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간 직후 한 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슬픔에 싸인 채 방황을 많이 했다. 몸도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져 근근이 학업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그러는 가운데 살생의 악업 인연은 더욱 깊어만 갔다.
2학년 여름방학 때인가, 시골집에 와서 친구들과 어울려 태어나 처음으로 닭서리를 했다. 중학 동창 여학생 집인데, 길에서 그 어머니를 만나 닭 한 마리 갖다 먹을 테니 집에 닭이 없어지면 우리가 가져간 줄 아시라고 말했더니, 알았다고 그러라고 응낙하셨다. 1km가량 떨어진 동창 여학생 집에 친구 두어 명과 함께 가서, 한 친구가 닭장에 들어가 한 마리 목을 꽉 쥐어 잡았는데, 어둠 속에서 닭의 혼불이 나가는 걸 보았다고 했다. 방안에서 알아차렸을 텐데, 그냥 가져가라고 모른 체하신 게 틀림없었다. 모험심과 위기감은 그만큼 줄었는데, 태연하게 그 닭을 우리 집에 가져와서 밤에 요리해 먹었다. 살생의 죄업은 닭한테 갚아야겠지만, 무상으로 서리한 닭 값은 얼른 동창 부모님께 갚아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반성 참회한다.
또 신림동 이모 댁에 드나들면서 이모부가 마시는 사주(蛇酒)를 마셔본 적이 있는데, 그게 빌미가 되었는지 2-3학년 때는 허약한 몸을 보(補)해 보겠다고, 서울대 기숙사에서 낙성대 입구까지 내려와 뱀집에서 사탕(蛇湯)을 두어 번 시켜 먹었다. 산 뱀을 직접 보면서. 당시 얼마나 주었는지도 기억나지 않고,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지도 참으로 아리송하다. 그러다가 어떤 기회였는지, 뱀을 한 마리 잡아 1.8ℓ들이 유리병에 넣고 소주를 부어 직접 사주(蛇酒)를 한번 만들어 마신 기억도 나는 듯하다. 소주에 질식해 죽어간 뱀의 원한과 독은 또 얼마나 컸을까? 그 원한과 독이 녹은 사주(蛇酒)를 내가 마셨으니, 내 몸과 영혼이 얼마나 중독(中毒) 당했을까?
3학년 여름방학 때는 고향 내소사(來蘇寺) 위 청련암에서 한 달 묵으며 고시생들과 함께 지냈는데, 한번은 닭서리 같이 한 친구들이 소주 대병을 사와 암자 밖에서 달빛을 벗 삼아 밤새 마시고 이야기하고 논 적이 있다. 근데 하루 밤에는 뱀이 암자 벽에 붙어 있는 모습을 한 사람이 발견하여 소동이 났다. 도망갈 생각도 안해 누군가 그 뱀을 잡았다.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우선 커다란 빈 양철 깡통에 넣어 보관하기로 했다. 근데 혹시라도 질식해 죽을까 염려해 뚜껑을 꽉 막지 않고 돌멩이를 얹어 살짝 가려 두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당시에는 아쉬움이 작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천만억(千萬億)의 천행(天幸)이었다. 불보살님과 호법신장의 보살핌이라고 믿게 되었다. 뱀은 흔히 한 집(건물)의 업(業)이라고 하는데, 그 뱀은 청련암의 업(業)이었지도 모르고, 또 어느 수행자가 전생의 악업으로 타락한 업보신(業報身)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와 도업(道業)수행의 인연 있는 수행자의 현신(現身)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연지(蓮池)대사님의 방생문(放生文)을 읽으면서 비로소 깊이 뉘우치고 실감하게 되었다. 여하튼 그 많은 살생의 악업 중에서 최악은 범하지 않도록 막아준 호법신장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 뒤로 산행(山行) 시 이따금씩 뱀을 마주치면, 인류의 원죄 탓인지 징그러움과 두려움을 느끼며 섬뜩하게 놀라는데,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뱀을 바라보며 반성참회와 함께 염불하며, 해원소업(解怨消業)하고 리고득락(離苦得樂)하라고 기도해 준다. 모두가 업장의 화현(化現)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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