動 비유컨대 술 취하여 헛소리 헛지랄 하면
醒後羞恥自懺悔 술 깬 뒤 부끄러워 스스로 뉘우치기 마련이듯,
蒙時殺生食魚肉 아둔할 적 산 목숨 죽이고 고기 먹은 허물도
悟來慙愧亦如是 깨우친 다음 마찬가지로 낯부끄러워 고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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