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범사훈을 강의한 뒤 손질해서 처음 법공양판을 낸 지 벌써 15년 가까이 되어가고, 공식 출판한 지도 11년이나 되었다. 그 뒤로 수많은 착한 대덕 군자숙녀들이 이 책을 적게는 몇 권씩 사서 친지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많게는 몇 백 권씩 법공양을 하여, 제법 꾸준히 인쇄를 거듭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느 훌륭한 화상(和尙)께서 이 글을 번역해 출판을 준비하던 중에, 내 글이 먼저 나와 기선을 놓쳐 아쉬워하셨다는 얘기도 들렸다.
실제로 이 책을 보고 몇몇 사람들은 조금씩 다른 판본을 출판하기도 한 모양이다. 더러는 옮긴이 이름은 쏙 빼버리고, 글의 내용을 말투만 조금 손질해 낸 경우도 있는 듯하다. 선서(善書)는 인연 따라 골고루 널리 많이 퍼지는 게 좋으니, 다양한 모습으로 펴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목적이 아무리 훌륭해도, 수단이 올바르지 못하면 열매가 끝내 아름답지 못하다는 성현들의 가르침을 새김직하다. 세속법(俗諦)과 진리법(眞諦)이 다르지 않으므로, 현대의 법치주의 정신을 존중하여 앞선 저작권과 판권을 존중하고, 수행자로서 자신의 지성과 양심을 잘 지키는 계율과 법도가 필요하다. 공덕과 명예에 욕심이 앞선 나머지 정도(正道)와 정법(正法)을 잃어버리면, 껍질만 줍고 알맹이는 흘리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안타까운 헛수고가 아니겠는가?
료범사훈을 인광대사가언록(印光大師嘉言錄)과 함께 출판하고 법공양을 조금 한 덕분도 함께 작용했는지, 오랜 가뭄에 단비 만난 듯, 박사학위 받은 지 7년 만에 42세의 늦깎이로 전남대 전임강사에 부임하였다. 그리고 연구와 강의에 매달려 정신없이 눈 깜짝할 새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동안 번역해둔 원고를 정리해 “불가록”과 “의심 끊고 염불하세”를 내고, 연구년 때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 유교경”을 새로 번역하고, 료범사훈 강의록을 깔끔히 정리해 “유불선(儒佛仙) 인생관(人生觀)”으로 펴냈다. 또, 채식수행하며 적어둔 글들을 모아 “채식명상 20년”도 출판했다.
대만대학 유학시절 대만에서 여러 단체들이 온갖 선서(善書)를 무료로 법공양하는 기풍을 몸소 보고 느낀지라, 나는 책을 처음 낼 적부터 실비로 널리 법공양하는 걸 포부로 간직했다. 불광출판사에서 낸 두어 권의 책이 꾸준히 제법 나가 수지(收支) 맞은 뒤로, 출판사의 시판과 별도로 내가 직접 인연 닿는 대로 법공양 출판을 병행하겠다고 정중히 요청하여, 동의를 받아두었다.
이러한 선서(善書)와 부처님 법을 인연으로 이윽고 법공양의 법연(法緣)이 찾아왔으나, 정작 내 몸과 정신이 학교 일에 지쳐 통 여유가 나지 않아 자꾸 미루었다. 마침내 올 여름엔 장마 동안 법학전문대학원(Law School) 교재를 3주 남짓 정신 들여 재판 교정한 뒤, 이 책을 전면 교정하느라 이레 가까이 심혈을 기울였다.
이제 그 시절인연이 무르익어 법공양 출판을 앞두고 글을 전면 교정하게 된 이유는 이러하다. 대학에 부임하기 전까지 나는 완전 컴맹으로, 전부 손으로 연필로 원고를 써서 나한테 강의를 들은 동학(同學)이나 출판사에 맡겨 타자한 뒤 출력본을 교정보았다. 그래서 컴퓨터의 자동 맞춤법확인 기능을 전혀 모르다 보니, 세심하게 교정한다고 했지만 지금 보니 오자나 맞춤법 틀림이 꽤나 나온다. 그리고 예전에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 문장 쓰기” 책을 한번 읽고 글 쓸 때 유념한다고 했지만, 서양서 번역문체에 푹 절어 있던 오랜 습관이 나도 모르게 새어나와 거친 표현이 적지 않았다.
그러다 2007년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 글을 몇 번 발표했는데, 이수열 선생님이 보고 오려내어 자상한 교정 표시를 해 보내오셨다. 감사하고 황송하여 그 뒤로 더욱 한글을 갈고 닦아야겠다는 각성을 하고, 이미 펴낸 책은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새로 손질하리라 마음먹었다. 이러한 인연들이 어우러져 마침내 올 여름 법공양판 인연으로 재판을 위한 전면 교정을 손수 정성들여 하게 되었다.
쉰 살이 넘으면서 덧없는 색신(色身)은 뚜렷이 아지며 현신설법(現身說法)한다. 더 늦기 전에 내 할 일을 부지런히 정진(精進)하라고 일깨우며 채찍질하는 듯! 든든하게 믿었던 다리도 힘이 달리니 걷기가 느려지고, 빗물과 약수를 부지런히 받아 나른 어깨도 50견인지 아파 오며, 시력은 갈수록 약해져 글 보기가 힘든데다, 타자는 아직도 독수리타법이니 한심하다. 지난해 겨울 혹한엔 논어(論語)를 완강(完講)한다고 방학까지 과로하다가 허리가 삐끗해 두 달 가까이 몹시 고생했다. 올 봄부터는 그렇게 자신했던 이(齒牙)마저 지근지근 아파 오니, 바야흐로 사면초가에 몰렸는가?
그래, 이제 다시 교수가 되기 전 처음 도 닦기 시작하던 그때 초발심(初發心)으로 되돌아가서 새로이 시작하자. 인생 하직할 날도 점점 가까워지는데, 이렇게 인순(因循)에 답습(踏襲)하며 어영부영 허송세월할 순 없지 않은가? 다행히 최근 불보살님들께서 새로운 인연의 실마리로 격려와 위로를 이따금씩 보여주셔서, 그나마 위안으로 삼으며 호젓이 내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 이번에 료범사훈을 법공양하겠다고 큰 서원을 펴신 보살님과, 실비로 법공양 출판 대행을 기꺼이 도맡아 아름다운 동참을 자청하신 전남대출판부 직원 여러분, 그리고 앞으로 이 료범사훈을 널리 퍼뜨리는 법연(法緣)에 동참해 도와주실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신묘(辛卯)년 칠월 초닷새 2011. 8. 4. 목. 한낮
매미소리 시원스런 빛고을 운암골 연정재(蓮淨齋)에서
옮긴이 보적(寶積) 김지수(金池洙) 공경합장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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