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나는 나이 15-6세 되던 무렵, 몸이 몹시 허약하여 질병이 많았다. 그때 선친(先親: 작고하신 자기의 부친. 先公․先父․先考․先君 등으로도 호칭함)께서 나에게 료범사훈을 한번 보라고 권하셨는데, 내가 읽어보고 아주 대오각성(大悟覺醒)했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록 책 안에 인용한 불법(佛法) 종류의 내용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거기에 크게 개의치 않고 죽 통독(通讀)하였다. 그때 나는 전체로 보아 이 책이 말할 수 없이 너무나 좋은 책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료범사훈의 공과격(功過格)을 조그만 책자(수첩)로 만들어, 매일 그날의 말 한 마디나 행동 한 가지를 모두 그대로 기록해 나갔다. 매일 밤 결산을 하고 매달 말일에 종합한 뒤, 연말에는 다시 총결산을 하였다. 2-3년을 꾸준히 실행한 결과, 확실히 과오는 날로 줄어들고, 공덕은 날로 늘어갔다. 전에는 심기(心氣)가 붕 떠서 경박하고 조급하던 기질도 대폭 개선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번 일생(今生) 동안 인간으로서 처신(處身)과 행세(行世)가 방자무도하게 흐르지 않은 것은, 완전히 이 책에 기초하고 의지한 덕분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나의 뇌리에 십이분(120%) 인상 깊게 박혀 있다.
작년 가을 황함지(黃涵之: 智海) 거사가 나의 거소에 찾아 와, 옷소매 속에서 료범사훈 백화(白話: 口語) 해설 원고를 꺼내 나에게 보이며, 출판하기 전에 한번 수정․보충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황군(黃君)이 수고로움과 번잡함을 마다하지 않고, 인내와 끈기로 세상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도록 권장하려는 인자한 마음에 몹시 경탄하였다. 더구나 골짜기 같이 텅 빈 겸손한 마음으로, 나같이 눈먼 봉사에게 반드시 도(道)를 자문(諮問) 받겠다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감히 사양하고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학교에서 담당하는 수업 부담이 아주 무거웠고, 이미 노쇠하여 정신과 기력도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만 마음을 더 써도 이내 수면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래서 황군에게 솔직히 말하였다. “겨울방학 때까지 기다려 다오. 그때 여유가 좀 생기면, 반드시 이 원고를 세심히 수정․보충하겠네.” 황군은 나의 이러한 사정을 아주 잘 양해하여, 곧바로 나의 제안을 수락하고 돌아갔다.
내가 이 료범사훈의 백화 주석서를 수정․보충하려고 생각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함께 선행으로 귀향(歸向)하도록 권장하고 교화하기 위함이지, 결코 황군과 맺은 사적(私的)인 인간관계 때문은 아니었다. 하물며, 이 책은 내가 청소년 시절에 정신적 도움을 가장 많이 받았던 보배가 아닌가? 그러므로 마땅히 이 작업을 완성하여, 료범 선생의 은덕에 보답하여야 할 일이었다.
겨울방학이 시작하자, 나는 곧장 각종 현안 문제들을 모두 말끔히 처리한 뒤, 전심전의(專心專意)로 20일 남짓 몸과 마음(心身)의 힘을 다하여, 이 원고를 조금도 사양하거나 체면 보는 일 없이 최대한 수정․보충하였다. 결국 그 수정․보충 작업이 이제 원만히 이루어졌다. 나 자신의 약속을 식언(食言)하지 않고 지키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마음속 깊이 후련하고 유쾌하기 그지없다.
물론 이 책의 원고가 나의 수정․보충 작업을 거친 뒤, 조금도 착오나 실수가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진심진력(盡心盡力)하여 조금도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한 것만은 확신한다. 황군이 지금 이 책을 인쇄하려고 준비하는 마당에, 다시 나에게 서문 한 편을 써달라고 요청하므로, 나는 부득이 이번 수정․보충 작업의 인연 시말(始末)을 몇 구절 적어, 부탁 받은 책임에 가름한다.
세차(歲次) 계미(癸未: 1943 ?)년
인시재(因是齋)에서
71세 노인 장유교(蔣維喬)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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