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유정의(兪淨意) 선생이 조왕신(竈王神: 부뚜막신)을 만난 실화 기록

운명을 뛰어 넘는 길. 부록

by 明鏡止水 淵靜老人 2022. 12. 4. 09:44

본문

()나라 가정(嘉靖: 世宗의 연호. 1522-1567 在位) 때에 중국 강서(江西) 지방에 유공(兪公)이 있었다. (: 이름)는 도(), ()는 양신(良臣)이었다. 재주가 뛰어나고 박학다식하여, 18세에 제생(諸生: 淸代 官學에 이미 입학한 生員을 가리킴)이 되었는데, 매번 시험 볼 때마다 반드시 우등을 차지하였다.

장년(壯年)이 되어서는 집안이 가난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동학(同學) 10여 명과 함께 문창사(文昌社)를 결성하였다. 그래서 글자와 종이를 아끼고, 동물을 방생(放生)하며, 사음(邪淫)살생구업(口業)-주1) 등을 범하지 않도록 계율을 지켰다.

그러기를 몇 년간 계속하는 동안, 전후 일곱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하고, 다섯 아들을 낳았으나 넷은 병으로 요절하였다. 셋째 아들은 왼쪽 발바닥에 검은 점이 둘 있었는데, 몹시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났다. 그래서 부부가 집안의 보배로 여겼으나, 여덟 살 되던 해에 동네에서 놀다가 잃어버려, 간 곳을 알 수가 없었다 또 딸은 넷을 낳았는데, 겨우 하나만 생존하였다. 그리하여 그 아내는 자녀들 때문에 어찌나 슬피 울었는지, 마침내 두 눈이 모두 실명(失明)하였다. 유공(兪公)도 실의에 잠겨, 해가 갈수록 빈곤이 더욱 심해졌다.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면 큰 허물은 없는데, 너무나 참혹한 천벌(天罰)을 받는 것같이 여겨졌다. 그래서 40세가 넘어서는 매년 섣달 그믐날, 노란 종이에 상소문(黃疏)을 스스로 적어 조왕신(竈王神: 부뚜막신)께 불살라 바치면서, 그 뜻을 천상 옥황상제(玉皇上帝)께 올려달라고 기도하였다. 이러기를 수년간 계속했으나, 역시 아무런 보답이나 감응이 없었다. 47세 되던 해, 섣달 그믐날 밤(除夕)에 눈 먼 아내랑 한 딸과 함께 앉아 있는데, 온 방안이 소슬하고 처량하기 짝이 없어, 서로 위안할 따름이었다.

그때 홀연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유공(兪公)이 촛불을 들고 나가 보았다. 문 앞에는 각건(角巾: 옛날 隱士들이 항상 머리에 두르던 모서리 있는 頭巾)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한 선비가 서 있는데, 머리와 수염은 반쯤 희끗희끗하였다. 서로 공경을 갖춰 예를 올리고 자리에 앉았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내 성은 장()씨인데, 먼 길에서 되돌아오다가 집안에서 수심(愁心)에 가득 찬 한탄소리가 들려나오기에, 특별히 위로하러 들렀소.”

유공은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특이하게 여기고, 더욱 공경을 다해 예의를 갖췄다. 그리고 자신이 평생 글공부와 선행에만 매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부귀공명을 이루기는커녕, 처자식도 온전하지 못하고, 의식주도 제대로 잇지 못할 형편임을 탄식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계속 조왕신께 상소문을 적어 불살라 올린 내력을 소상히 진술했다.

이 말을 들은 장씨 선비가 말했다.

내가 그대 집안의 일을 아는 지 이미 오래되었소. 그대는 악의(惡意)가 몹시 중하고, 오로지 부질없는 헛된 명예에만 힘쓰고 있소. 그러면서 상소문 올리는 종이에는 온통 하늘 원망과 남 탓이 가득하여, 옥황상제를 모독하고 있소. 그러니 아마도 천벌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스럽소.”

이에 유공이 대경실색하여 물었다.

제가 듣기로, 그윽한 유명(幽冥) 중에 터럭 끝만한 선행도 반드시 기록한다고 합니다. 저는 선한 일을 실행하기로 서원(誓願)한 뒤, 그 조목을 성의껏 준수해 온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모두 헛된 명분에 불과하다고 하십니까?”

그러자 장씨 선비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가령 그대가 실행하는 글자와 종이 아끼는(惜字) 한 조목만 봅시다. 그대의 학생이나 동료들 중에 많은 사람이 묵은 책이나 문서 종이를 사용하여 벽을 바르고 물건을 싸며, 심지어 그것으로 탁자를 훔치기도 하면서, 더럽히지 않는다는 구실로 불사르기 일쑤요. 그런데 그대는 이러한 일을 매일같이 친히 보면서도, 한 마디도 타이르지 않고 그냥 소홀히 넘어가오. 단지 길가에 떨어진 글자 쓰인 종이를 보면, 주워다 불사르는 정도에 불과하오. 그러니 그게 무슨 보탬이 되겠소?

또 그대가 결성한 문창사(文昌社)에서 매달 방생(放生)을 실시하지만, 그대는 대중이 하는 일에 따라 분주히 움직이며, 남들 틈에 끼어 방생의 일을 성취할 뿐이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일을 거행하지 않는다면, 그대도 또한 따라서 그만둘 게 뻔하오. 사실 자비의 염원(念願)이 마음속에서 조금도 일지 아니하기에, 그대 집에서는 새우나 게 종류가 줄곧 주방에 오르는데, 그들은 생명이 아니란 말이오?

그리고 구업(口業)의 조목을 봅시다. 그대는 말이 기민하고 재기 발랄하여, 듣는 사람들이 자못 그대에게 매료하곤 하오. 그런데 그대가 그때 입 밖으로 내는 말이 남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하는 줄 그대도 속으로 잘 알면서, 다만 친구간의 대화에 습관적으로 분위기에 따라 비방과 조소를 그칠 줄 모르오. 그러니 혀끝으로 내뱉는 말이 귀신의 분노를 촉발하여, 무의식중에 죄악이 얼마나 쌓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라오. 그런데도 오히려 간소하고 후덕하다고 자처하니, 자신이 누구를 속인단 말이오? 하늘을 속일 것이오?

사음(邪淫)은 비록 실제 행적이 없긴 하오. 하지만 그대는 남의 집 어여쁜 부녀자를 만나면, 으레 눈으로 빤히 바라보면서, 마음이 살랑살랑 흔들려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오. 단지 사악한 인연이 서로 맺어지지 않았을 따름이오.-주2) 그대 자신이 만약 그러한 사악한 인연이 맺어질 수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를 한번 생각해 보시오. 정말로 (비 오는 밤에 길을 가던 미녀가 비를 피해 하룻밤 묵게 해 달라고 구원을 청했을 때, 홀로 살기 때문에 남녀 분별의 예의상 딱한 처지를 받아 줄 수 없다고 거절했던) ()나라의 결백한 선비와 같을 수 있겠소? 그러면서도 스스로 종신토록 사음의 기색이 없다고 말한다면, 천지신명께 대해 정말로 망령스런 짓이라고 할 것이오.

그대가 서원을 발하고 실행한다는 덕목들이 오히려 이와 같을진대, 하물며 그 밖의 일들은 말할 필요가 있겠소? 사실 그대가 매년 불살라 올린 상소문은 모두 천상(天上)에 품달(稟達)하여, 옥황상제께서 지상(地上)을 유람하는 사신에게 그대의 선악을 관찰하도록 명하시었소. 그런데 수년간 특기할 만한 선행은 하나도 없고, 오직 홀로 사사로이 거처하는 가운데, 그대의 마음에 나쁜 생각만 품고 있소.

탐욕심, 사음심(邪淫心), 질투심, 편협심, 조급심, 자기만 높이고 남은 낮추는 교만심,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 과거의 추억을 회고하는 데 집착하거나 미래의 희망에 대한 부푼 기대만 품는 허영심, 은혜와 원한을 분간하여 반드시 갚으려는 복수심, 이런 마음만 가슴속에 뭉게뭉게 꽉 차있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소. 이러한 온갖 나쁜 생각(惡意)이 마음속에 굳게 맺혀, 신명의 기록도 이미 너무 많아졌소. 그래서 천벌이 날로 심해지니, 그대가 재앙을 피할 겨를도 없거늘, 어떻게 복 받기를 바랄 여유가 있겠소?”

이 말을 들은 유공이 경악과 황송을 금치 못하고, 땅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간청했다.

당신이 유명(幽冥)의 일을 이처럼 훤히 통달한 것을 보면, 반드시 존귀한 신명임에 틀림없습니다. 원컨대, 이 몸을 구제해 주시길 간청합니다.”

이에 장씨 선비가 말하였다.

그대는 책을 읽어 사리에 밝고, 또한 선행을 흠모하여 즐거움으로 여길 줄도 아오. 착한 말을 한 마디 들을 때면 격정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기뻐 힘쓰며, 착한 일을 한 가지만 보아도 어쩔 줄 모르며 춤추오. 다만 조금만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 결정적인 흠이오. 믿음의 근기(信根)가 본래 깊지 못하여, 항심(恒心)이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오.

평생 행한 선량한 말과 행실이 모두 성의 없는 형식상의 겉치레로 오락가락하였으니, 어떻게 그동안 한 가지 일이라도 착실(着實)한 게 있기를 기대하겠소? 또한 가슴속 가득히 사악한 생각으로 기복(起伏)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하늘의 좋은 보답을 받기만 바라고 있소. 이는 마치 온 천지에 가시나무 씨를 뿌려 놓고서, 어리석게도 훌륭한 벼를 수확하기 바라는 것과 같소. 그러니 이 어찌 크나큰 미혹과 오류가 아니리요?

그대는 오늘 이후로, 심성에 물든 모든 탐욕과 사음과 허장성세와 잡념망상을 먼저 용맹스러운 의지력으로 아주 깨끗하고 말끔하게 제거하시오. 그런 뒤 오직 일념(一念)으로 선()만 향하도록 하오. 만약 실행할 만한 선행이 있거든, 보답을 바라거나 명예를 꾀하지 말며, 크고 작음이나 쉽고 어려움을 따지지 말고, 혼자 착실하고 끈기 있게 묵묵히 실천해 가시오. 만약 자신의 능력으로 실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선량한 뜻이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간절하고 부지런히 최선의 노력을 다 하시오.

첫째는 인내심이고, 둘째는 영원심(永遠心: 恒常心)이오. 절대로 스스로 게으름 피우거나 자기 양심을 속이면 안 되오. 꾸준히 오랫동안 실행하다 보면, 저절로 예측하지 못한 효험이 나타날 것이오. 그대 집안이 나를 섬김에 몹시 경건하고 정결하기에, 내가 특별히 이러한 뜻을 전해 보답하는 것이오. 그러니 한시바삐 힘써 지킴으로써, 하늘의 뜻을 돌이킬 수 있길 바라오.”

말을 마치자, 그는 곧바로 유공의 안방(內室)으로 들어갔다. 유공이 일어나 그를 뒤따라 나가보니, 부엌 아래에 이르러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에 바야흐로 그가 집안의 화복(禍福)을 관장하는 조왕신인 줄 알고, 곧장 향을 사르고 큰 절(叩頭)을 올려 감사 드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설날(元旦)에 천지신명께 절하고 기도드리면서,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을 고치고 선행을 착실히 실천할 것을 서원하였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 자신의 호() 정의도인(淨意道人)이라고 지어, 모든 망령된 생각을 깨끗이 제거한다는 서원의 의미를 표시하였다.

처음 실행할 때는 잡념망상이 어지럽게 일어나, 의심하지 않으면 게을러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세월만 속절없이 빨리 지나버려, 금방 예전처럼 세파에 휩쓸리고 말았다. 이에 집안에 모시고 공양 올리는 관음대사(觀音大士: 관세음보살의 별칭) 형상 앞에서 피가 흐르도록 고두(叩頭: 五體投地)의 예()를 올리며, 공경을 다해 굳은 서원을 발하였다.

원컨대, 선한 생각이 영원히 순수해지며, 선한 의지력으로 용맹 정진하여, 가령 터럭 끝만큼이라도 자신을 너그러이 눈감아주는 일이 있다면, 영원히 지옥에 떨어지게 하소서!”

그리고 매일 새벽 대자대비(大慈大悲) 관세음보살의 존호(尊號)를 일백 번씩 경건히 염송(念誦)하여, 음계(陰界: 無形神明)의 보우(保祐)를 기원하였다.

이때부터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물론, 말 한 마디 한 순간 생각까지 항상 귀신이 옆에 있는 것처럼 행하며, 감히 속이거나 방자해지는 일이 없었다. -주3) 무릇 사람에게 도움이 되거나 사물에 유익한 것은, 일이 크거나 작거나, 자신이 한가하거나 바쁘거나, 남이 알거나 모르거나, 능력이 미치거나 못 미치거나 여부를 가리지 않고, 모두 한결같이 환희심(歡喜心)으로 봉행하되, 은밀하고 완곡하게 그 일을 성취한 다음에야 그치곤 했다.

인연에 따라 적절한 방편을 활용하여 널리 음덕(陰德)을 심고, 만나는 사람마다 돈독한 인륜(敦倫), 근면한 학업(勤學), 겸허와 인욕, 그리고 인과응보의 원리로써 인도하고 교화하기에 힘써, ()가 모자람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매달 그믐날에는 한 달 동안 실행한 일과 권장한 말들을 집계하여, 조왕신 거처에 상소문을 올렸다. 이렇게 지니고 실행하기가 익숙해지자, 움직이면 곧 만 가지 선행이 저절로 따르고, 멈추면 한 생각(잡념망상)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실행하기를 3년이 지나 나이 50세 지천명(知天命)이 되었을 때, 마침 만력(萬曆: 神宗 年號) 2(1574) 갑술(甲戌)년의 회시(會試: 明淸代  3년마다 한 번씩 京城 조정에서 치른 과거)에 장거정(張居正)-주3)이 수(首輔)가 되었다. 장거정이 과거가 끝난 뒤 동향(同鄕)을 방문하여 자기 아들을 위해 스승을 선택하는데,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유공을 천거하였다.

마침내 유공은 경사(京師: 서울)로 올라오라는 초빙을 받아, 딸린 식구(眷屬)들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갔다. 장거정은 유공의 덕망과 품성을 공경하여, 예규(例規)에 따라 국학(國學: 國子監)에 입학하도록 배려하였다. 만력 4(1576) 병자(丙子)년에 경향시(京鄕試)에 응시하여 마침내 급제하고, 이듬해 진사(進士)가 되었다.

하루는 내감(內監: 國子監의 고위 관직) 양공(楊公)을 알현하였는데, 양공이 다섯 아들을 불러내어 유공에게 인사시켰다. 그들은 모두 양공이 노년을 대비하여 자기의 후사(後嗣)로 사방에서 물색한 양자(養子)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아들은 나이가 16세로, 그 모습이 유공에게 몹시 낯익은 듯하여, 출신 고향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강우(江右: 揚子江 오른쪽 지방으로 江西를 지칭) 출신으로, 어렸을 적에 잘못하여 양곡을 운반하는 선박에 올라타 그만 길을 잃었는데, 아직도 성씨와 고향마을은 어렴풋이 기억나는 듯하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유공이 몹시 놀라 왼발을 벗어보게 하였더니, 두 검은 점이 완연히 박혀 있었다. 유공이 이는 내 아들이다.”라고 크게 외치자, 양공도 몹시 경탄하며 곧장 그 아들을 유공에게 집에 데려가도록 건네주었다.

유공이 바삐 귀가하여 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부인은 아들을 어루만지며 대성통곡하여 피눈물이 함께 쏟아졌다. 아들 또한 울며 어머니의 얼굴을 얼싸안고 그 눈을 혀로 핥았는데, 그 순간 어머니의 두 눈이 광명(시력)을 회복하였다. 유공은 희비(喜悲)가 교차하여, 관직을 더 이상 맡고 싶지 않았다. 마침내 장공(居正)에게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사의(辭意)를 아뢰자, 장공도 그 의리를 고상히 여겨 후한 예물을 선사하며 귀향을 허락하였다.

유공은 고향에 돌아와 거주하면서 선행에 더욱 힘썼다. 그 아들은 장가들어 연속 일곱 아들을 낳아 모두 성장시켰는데, 한결같이 책 향기(書香)를 이어 학문하는 선비가 되었다. 이에 유공은 손수 조왕신을 만나 개과천선을 실행하게 된 내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히 기록하여 자손들을 훈계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88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하는 복을 누렸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 유공이 선행을 실천하여 천상의 보답을 돌이켜 받은 것이라고 칭송하였다.

[같은 동네(同里) 후학 라정(羅禎)이 기록하다.]

 

 

 

성세(醒世) 세인(世人)을 각성(覺醒)시킴

라념암 (羅念菴)

 

1. 萬事天來莫强求

만사는 자연스럽게 오나니 억지로 추구하지 말라.

何須苦苦用機謀

어찌 괴롭고 힘들게 잔재주와 꼼수를 쓴단 말인가?

飽三餐飯常知足

하루 세 끼 배불리 먹으면 늘 만족할 줄 알고,

得一帆風便可收

돛단배 한 척에 순풍을 얻으면 거둬들일 만하네.

生事事生何日了

인생살이 생계 좇아 바쁜 고뇌 언제나 마치며,

害人人害幾時休

남을 해치고 남이 해치는 악순환 어느 때나 그치리?

寃家宜解不宜結

원수 집안 원한은 풀어야지 맺히면 안 되나니,

各自回身看後頭

각자 자신을 돌이켜 머리 뒤 좀 쳐다보시게.

 

2. 堪歎人心毒似蛇

사람 마음 뱀처럼 악독하여 놀랍기 그지없네.

誰知天道轉如車

하늘(자연)의 도 바퀴처럼 도는 줄 뉘 알랴?

去年妄取東鄰物

작년에 동쪽 이웃집 물건 슬그머니 가져온 것

今日歸還北舍家

오늘 결국 북쪽 이웃에게 되돌려주고 마는 것을.

分外錢財湯潑雪

분수 밖의 금전재물은 끓는 물에 흩날리는 눈송이요,

騙來田地水堆沙

속여 빼앗은 토지가옥은 물 위에 모래성 쌓기일세.

若將狡譎爲生計

만약 교활하고 간사하게 생계만 꾀하려 든다면

恰似朝開暮落花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과 흡사하리라.

 

 

계탐(戒貪) 탐욕을 경계함

작자 미상 (闕名)

 

1. 越奸越巧越貧窮 간사하고 교활할수록 더욱 빈궁해지나니,

奸巧原來天不容 간교함은 본래 하늘이 용납하지 않네.

富貴若從奸巧得 부귀영화를 간교함으로 얻을 수 있다면,

世間漢吸西風 간의 바보들이 모두 서풍을 마시겠네.

 

2. 錢財有命古來聞 금전재물에 운명 있음은 예로부터 전해오니,

理欲關頭一念分 천리(天理)와 사욕(私慾)의 관건은 한순간 일념(一念)에서 갈라지네.

識破此中原有數  가운데 원래 있는 분수를 간파한다면,

自然一笑等浮雲 뜬구름같이 여기고 저절로 한바탕 웃으리.

 

3. 不結良因與善緣 착하고 좋은 인연은 맺지 않고서,

苦貪財利日憂煎 재물이익에 탐닉하여 날로 고뇌만 치성하네.

豈知住世金銀寶 그대가 어찌 세상의 금은 보물을 제대로 알리오?

借爾權看數十年 수십 년간 돌보라고 잠시 빌려준 것일 따름을!

 

4. 日夜無休只認眞 밤낮 끊임없이 오직 진실인 줄 알고

略差半點便紛爭 반 푼어치만 차이 나도 금방 다투지만

誰知一赴泉臺路 어느 누가 한번 황천길에 올라서면

悔把恩仇抵死分 은혜 원수로 목숨 바침을 후회할 줄 알리요?

 

5. 佔便宜處失便宜 이익을 보는 곳에 대가를 치르기 마련,

喫得虧時天自知 손해를 삼킬 때 하늘이 저절로 아네.

但把此心存正直 단지 이 마음 하나 정직하게 간직하면,

不愁畢世被人欺 종신토록 남에게 속을까 근심하지 않으리!

 

주1) 구업(口業): 입으로 짓는 죄악으로, 불교에서는 악구(惡口: 험담욕설)망어(妄語: 거짓말)기어(綺語: 번지르르한 말음담패설)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의 네 가지를 꼽음.

주2) 여자를 보고 사악한 생각을 품는 순간, 이미 마음속으로 간음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훈계한 예수의 말을 참조. 마태복음 5 : 28.

주3) 공자는 제사를 지낼 때는 조상이 앞에 계신 것처럼, 그리고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는 신이 앞에 계신 것처럼 한다.(祭如在, 祭神如神在.)”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바로 이러한 정성(精誠)과 공경(恭敬)을 의미한다.

주4) 장거정(張居正: 1525-1582): 시호(謚號)는 문충공(文忠公), ()는 숙대(叔大), ()는 태악(太岳), 호광(湖廣) 강릉인(江陵人)인데, 출신 지명을 따라서 장강릉(張江陵)으로 별칭함. 가정(嘉靖) 때 진사(進士)가 되고, 륭경(隆慶) 원년 1567년에 입각(入閣)한 뒤, 목종(穆宗: 隆慶)이 죽자 수보(首輔)가 되고, 만력(萬曆) 초년에 어린 신종(神宗)을 보필하여 10년간 국정을 주도하였음. 유명한 일조편법(一條鞭法)을 실행하여 사회경제 개혁을 성취한 정치가임. 수보(首輔)는 명나라 때 수석대학사(首席大學士)에 대한 관용(慣用) 칭호로서, 수규(首揆)라고도 부름. 특히 가정(嘉靖)륭경(隆慶)만력(萬曆) 초기 장거정(張居正)이 집권할 때는, 수보(首輔)가 내각대정(內閣大政)을 주도하여, 그 권한이 막강하였음.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