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詩 서시
身弱且心柔 몸은 허약하고 마음까지 여린데
豈望寒與暗 어찌 추위와 어둠을 바라리오만
無冬焉知松 겨울이 없다면 소나무는 어이 알며
非夜安見星 밤이 아니어든 별은 어떻게 볼까?
未盡天下憂 천하의 근심이 다하지 않았는데
何暇私己樂 어느 겨를에 내 즐거움 있으리오?
黙惟所以來 온 까닭을 그윽이 생각해 보면
自明攸應往 가야 할 길이 절로 밝아지네.
“굽은 솔이 선산(先山) 지킨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또 공자는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첫 출판을 준비하던 해(1996년) 겨울처럼 혹독(酷毒)한 한파(寒波)가 몰아치는 날씨에, 더욱 실감나는 탄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날씨는 그리 춥지 않고, 세상 인심이 너무 차갑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천기불한인심한(天氣不寒人心寒)! 이른 봄 매화 꽃망울을 터뜨리기 위해 준비하는 뼛속 스미는 한기(寒氣)인가요?
박사 과정을 휴학하고 국립대만대학(國立臺灣大學) 법률학연구소(法律學硏究所)에 유학(遊學) 갔다가, 우연히 「료범사훈 백화 번역문」을 읽고 감동과 경탄을 금하지 못하던 기억이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런데 돌이켜 헤아려 보니 벌써 9년 전의 일입니다. 참으로 광음(光陰)은 덧없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때 이 글을 한글로 번역해 소개하고 싶은 서원(誓願)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마음에 일어나, 원문(原文: 古文本)을 구하려 했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무심코 품은 서원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1994년 1월 박사학위논문 제출을 마치고 학위 수여식 전에 잠시 대만에 들를 때였습니다. 그때 한 도서관에서 원문이 실린 「료범사훈」을 발견하고, 책 뒤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기꺼이 책 3권을 나의 임시 숙소로 우송해 왔습니다.
귀국하여 원문으로 다시 읽는 「료범사훈」의 감동은 여전하면서도 또 다른 새로운 맛이 있었습니다. 그 뒤 1995년 제1학기에는 서울대학교에 천인대동서당(天人大同書堂)을 사설(私設)하여, 1백여 명의 노자(老子) 강의와 별도로, 10여 명이 참석한 「료범사훈」 원전 강의를 동시에 진행하였습니다. 한문 원전에 대한 해설과 주석은 물론, 글의 실질 내용인 수양의 원리와 방법에 관해서도, 지금까지 내가 보고 듣고 배우고 또 스스로 닦으며 체험하고 느낀 바를 숨김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의 내용을 전부 정리하고 나니, 정말 제법 방대한 저술이 되었습니다. 첨삭과 수정 보충까지 마쳐 초고는 이미 마무리하였으나, 아직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덜 무르익은 듯하여, 한문 원전과 번역․주석․해설 강의를 총망라한 글은 당장 출판하기 어려움을 느끼고,(이 강의록은 2009년 전남대출판부에서 ‘儒佛仙 人生觀’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함) 우선 번역문이라도 조그만 책자로 출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진리(眞理)와 정법(正法), 명덕(明德)과 중도(中道)를 추구하고 심성(心性) 수양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과 선량한 인연(因緣)을 널리 맺고 싶었던 것입니다.
원고는 진작 마련하였습니다. 허나 나 자신의 개인 항로(航路)를 선택하고 준비하느라 정신을 기울이고, 주위의 조연(助緣)도 아직 미흡한 까닭에, 출판이 조금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고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사람의 계산이 하늘의 계산(안배)만큼 정교하지 못하다.(人算不如天算巧)”는 속담이 새삼 절실히 느껴집니다. 아집(我執) 섞인 기다림의 명분과 속셈으로 출판을 질질 늦춘 세월을 늦게나마 진심으로 참회하면서, 이 글을 세상에 내 놓습니다.
질질 끄는 동안 도교(道敎)의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을 부록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번역의 저본(底本)을 출판했던 대만의 양선잡지사(揚善雜誌社)와 서신 연락이 닿아, 새로이 주자가훈(朱子家訓)을 입수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두 문장을 번역해 덧보탠 것이 질질 늦춘 허물을 조금이나마 미봉(彌縫)할 수 있을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며,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기로 합니다.
“진리(道)의 세계에 멋모르고 뛰어들어 이해하고 깨달아 가기는 정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인데, 그 진리(道)를 알고서 세상 밖에 나와 몸소 실행하고 퍼뜨리기는 과연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정작 이 글을 출판하려고 마음먹고, 차분히 교정을 보며 서문을 쓰는 동안,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교차하면서, 새삼 뼈저리게 심령(心靈) 깊숙이 울려나오는 나 자신의 탄식입니다. 스스로 돌이켜보면, 아직 불혹(不惑)의 연령에 이르지 못한 탓인지, 부동심(不動心)의 수양 경지에 들지도 못했습니다. 또 말과 행동과 생각이 삼위일체로 모두 청정(淸淨)함을 이루지 못하여, 이 글의 출판이 오히려 세인(世人)의 비웃음과 비방거리만 되지 않을까 부끄럽고 두렵기도 합니다.
허나 이 번역문은, 단지 료범(了凡) 원황(袁黃) 선생의 평생 수행 체험 기록을, 4백년이 지난 한국의 대중에게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전해드리는 하나의 도구 방편으로 여길 따름입니다. 나 자신 또한 더 많은 훌륭한 성현군자(聖賢君子)와 부처보살(佛陀菩薩)의 종자를 찾아, 진리의 인연(法緣)을 맺어 주는 중간매개의 사절(使節)로 자처하고 싶습니다. 이른바 “벽돌을 내던져 주옥을 이끄는(抛磚引玉)” 통로나 마중물이 되고 싶습니다. 이 글이 비록 출가수도(出家修道)의 법문(法門)으로는 충분하지 못할지라도, 재가수신(在家修身)의 지침(指針)으로는 결코 손색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료범사훈 한글 번역문을, 제가 쓴 인생지남(人生指南)에 곁들여 법공양판으로 6천여 부 찍어, 공공 도서관과 군대․교도소에 배포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법보시에 미련과 집착을 쉽사리 떨치지 못한 제 마음 때문에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불광출판사에서 제 발원을 기꺼이 받아들여, 실비로 법공양 3천부를 인쇄해 줌과 동시에 공식 출판까지 해 주겠다고 선뜻 결단하였습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의 자비광명 가피로 여기며 찬탄을 바칩니다. 그리고 영리성을 떠나 정법(正法) 홍양(弘揚)의 출판이념으로 법공양과 공식 출판을 동시에 자청해 주신 불광출판사에도 진심으로 수희찬탄과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이 책의 원저자인 료범 선생과, 이 글을 읽고 강의하고 정리․번역․타자․인쇄하는 과정에서 선량한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이 책의 출판 비용(財源)을 마련하는 데 십시일반의 보시로 동참한 모든 대덕(大德)께도 고마움을 바칩니다.
누구나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인데, 시절인연이 그러한지라, 모든 분께 법보시하지 못하는 저의 무능력이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무쪼록 착하고 넉넉한 마음들을 내시어, 주위의 인연 있는 분들께 두루 권하시길 간청합니다. 그래서 교파와 종파,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되도록 많은 분들이 이 글을 다함께 읽고 지혜와 복덕을 나란히 수행해서, 우리 모두 료범(了凡) 원황(袁黃) 선생님처럼 금생에 평범한 중생 노릇을 끝마치고 단박에 성인의 경지에 들어, 지긋지긋 괴로운 생사윤회를 벗어나 극락정토(또는 天國)에 왕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발원합니다.
끝으로 이 글이 다원화한 현대사회에 종교 대동화합의 아름다운 마음과 기풍을 널리 심고 퍼뜨리며, 남북한 자주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조그만 불씨가 되길 기원합니다.
경진(庚辰)년 칠월 초하루(2000.7.31.) 연정재(蓮淨齋)
옮긴이 삼보(三寶)제자
보적 거사(寶積居士) 김지수(金池洙) 공경합장_()_
[이 글은 병자년(丙子年) 섣달(臘月) 열여드레(1997.1.26.) 관악(冠岳) 신림동(新林洞) 연정재(淵靜齋)에서 쓴 법공양판 서문을 손질하고 보충해 다시 쓴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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